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좋은 날 산은 찬란하게 빛난다.
비가 오면 물 속에서 산은 새롭게 태어난 듯 생기있게 움직인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짐을 풀고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천왕봉을 향해 올라갔다. 제석봉을 지나도 짙은 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지리산은 온통 희끄무레한 수분 덩어리로 꽉 차 있었다.
천왕봉에 도착했을 때 넓은 정상엔 지인 외에 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작가. 그렇게 딱 세 사람뿐이었다. 짙은 운무로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운무를 일렁이게 만들기 시작했다. 가득 찼던 운무들이 빠르게 옆으로 밀려가며 그 아래 수줍게 숨어 있던 지리산의 끝없이 이어진 능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무가 사라진 곳엔 밝고 환한 햇살이 들어와서 푸른 지리산은 찬란한 녹색으로 빛났다.
빠른 시간에 일어나는 이 광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감사했다! 지리산이 나를 받아 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리산은 곧 다시 운무에 잠겼다. 장터목으로 돌아오니 산은 이미 어둠에 덮여 있었다. 대피소 마당에서 랜턴을 켜고 밥을 먹은 후 오래 앉아 있었는데, 여름이어도 밤엔 추워서 옷을 몇 겹 껴입어야 했다.
지금 지리산은 어떤 모습일까. 초록이 가득할 텐데.
김윤숙 작가
개인전 및 초대전 17회 (2008~2024)
아트 페어전 17회(2014~2023)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30회 국전)
구상전 특선(37회)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