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후 '술타기' 수법 막는 '김호중 방지법' 통과 시급
1분도 안되는 사이에 소주 1병을 ‘원샷’ 했다는 것이나, 마시자마자 바로 취했다는 것 모두 비현실적인 주장임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는 정황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술타기’ 수법에 공권력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법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지법 형사6단독 문채영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9월 16일 오후 11시38분께 운전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128% 상태로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중구 한 지점까지 약 2.4km 구간에서 벤츠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주차 후 약 39초간 차 안에서 머물다가 밖으로 나왔다. 이후 약 40분 뒤인 17일 오전 0시 11분께 경찰이 음주 측정을 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측정됐다.
A씨가 차를 주차하는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틀거리고 이상행동을 했다는 목격자 진술도 나왔다.
하지만 A씨는 “당시 주차 후 차 안에서 약 39초 동안 있으며 알코올 도수가 25도인 소주(375㎖) 1병을 모두 마셨다”며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술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을 했고, 음주 측정에서 나온 결과는 차를 세운 뒤 39초간 소주 1병을 마신 결과라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경찰의 음주 측정 수치에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후행 음주’로 인한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을 빼는 방식으로 이 사건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려 했지만, A씨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처벌 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인 상태에서 실제로 차를 몰았다고 판단할만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재판부는 후행 음주로 인한 A씨 혈중알코올농도 증가분을 산출하기 위해 기존 판례에 따라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알코올 체내흡수율과 성인 남성의 위드마크 상수 등을 적용했다.
수사 당국이 이번 사건 조사과정에서 A씨 음주운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본 전제인 음주 장소와 술 종류, 섭취량, 음주 후 경과시간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점도 음주운전 정황을 입증하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재판부는 “피고인 주장대로 소주 1병을 모두 마셨다고 해도 마시자마자 곧바로 술에 취한 듯한 행동을 한다는 건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면서도 “정황증거들 내지 추측만으로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판례는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법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실제 음주운전을 한 사람도 주차 상태에서 음주측정 요구를 받는다면 차 안에서 잠시 버티다 후행 음주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술타기 수법은 지난 5월 가수 김호중 씨가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뒤 도주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음주운전 혐의를 벗어나면서 큰 논란이 됐다.
이를 계기로 여야는 술타기 수법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 마련에 나섰고, 지난달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해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개정안은 ▲술타기 수법을 통한 음주측정 방해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법정형을 음주측정 거부와 동일한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정했다. 자전거 및 개인형이동장치(킥보드) 운전자에 대해서도 같은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