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노후도 심각한 것 충분히 인식…만성적 적자로 신형 전동차 도입 늦어져"
안전전문가 "예산 부족 이유로 전동차 내구연한 다가올 때마다 법 바꿔서 계속 연장한 것"
"예산과 안전 맞바꾼 것…정부, 지자체에만 맡겨 놓지 말고 중앙 재정 적극 투입해야"
서울교통공사는 "구형 전동차의 노후화 문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만성적인 적자와 예산 문제로 곧바로 신형 전동차로 교체하는 것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전동차 내구연한이 다가올 때마다 법을 바꿔가면서 연장했던 관행으로 이런 노후 전동차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오전 지하철 1호선 의정부행 열차에서는 때 아닌 '물난리'가 벌어졌다. 객실 한복판의 천장에서 물이 약 1분 간격으로 새어 나왔는데 아래쪽에 서 있던 승객들이 난데없는 물벼락을 맞았다.
새어 나온 물의 양도 적지 않았다. 한 번 나올 때마다 종이컵 절반을 충분히 채울만한 물이 흘러내렸다. 당시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던 만큼 빗물이 샌 것은 아니고 냉방을 위한 에어컨 응축수가 새어 나온 것으로 보였다.
이날 물이 새어 나온 전동차는 서울교통공사에서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로 분류된다. 이 차량 기종은 1974년 일본 직수입으로 도입된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전동차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 지하철이 처음 개통될 당시의 '박물관급' 기종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운행하는 1호선 139편성 가운데 6편성이 이 기종이다. 전체 편성 대비 약 4.5% 정도의 비중이지만, 1호선이 워낙 장거리를 운행하는 노선이다보니 이 전동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만사항도 꽤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불만사항은 여름철 냉방능력 부족, 출입문 개폐시의 소음, 다른 전동차 대비 심한 좌우 진동 등이다. 그리고 외관으로만 봐도 노후된 것이 눈에 띌 정도라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높은 편이다.
현직 서울지하철 관련 종사자는 "전동차 운행 중에는 즉각적인 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행 능력에 문제가 없는 고장은 운행 종료 후 차량 기지에서 수리를 진행하고 있다"며 "1000호대 저항 제어 전동차들의 노후도가 심각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2027년부터 2029년까지 순차적으로 퇴역시키고 신형으로 대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호선과 개통 시기가 비슷한 2·3호선에서도 노후 전동차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동차와 동일한 기종이 지금껏 철로 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안전전문가들은 예산과 안전을 맞바꾼 것이라고 질타했다.
한국산업안전협회 관계자는 이날 "전동차의 내구 연한은 철도안전법이 제정될 당시 15년이었다. 그랬다가 기술 발전으로 인해 1990년대 초에 25년까지 연장됐다"며 "2009년에는 안전 진단을 통과한 차량은 최대 40년까지 사용할 수 있게 계속 연장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연장된 시기를 보면 모두 초기 도입 전동차의 내구연한이 가까워졌을 때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법을 바꿔가면서 계속 연장 사용해왔다는 얘기"라며 "그렇기에 저런 1980년대 제작 차량도 여전히 합법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철도운행관리자협회 관계자도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대한민국 지하철은 어느 곳이나 적자 사업이고 지자체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신형 전동차 도입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전동차 노후도 문제는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자체에만 맡겨 놓지 말고 중앙 재정을 투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