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문자가 국힘 전당대회 이슈라니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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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후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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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 재기의 비전이 있긴 하나
자기 문제를 한 위원장이 어쩌라고
국민의힘 꿈과 희망의 상인이 돼야
사람은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
나경원, 윤상현, 원희룡,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TV조선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TV토론회 시작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데일리안 = 데스크]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13일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 대참패 후 당의 전열을 정비하는 기회다. 당원들의 기대감과 생동감이 어우러져 당 전체가 우쭐거릴 시기다. 이를 갈지는 않더라도 참패에 대한 복수심으로 당이 들끓을 법도 하다. 거대 민주당의 입법농단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상황이다. 명색이 집권당이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울분의 통곡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런데 잠잠하다. 당 대표나 최고위원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만 바빠 보인다. 물론 전화나 SNS는 불이 날 지경이겠지만 겉으로는 감지되는 게 없다. 대표 선거 후보들 간의 설전만이 요란할 뿐이다. 그나마 당과 국가의 발전 방안을 둘러싼 설전이라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서로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기어이 대표가 되어야 하겠다는 의지는 나쁠 게 없지만 서로 할퀴어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내는 것은, 그야말로 하루살이 생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여당 재기의 비전이 있긴 하나
국민과 당원들은 국민의힘 새 지도부의 비전과 청사진, 그리고 방법론을 알고 싶어 한다. 선거에 대패한 집권당이 어떤 재기의 희망과 계획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뤄 가려는 지, 사분오열된 당을 여하히 단합시킬 것인지를 듣고자 귀를 세우고 있는데, 서로 헐뜯는 소리만 요란하면 참고 들어주려 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정당, 정치인의 소리는 인기가 없다. 작은 잇속에도 서로 멱살잡이, 소리 지르기를 예사로 하는 저잣거리의 소음보다 더 추하고 천해 보이기 때문이다.

9일 실시된 대표 후보 4인의 TV토론도 시청자들에게 희망보다는 실망을 안겼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의 경고 덕분이었는지, 후보들이 설전을 벌이면서도 자제하는 빛을 보이긴 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문자와 관련한 후보들의 공방이 예상처럼 거칠지는 않았다. 듣고 보는 사람들이 낯을 덜 붉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김 여사의 문자’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중핵적 이슈인 양 부각되기는 여전했다.

문제는 김 여사가 만들었다. 왜 자신의 사과 여부를 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문자로 물었다는 것인지, 그리고 전당대회를 목전에 두고 한 전 위원장이 ‘읽씹’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공개됐는지 그 과정 모두가 석연치 않다. 우선 ‘읽씹’에 대해서부터 말하자. 읽고서도 씹었다(무시하고 답을 안 했다)는 뜻이겠는데 아무리 줄임말이 유행인 시대라고 해도 이런 표현은 듣고 읽기가 고약하다. 그걸 언론들이 아예 일상어로 만들어 버리다니!

한 전 비대위원장이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던 때문에 의논 겸해 자신의 입장을 문자로 보낸 것 같기는 한데 옳은 방법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는 집권당의 총선 총지휘자의 입장이었고 공식적 입장은 누차 표명했었다. 새삼 사과하느냐 안 하느냐를 논의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부인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런 문제를 논의할 대상은 대통령이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혹 한 전 위원장과 의논해보라 했다면 그건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뜻을 전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자기 문제를 한 위원장이 어쩌라고
한 전 위원장은 물러나라는 대통령실 쪽의 압력(대통령의 지시였을지도 모르는)까지 받으면서도 자신의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김 여사 문자를 받은 이후의 입장도 다를 바 없었다.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문자에 응하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김 여사가 정말로 사과할 마음이 있었다면 아마 자신의 결심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의 답은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김 여사는 사과하지 않았다.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한 전 위원장이 김 여사의 진심을 외면한 게 아니라 김 여사가 한 전 위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셈이었다고 하겠다.

이런 논란은 전당대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의미도 전혀 없다. 필요 없는 논란으로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다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중요한 것은 전당대회를, 당원과 자유우파 국민들이 재결집하는 계기로 만드는 일이다. 이 대회를 통해 당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내일의 승리를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과제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잖아도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은 행동하기를 몹시 꺼렸다. ‘진보’를 표방했던 좌파 정당들은 수십 년간 거리와 광장에서 전투력을 키워왔다. 그동안 보수로 불렸던 우파정당은 의사당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말만으로 싸웠다. 과거 노무현 정권이 NATO(No Action Talk Only)정권이라는 조롱을 받은 바 있지만 정당 간 경쟁에 관한 한 보수세력이 바로 그런 행태를 보였었다. 몸을 수고롭게 하기를 꺼리는 기득권 세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국회의원은 어떤 경우에도 의회를 지켜야 한다. 거리나 광장에서의 투쟁은 반의회주의적인 행태다. 그러나 다수의석을 가진 정당이 독단을 일삼아 소수의 원내 활동을 원천봉쇄하고 무의미하게 할 경우는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고 국민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의사당 안에서 피켓을 들고 소리 지르는 대신 국민 곁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꿈과 희망의 상인이 돼야
국민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정치인과 정당은 꿈과 희망의 상인이어야 한다. 후보들끼리 말싸움이나 하면서 서로 상처를 입는 대신 국민이 반길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제시할 일이다. 그것을 대중의 언어로 대중 속에 가서 소개하고 설명하고 공약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본다.

거대 민주당은 점차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 이제는 그 구성원 어느 누구도, 당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고 으스대는 이재명 전 대표까지도 그 폭주에 제동을 걸 수가 없다. 구성원들이 파국을 예감한다고 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게 됐다.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거대 덩치의 숙명이다. 이건 저주 섞인 악담이 아니다. 권력이나 영향력의 과비만체엔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경험칙이다.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生於憂患而死於安樂)’. 맹자(孟子)의 말이다. 국민의힘이 이제부터라도 단합을 이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들로 무장하고 나아갈 때 국민의 신뢰는 돌아온다. 문제는 무능・무책임・나태・분열・비겁과 같은 구시대 보수세력의 병폐, 그중에서도 분열을 극복해낼 수 있느냐다. 조선시대 226년(김효원, 심의겸의 동서분당에서부터 세도정치가 시작된 순조 원년・1801년까지로 치면)간의 붕당정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집권당의 분열이었다. 권력을 장악한 당은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분당(分黨)했다. 대략 25개 정당이 명멸했다. 국민의힘이 흘려듣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밀레토스의 반란이 아테네의 부추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는 시종에게 식사 때마다 “전하, 아테네를 기억하시옵소서”라고 세 번씩 외치도록 명령했다. 그는 밀레토스의 반란을 제압한 뒤에 아테네 정벌에 나섰다. 마라톤 전투의 시작이었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재기의 의지를 가졌다면 매일 매시 자신에게 그리고 당원들에게 외칠 일이다.

“21대, 22대 총선을 기억하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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