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추모로 물든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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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14. 오후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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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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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7번째 기림의 날, 행사 참석 열기 뜨거워
대구경북 생존 피해자 단 두 명… 기념식과 함께 추모 예술제 진행
이용수 할머니, "손배소 이미 승소, 하루빨리 집행하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14일 대구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 마련된 평화의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안성완 기자 [email protected]


31도까지 치솟아 아지랑이가 피는 날씨에도,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겠다는 대구 시민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는 수많은 시민과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4일 정오 대구 중구 오오극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이 진행됐다. 행사가 열린 8월 14일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한 날이다. 2017년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번 행사는 기림의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돌아가신 피해자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총 25명이었지만, 현재는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추모 예술제를 담당한 임은영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예술진흥부 과장은 "지난해에는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갈음해 추모의 의미를 되새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추모 행사를 할 수 있어 더욱 뜻깊다"고 설명했다.

기념식을 진행한 김영아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처장은 개회사를 통해 "전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한 때다"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앞으로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추모식에는 예상보다 많은 참석객이 찾아와 자리를 빛냈다. 극장의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앉거나 문 바깥에서 귀동냥을 할 정도로 시민들의 참석 열기가 뜨거웠다.

자녀와 함께 기념식을 찾은 이상미(36) 씨는 "10살이 된 아이가 학교에서 막 근대사에 대해 배우고 있다. 행사를 본 아이가 역사책 안에만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기억하고 연대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며 소감을 전했다.

기념식이 끝나고 5명의 예술인들이 '홀씨가 꽃을 피우다'는 주제로 낭독회, 연극, 영상 시연 등 추모 예술제를 펼쳤다. 추모 예술제에는 복원된 여성 독립투사의 사진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즐거운 한때를 담은 영상이 함께 시연됐다.

조해성(22) 씨는 "광복절을 앞두고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번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직접 행사에 참여한 덕에 올바르고 자세하게 피해 사실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참석자들은 대구 남구 소재의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로 이동해, 평화의 소녀상에 헌화했다.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내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대구광역시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소녀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대구 남구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를 찾아 평화의 소녀상에 헌화한 뒤 눈물을 흘리는 이 학교 학생회장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화 행사에는 대구 출신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도 참석했다. 이 할머니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대만에 끌려간 사실을 증언한 바 있다.

이 할머니는 평화의 소녀상의 뺨과 어깨를 쓰다듬으며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남은 것은 집행뿐"이라며 "하루빨리 일본 정부가 판결 결과를 이행해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대표로 헌화 행사에 참석한 채연아(18) 양은 헌화 행사 도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

채 양은 "할머니가 학교에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다큐멘터리로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돌아보고 왔다"며 "영상으로 접했던 할머니를 직접 뵈니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학교 안에 있는 소녀상을 볼 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주신 기억과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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