"문재인 정권서 일어난 일"이라는 대통령실‥'수미 테리' 공소장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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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3. 오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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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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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정부 소환한 '수미 테리' 논란


최근 미국 연방 검찰이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을 기소했다는 소식에 양국 언론이 들썩였습니다. 테리 연구원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우드로윌슨센터 등에서 일해왔고,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자주 인용될 만큼 이름 있는 인사입니다. 국내 매체에도 적잖은 칼럼을 기고했던 바 있는데, 그런 인물이 갑자기 '한국 정부의 외국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높았던 겁니다.

특히 미국 검찰이 공개한 31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수미 테리의 혐의 사실과 더불어, 한국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행적이 상세하게 공개돼 있어 논란이 커졌습니다. 고급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사진은 물론, 수미 테리에게 선물하기 위한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장면 등이 담긴 CCTV 화면까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을 모아놓고 열린 현안 설명 자리에서도 이 주제를 놓고 질문이 나왔습니다. '정보요원의 구체적인 활동상이 드러난 데 대해서 문책이나 감찰은 없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찰이나 문책을 하면 아무래도 문재인 정권을 감찰하거나 문책해야 될 것 같은 상황인데. 사진 찍히고 한 게 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더라고요. 정권을 잡아가지고 국정원도 구성하면서 전문적인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원을 다 쳐내고 아마추어 같은 사람들로 채워 넣으니까 아마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지난 18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발언)


공소장에 언급된 미숙한 정보활동을 한 것은 전 정부에서 있었던 일이니, 문책이나 감찰을 해도 그전 정부의 책임이 아니겠느냐는 뜻인 건데, 야권에선 곧바로 "'전 정권' 외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냐"(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는 반박이 뒤따르기도 했습니다.

미국 검찰이 공개한 공소장 첨부 사진들 (미국 검찰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이 10여 년에 걸쳐 한국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고급 식사와 고가의 의류·핸드백, 고액의 연구비 등을 받았다고 적시했다.)

■ 야권 "윤석열 정부 때 혐의 사실이 제일 많아"‥공소장 들여다보니


야권 의원들도 각자 미국 검찰의 공소장을 통해 수미 테리가 어느 정부 시기의 어떤 혐의로 기소됐는지를 따져본 듯합니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9회, 문재인 정부에서 11회,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약 23회"라고 언급했습니다. 국정원 1차장 출신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 19일 KBS라디오에서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3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약 한 10여 건도 안 되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1년 동안 20건"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검찰이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의 행적을 시기별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혐의 사실과 관련해, 말머리에 숫자를 한 꼭지씩 붙여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인데요. 공소장 원문이 혐의 사실 설명과 그에 대한 부연이 혼재된 측면이 있지만, 대통령들의 공식 재임 기간 기준, 수미 테리의 공소장 내 혐의 설명 항목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 박근혜 정부(2013년 2월 25일 ~ 2017년 3월 10일), 공소장 내 설명 8개 꼭지 (3쪽 분량)
* 주요 서술 내용
- 2013년 한국 국정원 관계자와 반복적으로 만나 연락
- 2014년 6월 미국외교협회가 발간하는 잡지에 "완전무결한 대한민국 : 한반도 통일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한국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음.
- 2016년 12월 한국 외교부 관계자 등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들과 차기 미국 행정부 관료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노력.


▷ 문재인 정부(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9일), 공소장 내 설명 12개 꼭지 (7쪽 분량)
* 주요 서술 내용
- 2019년 11월 한국 국정원 관계자가 수미 테리에게 선물할 '돌체 앤 가바나' 코트를 구입했고, 테리는 이 코트를 반품하고 차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디올' 코트를 구매
- 2019년 11월 한국 국정원 관계자가 수미 테리를 위해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을 구입 (국정원 관계자와 수미 테리가 구매한 핸드백을 들고 걸어가는 CCTV 화면 첨부)
- 2020년 8월 맨해튼의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국정원 관계자들과 식사한 뒤, 회색 선물 가방을 받음 (국정원 관계자들과 수미 테리가 함께 식사하는 사진 첨부)
- 2021년 4월 워싱턴 D.C.의 한 매장에서 수미 테리를 위한 '루이뷔통' 핸드백을 구입 (국정원 관계자가 가방을 구입하는 CCTV 화면 첨부, 가방 구매한 뒤 수미 테리와 국정원 관계자가 걸어나가는 장면 첨부)
- 2021년 5월부터 2022년 5월경까지 고급 레스토랑에서 국정원 관계자와 여러 차례 식사


▷ 윤석열 정부(2022년 5월 10일 ~ ), 공소장 내 설명 28개 꼭지 (11쪽 분량)
* 주요 서술 내용
- 2022년 6월경 수미 테리는 미국 국무장관과의 비공개회의에 참석한 뒤 한국 대사관 등록 차량에 탑승했고, 국정원 요원이 테리가 직접 작성한 메모 두 페이지를 촬영.
- 2022년 7월 수미 테리는 워싱턴 D.C.의 한 레스토랑에서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행사를 주최했고, 이 비용은 한국 국정원에서 지불.
- 2023년 1월 국정원 관계자는 수미 테리에게 북한의 고체연료 엔진 시험 관련 정보(액체연료 미사일보다 탐지가 어렵고 더 빠르게 발사할 수 있다는 등)를 제공했고, 같은 달 테리 연구원이 기고한 칼럼에도 이런 내용이 반영.
- 2023년 1월 수미 테리는 국정원 관계자와 테리가 관리하는 싱크탱크 프로그램에 국정원이 돈을 보낼 방법, 한국 자금의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적인 한국 싱크탱크에 대해 논의.
- 2023년 3월 한국 외교부 관계자가 수미 테리에게 '매우 긴급한 문의'라고 문자를 보내 '한미 동맹 축하 행사를 열 회의실 공간이 필요하다'고 요청. 수미 테리가 근무하던 싱크탱크(우드로윌슨센터)는 다음 달 '한미동맹 70년' 행사를 한국 싱크탱크와 공동 주최했고, 한국 싱크탱크는 행사 관련 비용으로 2만 5천4백 달러를 싱크탱크(우드로윌슨센터)에 지불했고,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2만 6천 달러를 전달.
- 2023년 3월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수미 테리에게 한일 관계 관련 칼럼을 요청했고, 수미 테리는 '워싱턴포스트'에 '한국, 일본과의 화해를 향한 용감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기고문을 보냄. 한국 정부 고위 관리들이 수미 테리의 칼럼에 "매우 기뻐했다"는 반응 전달.
- 2023년 4월 한국 관료가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에 대해 한국 신문에 기고문을 내줄 것을 수미 테리에게 요청했고, 온라인에 더 자세한 기사를 실어달라고 부탁하면서 500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알림. 같은 달 '한미 정상회담, 동맹 70년을 향한 더욱 견고한 길'이라는 신문 기사 등 실림.


공소장의 내용을 톺아보면, 박근혜 정부 시기의 수미 테리와 연관된 정보활동은 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부분,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수미 테리에게 고급 선물과 식사를 접대하는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후 윤석열 정부 시기의 활동은 '한미동맹 행사 공간을 마련해달라', '한일 관계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달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관련 기사를 실어달라' 등으로 보다 구체적입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부탁하고, 이를 대가로 비용을 지불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실제로 수미 테리의 기고문이 실린 국내 언론사는 그제(21일) 저녁 홈페이지에 경위문을 올리며 "부정한 과정이 없었다"고 해명하기까지 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언급처럼 "(국정원 요원이) 사진 찍힌 것" 자체도 문재인 정부 시기에 발생했던 일이 맞습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벌인 수미 테리를 향한 '선물 공세'의 행적이 하나하나 관찰돼 온 만큼이나, 공소장에는 윤석열 정부 시기 수미 테리와 한국 외교부·국정원과의 협업이 적지 않게 담겨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윤석열 정부 시기였던 지난 2022년 6월, 국정원 요원이 촬영했다는 수미 테리의 메모 사진이 미국 검찰의 공소장에 포함돼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이를 두고 "한국 정보관, 나아가 주미 한국 대사관, 외교관들의 핸드폰이 다 털렸다는 것일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굳이 대통령실이 정치 쟁점화하는지 이해 안 가" 비판도


지난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감찰·문책' 언급 이후, 해당 국정원 간부가 보직 해임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함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어느 정부인지 따질 일이냐'란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 국정원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어제(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우호적인 인사를 관리하는 건 국정원의 역할이 맞다"며 "문재인 정부 운운하면서 감찰해서 까발리는 건 하늘 보고 침 뱉기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어느 정부의 국정원이냐를 따질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당 박선원 의원도 "국정원과 외교부는 공식 논평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국익과 관련한 외교, 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임의로 공표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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