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범죄자 '악마화' 부추기는 언론… "가이드라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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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03. 오전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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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 문제 과장하는 보도에 대중 편견 강화
'엄벌주의' 여론에 사회적 낙인 효과 심해져
소년범죄를 다룬 기사 제목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나 표현이 무엇일까. 일단 ‘10대’라는 연령대 표기는 거의 필수다. 그리고 사건 개요를 단순 설명하는 용어 외에 자주 눈에 띄는 건 ‘무섭다’, ‘잔혹하다’ 같은 표현이다. 범죄사건 보도에서 ‘무서운 40대’라고는 쓰지 않지만, ‘무서운 10대’라고 쓰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무서운 10대’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더 흉포해지고 있으며, ‘어리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는 통계를 왜곡하거나 오용한 결과이며, 강력한 몇몇 사건에 언론이 집중하면서 소년범죄의 경향을 일반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년범을 ‘악마’로 만드는 데 언론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서 소년범죄 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시민미디어랩이 30일 소년범죄 언론 보도에 관한 토론회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개최했다. /김고은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시민미디어랩 2기 ‘소소소’팀은 30일 열린 소년범죄 보도와 관련한 토론회에서 “가정, 학교, 사회에 방치된 아이들의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악마화’” 하는 보도로 “소년범에 대한 인식이 과도하게 나빠지고 낙인이 심화돼 교화 이후에도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고 지적하며 소년범죄 보도 가이드라인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예은 활동가는 소년범죄의 경우 특히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낙인을 받고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많다”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소년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


소소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정치와 미디어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인 소규모 조직이다. “기본적으로 청소년 문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이예은 활동가는 “제도나 정치가 변화하려면 대중의 관심이나 인식 변화가 굉장히 필요한데 그걸 매개하는 게 언론이고 미디어”라며 언론 보도에 주목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시민미디어랩 활동을 통해 전문가 특강, 스터디 등을 진행하며 만든 가이드라인 초안을 소개했다. 가이드라인은 먼저 ‘준비단계’에서 “언론사는 왜곡되고 과장된 소년범죄 보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연간 1회 이상 교육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보도단계’에선 △당사자 및 가족의 사생활과 인격 존중 △낙인이나 부정적 인상 보도 지양 △범죄행위가 담긴 사진·영상 등 선정적 보도 자제 △수치를 과장하거나 모든 소년범죄를 강력범죄로 오인하게 하는 표현 지양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소년범죄 관련 언론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이예은 '소소소'팀 활동가 발표 자료 중 발췌.


특히 소년범죄의 경향성을 과장하는 언론 보도의 문제에 대해선 엄선희 변호사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인 사단법인 두루 소속 엄 변호사는 “통계를 왜곡하거나 잘못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숫자라는 게 객관적 사실로 보이기 때문에 보도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대중에 각인될 수 있다”며 “그것이 실제 소년범죄 특징과 차이가 있다면 굉장히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고 소년·아동에 대한 혐오를 가중할 수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왜곡된 통계에 현실도 왜곡…소년·아동 혐오 가중”


앞서 지난 2020년 서울신문은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 기사에서 통계청과 대검찰청 자료를 인용, 소년범죄가 더 심각해졌다는 언론 보도와 사회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도 2022년 기사에서 소년보호사건이 “10년간 증감을 반복했지만 큰 틀에서는 감소” 추세라고 전했다. 그런데 현실에선 소년범죄가 늘고 더 잔혹해졌으며, 가해자들의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는 이유로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이 같은 ‘여론’ 형성엔 언론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 기사에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소년범죄와 관련된 사건 기사를 접한 사람일수록 소년범죄가 더 자주 발생하고, 갈수록 흉포화되고 있다고 확신했다. 보도된 사건이 경범죄이든 강력범죄는 상관없었다. 또 기사 제목에 ‘잔혹한’ ‘무서운’ 등의 부정적 형용사가 있는 기사를 읽으면 그런 인식은 더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흉악한 소년범죄가 범죄행위 등 자극적인 묘사와 함께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대중의 편견 강화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근아 한국일보 기자의 발표 자료 중 발췌. 이 기자는 서울신문에 있던 2020년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 기사에서 소년범죄 관련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소년범죄 문제를 실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만난 아이들>이란 책도 펴낸 이근아 현 한국일보 기자는 “소년범죄에 대한 중요한 인식의 출발점이 되는 게 누구나 소년범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악마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라며 “실제 아이들은 피해자의 경험이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옆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처벌이 아니라 교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다만 “피해자가 있는 범죄의 경우 사실 다루는 게 너무 어렵다”면서 “소년범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지 말자는 말이 자칫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을 늘 염두에 둘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소년범은 악마 아닌 평범한 아이들…처벌 아닌 교화에 방점 찍어야”


가이드라인 제정 취지에도 이 기자는 공감을 표했다. 그는 “기로에 선 언론인에게 지침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자체가 상징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청소년 도박을 주제로 ‘추적60분’을 제작한 정용재 KBS PD는 “교육이 중요하다”며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갖추고 있는 회사들도 많을 텐데 주기적인 의무 교육을 통해 내용을 잘 갖춘 뒤 취재하고 방송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엄 변호사는 언론이 소년범죄 그 자체보다 국가의 책임과 법·제도 개선에 더 주목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통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소년법의 목적”이라며 “촉법소년 담론이나 잔인한 범죄라 늘어난다는 보도보다는 1호부터 10호까지 달하는 보호처분이 과연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히 운영되고 있는지, 재범률이 증가한다면 그게 소년이 흉포해졌기 때문인지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해서인지, 책임 소재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법과 제도가 실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에너지를 쏟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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