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의 성지로 불리는 카즈베기는 세계 각지에서 트레커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철에는 눈이 내리고 산책로가 얼음으로 뒤덮일 가능성이 높아 트레킹을 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좋은 시기는 여름인 6월부터 8월까지. 날씨는 온화하고 들판에는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 있고 하얀 고깔모자를 눌러쓴 설산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참으로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9월과 10월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즐길 수 있지만 기온이 많이 떨어지므로 추위에 대비해야 한다.
즐거운 산책, 엘리아스산 하이킹
이 쾌적한 산책로는 카즈베기마을 중심에서 동쪽으로 올라가서 룸스호텔Rooms Hotel 뒤편의 엘리야Ioane Natlismcemeli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길 찾기도 쉽고 거리도 길지 않아서 산책삼아 다녀오기 좋다. 가는 길은 온통 작은 꽃들의 향연이다. 유독 노란 미나리아재비가 눈에 많이 뜨인다. 바람결에 여린 꽃들이 흔들거리며 어찌나 유혹을 하는지 발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운해와 설산, 야생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엘리야수도원에 도착하면 카즈베기산과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의 그림 같은 전망을 제공한다. 수도원 언덕을 조금 지나면 계곡에 작은 폭포도 있다. 산 정상까지 도전하고 싶었지만 등산로가 유실되어서 정상까지 산행은 어려웠다. 왕복 거리는 5.5km.
남부 오세티아 국경 부근의 계곡을 탐험하는 코스로 트루소Truso마을에서 국경지역인 자카고리요새Zakagori Fortress까지 왕복 22km이다. 예상 소요시간은 6시간 정도. 테레크Terek강을 따라 걷기 때문에 대부분이 평지여서 긴 거리이지만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트루소 밸리로 들어서니 카사라 피크Kasara Peak(3,350m)가 반겨준다. 간간이 유황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오르니 강 건너편에 360도로 펼쳐진 초록벨벳 세상에 설산들이 줄지어 달려간다. 눈도 마음도 시원해지는 파노라마 뷰이다. 강을 따라서 걷는 길은 더욱 멋진 하이킹이다. 들판에는 작은 야생화들이 살랑 살랑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아바노 미네랄 호수 앞에 도착하니 잠시 쉬면서 발을 담그고 싶은 욕심이 난다.
도착지인 자카고리요새까지 5.1km 남았을 때부터 광대한 꽃밭이 펼쳐진다.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작은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시야를 산으로 옮기니 산봉우리엔 잔설이 많이 남아 있고 계곡에 쏟아진 눈은 아직도 빙하로 남겨 있다.
폐허가 된 마을을 지나니 아바노Abano마을. 작은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로 소박하다.
갈 때는 계곡 바로 옆을 걸어갔는데 이번에는 능선 옆길을 걷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계곡물 옆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더 광활하고 시원스럽다. 천상의 화원이다. 끝없이 꽃물결이 이어진다. 돌아가는 차량 픽업시간만 아니었으면 꽃 속에 머무르고 싶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연발해서 나온다.
돌아오는 길. 호수 주변에 사람들이 무척 많다. 발을 담가보려던 마음은 접는다. 뒤를 돌아보니 먹구름이 가득하다. 잠시 후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계곡 물소리가 더 우렁차다.
게르게티 빙하트레일
게르게티 빙하트레일은 카즈베기마을에서 카즈베기산을 덮고 있는 게르게티빙하 기슭까지 1일 하이킹 코스로 조지아의 랜드마크인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Gergeti Trinity Church를 지나게 된다. 소요시간은 최소 8시간 이상이고 하루 동안에 1,600m를 올랐다가 내려와야 하므로 쉽지 않은 코스이다.
이른 새벽 카즈베기 설산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마을을 통과하면서부터 경사도가 생각보다 급해진다. 길도 많이 미끄럽다. 힘겹게 올라가면서 카즈베기 설산을 마주 하니 피곤함도 사라진다. 게르게티빙하를 향해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앞으로는 카즈베기마을, 뒤로는 카즈베기산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경치가 멋지다.
길을 오르다 만난 조지아 커플은 게르게티빙하에서 캠핑을 한다고 한다. 당일 산행인 나보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 쉬엄쉬엄 올라가고 있다.
드디어 조금씩 남아 있는 빙하가 보인다. 그 곁에는 야생화가 널려 있다. 겨울과 봄이 공존한다. 빙하구간을 만나니 피곤함도 사라진다. 빙하구간엔 부서진 돌들이 많아서 걷기가 쉽지 않다. 다른 등산객들도 무척이나 힘겨워한다. 스틱도 없이 묘기를 부리며 빙하구간을 내려오는 사람이 보인다.
드디어 쉼터. 그 옆에는 십자가가 있다. 조지아의 모든 도시, 산에는 십자가가 많다. 카즈베기산 정상 쪽을 바라보니 알티헛Altihut 3014도 보인다. 일단 조금 쉬고 에너지도 보충한 후에 길을 재촉한다. 설산을 즐기기에는 최고의 코스이다.
힘겹게 올라왔던 길이 하산할 때는 너무 미끄럽다. 다행히 스틱을 가지고 와서 아주 유용하다. 하산 방향은 올라 올 때와는 다른 루트. 두 시간을 넘게 올라왔던 길을 불과 30분 만에 내려왔다. 내려오다 보니 드넓은 꽃밭.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서 자리를 잡았다. 간식도 꺼내고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지나가던 스페인 사람 호세가 내 곁에 와서 앉는다. 구글 번역기와 내 보잘 것 없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며 이내 산 친구가 된다.
지천에 야생화가 즐비한데 눈이 곳곳에 남아 있다. 조지아 설산의 매력이다. 하산길에 만난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는 마치 드론으로 촬영한 것처럼 멋지게 사진에 담긴다. 마을이 가까워지니 마음이 느긋해진다. 산장까지 다녀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주타계곡Juta Valley은 설산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코스이다. 차우키 패스Chaukhi Pass를 넘어서 로슈카Roshka까지 트레킹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주타호수까지 트레킹을 즐긴다. 마을 입구에서 주타호수까지 거리는 편도 3.8km로 약 1시간 반 소요된다. 코스가 평이해서 피크닉 하듯 산책할 수 있다.
주타는 정말로 산골 마을이다. 산기슭에 집이 한 채씩 들어섰다. 집 숫자를 세기에도 편할 만큼 몇 채 되지 않는다. 마을 입구에서 예약한 숙소까지 가는 것도 1km도 안 되는 거리인데 어찌나 경사길이 심한지 너무 힘들다.
배낭은 숙소에 내려놓고 일단 주타호수로 향한다. 주타호수로 올라가는 길은 초반에만 조금 힘들다. 경사 길에 돌멩이와 소똥, 말똥까지 널려 있으니 발 딛기가 수월하지 않다. 언덕을 오르니 파릇파릇 초원에 작은 숙소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나무는 거의 없고 초록 양탄자가 깔린 초원에는 작은 야생화들이 가득하다. 돌멩이가 가득한 언덕길이 오르기가 힘들다면 말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니 그곳에는 사진으로 보았던 피프스 시즌Fifth Season이 있다. 설산을 배경으로 계곡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 겸 산장이다. 차우키산을 바라보고 있는 카페도 모자라 제5의 계절이라니?
빙하에선 아이들처럼 눈싸움을 즐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그곳을 조금 지나니 꽃밭에 설산이 우뚝 서 있다. 단지 2km 정도 걸어서 6월에 설산을 마주하다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풍경이다.
호숫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커플들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알록달록 텐트들이 참으로 예쁘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여기까지 걷고 돌아간다. 내려가는 사람들과 마주보는 설산의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볼더링 월Bouldering Wall이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곳도 있다. 정말 볼더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이곳에서 차우키산을 바라보니 조지아의 돌로미티라는 말에 절로 수긍이 간다. 트레일은 눈에 보일 정도로 길이 환하게 잘 보인다.
해발고도 2,740m에 도착. 바람이 차다. 해발 2,500m를 넘어서니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오르막길에 흘린 땀이 시원하게 말라간다. 길을 재촉해야 되는데 내 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길이 없어졌는데 설산 풍경은 더욱 장엄해진다. 해발 3,200m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다. 해발 3,275m 도저히 눈을 피해 가기가 어려워 아이젠을 신었다. 날씨도 추워진다. 아이젠을 신었어도 눈이 너무 녹아서 발이 푹푹 빠진다. 위험해서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다. 아쉽지만 하산하기로 한다. 먹구름까지 시커멓게 몰려온다.
해발고도 2,968m에 이르러서야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좀 느긋해진다. 피프스 시즌에 도착. 와인과 저녁식사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림 같은 풍경에 나도 들어갔다.
야생화와 어우러진 카즈베기의 설산 풍경은 알프스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천상의 화원이 바로 카즈베기에 있었다.
▶룸스호텔 숙박을 하지 않아도 레스토랑에서 카즈베기 최고의 마운틴 뷰를 즐길 수 있다. 레스토랑의 테라스에선 그림 같은 카즈베기 설산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카즈베기에 온 이유가 충분히 된다. 설산 아래엔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언덕에는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우뚝 서 있다. 동화 속 마을 같다.
▶피프스 시즌 조지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꼭 숙박하고 싶었던 숙소. 세상에 있지 않은 다섯 번째 계절에 나도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해먹에 누워 차우키산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강한 추억으로 각인되었다. 숙박이 어렵다면 주타계곡을 방문했을 때 꼭 들르면 후회하지 않을 장소이다.
▶마운틴 프릭스 카즈베기에서 트레킹을 위한 들머리, 날머리 이동은 마운틴 프릭스의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하다. 주타계곡, 트루소 밸리 트레킹,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세 곳을 운영한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