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지리산 치밭목~법천계곡] 지리를 지리답게 볼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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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치밭목대피소~중봉~천왕봉~장터목~법천계곡~중산리 18km 1박2일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중봉은 지리산을 독특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숨겨진 일출명소다.
작년 화대종주를 다녀온 후로, 오래도록 지리산이 그리웠다. 일상 속에서도 문득 지리산이 생각났고, 그때 본 풍경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구름 모자 쓴 노고단, 이끼 가득 낀 거대한 고목, 진달래꽃 물들인 연하선경, 쏟아질 듯 반짝이던 대피소의 밤하늘까지… 지리산을 이야기할 때면 늘 웃음이 났고,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지리산 능선을 걷고 싶었다.

지리산이 이토록 그리운 건,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시 화대종주는 순탄치 않았다. 2박3일 중 두 번째 날을 제외하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고 대원사로 하산할 땐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두 다리는 후들거렸고, 발바닥엔 불이 났고, 온몸이 비에 불어 있었다. 대원사계곡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탈출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이번 산행은 그 아쉬움을 달래줄 절호의 찬스였다. 대원사 코스는 '낯선 지리산'이라는 주제와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다른 코스에 비해 찾는 이가 적은 길. 그래서 지리를 지리답게 볼 수 있는 길! 치밭목대피소에서 하루 묵는 1박 2일 산행을 계획했다. 이렇게 하면 지리산을 더 천천히, 여유 있게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볕 좋은 여름날, 이신영 사진기자와 함께 지리산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치밭목대피소 아래 위치한 무제치기폭포.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실타래 같은 폭포가 3층 암벽을 따라 흘러내린다.
깊고, 넓은 지리산의 숨겨진 계곡

대원사계곡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햇살 받은 나뭇잎은 유독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줄지어 선 거대한 공깃돌 같은 바위들. 그 사이로 얼음장 같은 계곡물이 에둘러 흐르고 있었다. 짙푸른 숲과 굽이치는 계곡! 이제야 지리산에 온 것이 실감 났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기 전, 대원사로 잠시 발길을 돌렸다. 우리나라 3대 비구니 도량으로 불리는 대원사는 소박하고, 아늑한 멋이 있었다. 마당에는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된 다층석탑이 있었다. 나는 오늘도 안전산행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대원사를 빠져나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유평마을로 올라섰다. 나는 미리 조사한 내용을 선배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선배, 유평마을에는 1960년대까지 화전민이 살았대요.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항일 의병의 은신처, 이후에는 빨치산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셈이죠."

길고 긴 대원사계곡을 걸으며 지리산의 한적한 원시림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의 유평마을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로 옆으로 탐방객을 대상으로 한 가게와 식당 같은 독가촌이 몇 곳 있을 뿐이었다.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넓고, 깊은 숲으로 성큼 들어섰다. 초반 계곡길은 수월했다. 몸풀기 딱 좋을 정도의 완만한 경사가 이어졌다. 바람에 나무 흔들리는 소리와 계곡물 소리가 귀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계곡의 모습은 우거진 수풀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서서히 경사가 가팔라졌다. 숨 고르는 시간이 늘었고, 발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길 역시 수시로 변했다. 야자매트길은 어느새 계단으로 바뀌었고, 다시 흙길에서 너덜길로 변신하곤 했다. 그나마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울창한 나무 그늘이 햇빛을 완벽히 가려주었다. 냉기 머금은 시원한 바람도 골짜기 사이로 기분 좋게 불어왔다. 새재삼거리에 이르자, 신영 선배가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계곡길이 은근 길고 지루하네… 우리 조금만 쉬었다 갈까?"

산행 시작점인 대원사. 이곳부터 유평마을까지는 아스팔트길 혹은 계곡 탐방로를 따라 오를 수 있다.
선배 말대로 치밭목대피소까지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했다. 수려한 풍경 없이 길고 긴 계곡과 거친 사면길이 이어졌다. 화려한 능선길에 비하면 분명 초라하고 가난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가난함 속에는 지리의 순박함이 묻어 있었다.

"선배, 우리 폭포 한 번 보고 갈까요? 금방 다녀올 것 같은데요?"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볼 수 있는 거 다 보고 가자!"

무제치기폭포 이정표 앞에서 잠시 등산로를 벗어났다. 50m 정도 내리막을 내려가니 무언가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말로만 듣던 무제치기폭포였다. 호리병을 닮은 3층 암벽은 엄청나게 컸다. 먼 거리에서 고개를 한껏 위로 치켜세워야 그나마 전체적인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3단으로 꺾인 암반을 따라 흰 실타래 같은 폭포가 내렸다. 나는 선배에게 자랑하듯 주절주절 말했다.

"폭포 이름이 왜 무제치기폭포일까요? …(정적)… 폭포의 포말이 하늘에 무지개를 친다고 해서 그렇대요. 또, 재채기를 멈출 정도로 맑은 공기가 있다고 해서 그렇다는 속설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이곳을 무'재'치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무제치기라고 부른답니다.

한때 산청군은 이곳의 청정공기를 캔에 담아 팔려고도 했대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획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요. 하하"

어둠을 뚫고 써리봉 능선을 올랐지만, 일출을 보진 못했다. 대신 층층이 쌓인 산그리메가 우리를 반겨줬다.
선배는 내 이야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폭포를 빠져나와 다시 등산로로 들어섰다.

치밭목이 지천이었다. 30분 정도 가파른 경사를 오르자 갑자기 하늘이 시원하게 트였다. 오늘의 숙박지인 치밭목대피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원사에서부터 4시간 넘게 '땀 좀 나게' 걸은 터라 조금 피곤했다. 우리는 배낭을 내려놓고 곧장 샘터로 달려가 마른 목을 축였다. 마침, 중봉~두류봉 능선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일몰 빛이 스며든 치밭목대피소는 지리산이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그만 돛단배 같았다.

옛 선인의 발자취를 걷다

깊은 밤,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새벽 2시 30분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 대피소를 나섰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밤공기는 고요한 적막을 만들고 있었다. 죽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헤드랜턴 불빛에 기대 묵묵히 산길을 올랐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미처 보지 못하고 스쳐 가는 풍경도 많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되레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농기구 써레처럼 잔잔한 오르내림이 있는 써리봉 산줄기가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1시간쯤 지나 써리봉에 도착했다. 랜턴을 끄자 어둠 속의 천왕봉과 중봉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깨를 겨룬 지리산의 두 거인! 당장이라도 나를 덮칠 것 같은 거대한 봉우리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선배는 내게 제안했다.

천왕봉은 전세를 낸 것처럼 텅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마음껏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기 일출도 멋질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뜨네. 일단 중봉까지 올라갈까?"

"넵! 그러시죠. 중봉도 일출이 꽤 멋질 거예요!"

옳은 판단이었다. 능선을 타고 찬바람이 마구 불어왔다. 좀만 더 있었으면 분명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중봉까지 쭈욱 직진했다.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자칫하면 일출보다 늦게 도착하겠는데?'라는 걱정이 들었다. 허벅지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모른척하고 오르막을 무작정 돌파했다. 덕분에 제때 맞춰 중봉 정상에 설 수 있었다.

기대하던 중봉 일출은 없었다. 갤 것 같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그나마 살짝 붉던 지평선도 곧 회색으로 변했다. 그저 층층이 쌓인 산그리메만 있을 뿐이었다. 고대했던 일출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지리산은 그 자체만으로 큰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중봉부터는 옛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 지리산에 대한 선인들의 유람기는 100편 넘게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김종직이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이 지리산 유람록의 효시로 꼽힌다. 1471년 함양군수로 부임했던 그는 1472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지리산 천왕봉 일대를 유람했다. 그때 그는 앞으로 우리가 걸을 중봉-천왕봉-제석봉 능선을 따라 지리산을 여행했다.

써리봉에서는 지리산의 두 거인, 중봉과 천왕봉이 보였다. 이곳에서 일출을 봐도 꽤 멋질 것 같았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유몽인의 지리산 유람록에는 400년 전 지리산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지리산에 대해 '나뭇가지는 산 쪽을 향해 굽어 있고 이끼는 나무를 뒤덮어서 헝클어진 모양새가 마치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서 있는 듯했다', '서리와 눈보라와 거센 비바람에 시달리느라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말라 죽은 고사목이 열 가운데 두셋이나 되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 지리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천왕봉에 성모사聖母祠라는 판잣집이 있었다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찾아와 성모를 떠받들며 복을 빌었다는데, 천왕봉 아래에는 이들이 머무르거나 묵을 수 있는 판잣집이 빙 둘러 늘어서 있었다고도 한다. 지금으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풍경이다.

중봉에서 천왕봉까지는 멀지 않았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선 고사목은 가만히 앉아 침묵하고 있었다. 마지막 오르막을 오를 땐, 등산객이 꽤 있겠거니 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전세라도 낸 듯 천왕봉 일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설레는 목소리로 선배에게 말했다.

천왕봉 인근에서 볼 수 있는 고사목. 실제로 천왕봉 인근은 고사목 집단 군락지이기도 하다.
"우리 완전 행운아네요! 이렇게 사람 없는 천왕봉은 처음 봐요!"

선배가 답했다.

"정말? 평소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근데 일출 보려고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그것도 나름대로 장관이겠는데!"

선배 말도 일리 있었다. 나 역시 사람 없는 천왕봉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졌다. 산과 사람이 어우러진 풍경. 이것이야말로 천왕 일출을 완성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 없는 천왕봉은 처음이었다. 왠지 밋밋하게 느껴졌다. 역시 천왕봉은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야 진정한 멋짐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재미와 소망 가득한 칼바위골

우리는 중산리로 곧장 하산하지 않고, 통천문,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리산에 머물고 싶었다. 대피소 벤치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며 유유히 아침식사도 해치웠다. 다시 배낭을 메고 칼바위골(법천계곡)로 내려가려는데, 앞장선 선배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야~ 여기 무릎 나가기 딱 좋겠는데?"

하산길 경사가 상당했다. 돌계단의 단차도 높았다. 다리에 피로가 쌓인 상태에선 다치기 십상이었다. 우린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내디뎠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무릎에 알싸함이 밀려왔다.

예상외의 복병이었지만 칼바위골 등산로는 무척 좋은 길이었다. 계곡을 따라 걷기에 더위 걱정 하나 없었고, 중간중간 볼거리도 많았다. 유암폭포, 법천폭포 같이 근사한 소와 담이 길고 긴 하산길을 재미나게 만들어줬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을 거쳐 칼바위골로 하산하면 지리산 주능선의 매력을 일부 맛볼 수 있다.
홈바위교를 지나자 법천계곡의 명물인 돌탑 지대가 보였다. 수많은 이의 소망을 담은 돌탑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도 조그만 소망을 담아 돌멩이 하나를 올려두었다.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용소를 지나, 위아래로 마구 흔들거리는 출렁다리를 건너자, 끝을 알리는 칼바위삼거리가 나왔다. 선배는 꽤 지쳐 보였지만, 입가엔 미소가 있었다.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첫 지리산 산행 어떠셨나요? 꽤 근사한 여행이었죠? 다음에 또 오실 건가요? 아님 지금 당장 천왕봉 왕복할까요?"

칼바위골 하산길에서 만난 유암폭포. 이곳에선 공깃돌 같은 바위가 잔뜩 쌓인 법천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칼바위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부터 중산리까지는 쉽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선배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무리야 무리. 근데 정말 좋았어. 다음엔 카메라 없이 가볍게 올라보고 파. 간만에 기분 좋게 산행해서 기쁘다!"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중산리까지 트레일러닝 하듯 뛰어 내려갔다. 계곡을 따라 경쾌한 웃음소리가 잔뜩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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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대원사 약수! 유명 물 소믈리에가 인정한 지리산 청정수

산행 시작점인 대원사에는 세계적인 소믈리에, 마이클 마스카Michael Mascha의 극찬을 받은 약수가 있다. 2023년 지리산을 찾았던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지리산 대원사에서 마셨던 약수"를 꼽았다. 또한 "대원사 약수는 수천 년 쌓인 토양이 필터 역할을 해 불순물을 걸러냈고, 시원한 목넘김에 계속 마시게 됐다"고 했다.

미니 인터뷰

지리산 개인콜택시 기사 하태정

"많은 것이 달라진 지리산, 청정 자연은 여전해"

하태정(58)씨는 산청 토박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50년 넘게 살았다. 그는 지리산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봄이면 중산리 인근이 온통 진달래꽃, 도라지꽃으로 뒤덮였었는데, 지금은 그 흔했던 약초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변한 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태정 기사는 20년 전에 비해 이곳을 찾는 이도, 이곳에 사는 이도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비하면 등산객이 10분의 1도 안 됩니다. 거주민도 많이 떠났고요. 요 근처 삼장초, 신천초는 전교생이 10명 언저리예요. 학교가 텅텅 비었죠. 그래도 지리산 청정 자연은 여전합니다. 대원사 쪽으로 올라가면 원시림 같은 숲이 쫘악 펼쳐질 겁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조일규(51) 팀장, 양영준(38) 주임

"천왕봉~대원사 코스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멋진 길입니다. 중봉에서는 색다른 각도로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죠. 하지만 난이도가 꽤 높은 길이기도 합니다. 거리도 길고, 경사도 가파른 편이죠.

특히 중봉~치밭목 구간에서 구조 요청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절대 무리해서 산행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서정원(54)

"친구들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화대종주하고 있어요. 노고단, 연하천, 장터목대피소에서 하루씩 묵었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지리산은 참 깊고, 높고, 넓은 것 같아요. 그 안에 있으면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죠. 40km 넘는 산길을 걸으며 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화대종주의 짙은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듯합니다."

문주성(28)

"예기치 못하게 대피소에서 하룻밤 묵게 됐습니다. 원래 무박 화대종주를 하려 했는데, 중봉에서부터 갑자기 가슴 통증이 심해지더라고요. 대피소에 연락하니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아마 치밭목대피소가 없었다면 조난당했을지도 몰라요. 큰 빚을 진 기분입니다. 그나저나 대피소 숙박은 처음인데, 시설 참 좋네요! 다시 한 번 오고 싶습니다."

김석준(22), 이석재(25)

"저희는 군대 동기예요. 이석재군의 버킷리스트였던 화대종주를 하고 있어요. 지리산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좋았어요.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도 매번 색달랐고요. 근사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버너나 코펠이 없어 2박3일 내내 비화식만 먹었어요. 매일 밤 풍기던 고기냄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어서 빨리 하산해서 맛있는 고기 먹고 싶네요!"

어쩌다 마주친 장비

고싸머기어GOSSAMER GEAR 범스터 힙색

취재산행은 일반적인 산행과 조금 다르다. 수시로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메모하고,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야 한다. 물론 이것들을 배낭이나 주머니에 넣어 산행할 수도 있지만, 무척 불편하다. 얼마 안 가 배낭을 벗어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보조가방은 이럴 때 큰 힘을 발휘한다.

범스터 힙색은 보조가방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크로스백으로 메거나, 허리에 찰 수도 있다. 이 녀석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단 88g에 불과하다. 수납공간은 1.5L 정도 된다. 이곳에 휴대폰, 똑딱이 카메라, 행동식 같은 것들이 몽땅 들어간다. 수납공간도 잘 구분되어 있다. 덕분에 필요한 물건을 쉽고, 빠르게 꺼낼 수 있다.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 범스터 힙색은 산행 '보조'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산행길잡이

과소평가된 지리산의 숨겨진 산행 코스다. 찾는 이가 적어 한적하게 지리산을 만끽할 수 있다. 대원사와 중봉 사이에 치밭목대피소가 위치해 있다. 이왕이면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며 지리산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을 추천한다.

길은 대체로 선명하다. 대원사부터 치밭목대피소까지는 별다른 조망 없는 계곡길이 이어진다. 대피소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지리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경사는 가파른 편이지만, 낯설고, 웅장한 지리산의 풍경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특히 써리봉과 중봉에서는 천왕봉을 가장 천왕봉답게 바라볼 수 있다.

천왕봉에서는 곧장 중산리로 내려서는 것이 아닌, 장터목을 거쳐 칼바위골로 하산한다. 최단 하산코스는 아니지만, 확 트인 지리산 능선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칼바위골 하산로는 꽤 경사가 급한 편이다.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통(지역번호 055)

들머리인 대원사까지는 대중교통이 다소 번거롭다. 그나마 덕산버스정류장에서 군내버스가 하루 3회, 시외버스가 하루 6회 대원사를 경유한다. 문의 덕산매표소 974-3346.

부산서부사상버스터미널에서 대원사로 가는 시외버스도 있다. 하루 2회(14:25, 17:00) 운행한다. 문의 영화여객 745-4883.

중산리에 차를 주차해 두고 대원사까지 택시로 이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산리정류장에 콜택시 전화번호가 여럿 있다. 약 30분 소요되며, 요금은 3만5,000원 정도다. 문의 972-6363, 972-9393.

맛집 & 숙박 지리산 맛집, 숙소 기사 참조 등산 지도 _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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