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산] 지리산은 왜 늘 이리도 수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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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에 있으면 산은 쉼없이 움직인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햇살이 좋은 날 산은 찬란하게 빛난다.

비가 오면 물 속에서 산은 새롭게 태어난 듯 생기있게 움직인다.



흐르는 산, 백두대간 지리산. 162.2×112.1cm.
장마가 끝나가는 여름, 백무동 계곡에서 천왕봉을 향해 올라가는 산길은 지루하고 힘들었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끝없는 오름이기도 했지만, 짙은 운무 때문에 정상에 도착해도 지리산 능선을 볼 수 없으리란 생각이 더해져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짐을 풀고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천왕봉을 향해 올라갔다. 제석봉을 지나도 짙은 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지리산은 온통 희끄무레한 수분 덩어리로 꽉 차 있었다.

천왕봉에 도착했을 때 넓은 정상엔 지인 외에 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작가. 그렇게 딱 세 사람뿐이었다. 짙은 운무로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운무를 일렁이게 만들기 시작했다. 가득 찼던 운무들이 빠르게 옆으로 밀려가며 그 아래 수줍게 숨어 있던 지리산의 끝없이 이어진 능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무가 사라진 곳엔 밝고 환한 햇살이 들어와서 푸른 지리산은 찬란한 녹색으로 빛났다.

빠른 시간에 일어나는 이 광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감사했다! 지리산이 나를 받아 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리산은 곧 다시 운무에 잠겼다. 장터목으로 돌아오니 산은 이미 어둠에 덮여 있었다. 대피소 마당에서 랜턴을 켜고 밥을 먹은 후 오래 앉아 있었는데, 여름이어도 밤엔 추워서 옷을 몇 겹 껴입어야 했다.

지금 지리산은 어떤 모습일까. 초록이 가득할 텐데.

김윤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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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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