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동백꽃 사연'-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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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매일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 김영숙


꿈 많던 여고2년 때 나는 목포 발 광주행 열차 내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바다건너 진도라는 섬에 사는 남자는 군인이었고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길이었다. 내가 우연히 그 남자를 만난 건 인연이었고 운명이었다. 그는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육군3사관학교에 입학 소위로 임관한 다음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 뒤 시간이 흐른 후 우린 결혼을 약속했고 꿈에 부풀어 앞날을 설계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와 나를 행복의 문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1972년 그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월남(현 베트남)의 전쟁터로 떠났다. 그리고 만 2개월 후 한줌 재로 돌아왔다. 나는 전사통지서를 받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하늘이 노랗고 도저히 본정신일 수 없었다. 절대로 믿을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현실,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고 휘청휘청 발걸음을 옮겼다.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내가 다녔던 여고의 교화가 동백꽃이었고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섬 진도의 군화가 묘하게도 동백꽃이었다. 꽃말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됐다.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저려오는 느낌이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마음에 무거운 추를 달고 살아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영영 지워지지 않는 그의 환영은 제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내 가슴속에 박혀 떨쳐낼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내 안의 그리움이었다. 나는 50년 세월이 흐른 후 굳은 결심을 하고 그동안 마음 안에 담아뒀던 그의 혈육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만난 후 대성통곡을 했다. 90이 가까운 그의 형과 형수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세상에 이런 일이!"를 연발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나는 큰절을 올린 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도 아파 견딜 길이 없었다. 그가 마치 살아있는 듯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의 사진을 움켜쥐고 다시 한 번 통곡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문득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을 다시금 떠올리고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오래전부터 섬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꽃말 '나도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듯 중얼거렸다.

스산한 바람이 산자락을 휩쓸고 지난다. 앞 뒤 옆 모두가 산이다. 검푸른 숲이 울창하게 둘러진 위로는 도로가 구불구불 나있다. 언제였던가. 그곳을 지나 깊은 골짜기 허름한 동네에 머물었던 시간이.

1972년 봄 어느 날 나는 거기에 있었다.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자못 가슴이 들떠있었던 나, 곧 그가 떠난다. 멀고 먼 월남의 전쟁터로. 나는 그를 필사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이미 결정된 일이고 그의 생각이 완고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슴한구석이 석연한 가운데 나는 그를 웃으며 보내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디선가 모진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죽음을 예고하고 안타까움을 전하는 걸 나는 차마 알지 못했다. 이젠 그곳에 살아남은 자만이 만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죽은 자는 갈수 없다. 아니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이미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가 월남의 전쟁터로 떠나기 전 우린 꿈을 꿨다. 미래에 대한 꿈, 벅찬 희망을 안고 앞날을 설계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모진 바람은 모든 걸 삭제해버렸다. 먼 날, 50년 전의 일이다. 빨간색 승합차가 높다란 고개를 넘어 산비탈을 미끄러지듯 달려 내려와 멈춰 설 때면 많은 군인들이 한꺼번에 내린다. 비장한 표정과 힘찬 발걸음으로 훈련장을 향해 내딛던 군화와 뒷모습, 그때도 바람은 어김없이 불어 날렸다. 숲이 우거진 골짜기와 허름한 동리가 정겹기보단 왠지 고독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물론 이제와 생각한 거지만.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야자수다방 등에서 와글거리던 군인들은 자취를 감춰갔다. 어디로 가는 걸까. 멀고 먼 월남(현 베트남)의 전쟁터로 그들은 떠났다.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을 남기고. 하지만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의 앞일을. 그것도 전쟁터로 떠나는 건데. 나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음속으로는 꼭 살아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드러내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지 마요."

"안 돼. 가야해. 국가의 부름인데."

"남의나라잖아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그건 아니지. 6.25때 우리나라도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잖아. 서로 어려울 땐 돕는 게 도리지."

"그래도 난 싫은데."

"걱정 말고 기다려. 반드시 살아 돌아올 테니."

믿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어기고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이미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슬픔이 왈칵 밀려왔다. 나는 왜 그때 그 바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걸까. 바람은 계속 내 목덜미를 스치며 가지 말라고 사람의 운명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는지도 모르는데.

죽음보다 더 큰 배신이 있을까? 죽음은 배신 중에도 가장 큰 배신이다.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해봤다. 어디 한곳 하소연할 곳도 기댈 곳도 없던 암담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스라이 먼 날 그때의 시간 속으로 밀려갔다. 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을 때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비틀비틀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해있고 눈앞은 온통 흑색이었다. 정신은 이미 먼 곳으로 떠나있는 상태에서 나는 울 수조차 없었다. 울어서 될 일도 아니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고 풀릴 일도 아니었다. 그 시간 순간 무엇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전사통지서를 들고 온 그의 형 눈앞을 벗어났다. 마음속은 한없이 슬프고 버겁기 그지없었다.

영결식 날, 국립서울현충원엔 여러 명의 합동영결식이었기에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나는 멀건 눈으로 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이미 정신이 떠나버린 상태였기에 어떤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미리 준비된 묘비 앞에서 나는 넋을 놓고 얼마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드디어 그의 유골이 땅속에 묻히고 어쩌면 월남의 전쟁터로 떠나기 전 만약 시신을 찾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 군번과 함께 이름을 적어 봉투에 넣어 제출했다는 그것이었는지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암튼 그 위로 비석이 세워지고 여기저기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유품 중 땀에 절여진 군복 한 벌을 들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쪽 어깨엔 백마부대 마크가 가슴엔 검은 글씨로 이름이 적혀있는 군복이었다. 전체가 하얀 소금이 박힌 듯 묻어있었다. 가슴이 저리고 미어지는 슬픔을 감당할 길 없었다. 나는 저만큼 멀리 인적 드문 곳으로 간 후 실컷 소리 내 울었다. 창자가 끊어질 만큼.

한밤중 나는 길을 떠났다. 멀고 먼 월남(현 베트남) 땅으로. 몇 시간이 흘렀을까. 어둠속에 갇힌 나는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었다. 몸은 허공에 붕 떠있었고 정신은 어느 곳 깊은 계곡에 정지돼 있었다. 음험하고 습한 어느 곳에 멈춰진 내 머릿속은 이미 혼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왜 나는 이 죽음의 계곡을 찾은 걸까. 단순히 망상 속 의문의 계곡인 까닭일까. 아니다. 나는 분명히 직접가보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픈 갈망이 있었던 탓이다. 드디어 나는 계곡에 다다랐다. 험준할 줄 알았는데 처음 오르는 길은 순조롭게 이어져있었다. 양옆으로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이 나를 에워싸고 뭔가 속삭이듯 귀엣말을 했다.

"왜 왔어? 이곳은 죽음의 계곡이야. 한번 들어서면 살아서 돌아가기 어렵다는 거 몰라? 죽음 아님 병신이 된다니까. 더 깊숙이 발 디딘 다음 후회하지 말고 돌아가. 어서!"

"안 돼! 난 반드시 확인할게 있어.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그건 전사자명단에 기록돼 있잖아. 통지서도 받고 영결식도 했을 거 아냐?"

"믿을 수 없어. 그리고 모두다 나라를 위해 싸운 호국영령으로 기억해주지 않는 게 난 싫어. 억울하다고!"

"그렇게 생각할 거 없어. 어차피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영령들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니까. 그것이 그들의 충성심이고 마땅한 죽음이라고 생각하거든.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걸."

"듣기 싫어!"

나는 나무둥치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나무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 그곳에 그대로 서있었다. 하지만 내 발가락은 몹시 아팠다. 억울한 심정에 나는 소리 내 울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숲속은 어두웠다. 올빼미울음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음험한 곳에 나는 서있었다. 두려움은 없다. 오직 그를 찾는다는 일념만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산기슭에 몸을 기댔다. 축축한 냉기가 전신으로 스며든다.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시신이 없다. 멍청한 짓이다. 알면서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배낭에 넣어온 식사대용품도 이젠 단 한 개도 없다. 그렇다고 풀잎을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다.

유독 독충이 득시글거리는 이곳은 망망 수이까이 일명 킬러계곡이다. 나는 이 죽음의 계곡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의 차이점은 숨 쉰다는 거 먹고 싼다는 거 보고 듣는다는 거밖에 다를 게 없다. 나는 죽은 자와 대화한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고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서울 게 없다. 그가 내 곁에 있고 항상 함께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상이고 상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내 자신이 만족하면 그만이니까. 그치? 그가 대답한다. 그렇다고. 풀벌레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진 않는다. 비록 육안으로 볼 수 없어도 나는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스쳐 지나는 뭔가가 살갗을 파고든다. 살아있다는 증거다. 느낀다는 거 두려움 공포심 기대감 그리고 움직이고 소리 낼 수 있다는 거 모두 존재함을 의미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표현할 수도 없고 거부도 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놔버린 끝인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찾고 싶다. 한줌 재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내 비정상적인 행동에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미쳤다고. 50년 전에 전사한 시체를 찾는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얘긴가. 이미 시신은 부패되고 아님 화장돼 뼈조차도 없을지 모르는 일인데. 만약 버려졌다 해도 벌써 뼛조각은 땅속 깊이 파묻혀 강산이 몇 번이고 변할 동안 흙과 뒤엉켜 자연에 흡수돼 버렸을 텐데. 영혼이나마 붙들고 살면 그만이지 무슨 미친 짓! 비웃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더욱 헤맨다. 비웃음에 먹물을 끼얹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더 깊숙이 들어갔다. 계곡은 첩첩이 둘러져 바위산과 이어져있다. 저만큼에 동굴이 보인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기어올랐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전신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는 결국 동굴 앞에 다다랐다.

동굴입구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입구부터 음산함이 압도해왔다. 첫발을 내딛기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살짝 손끝을 움직였다. 군데군데 총알이 박혔던 흔적이 남아있는 듯싶다. 그때의 현장이 스크랩처럼 눈앞을 스친다. 수류탄과 총탄이 날아다닌다. 부비트랩의 잔인함이 곳곳에 널려있었다는 곳도 얼핏얼핏 뇌리를 지난다. 누가 죽였나. 누구의 총에 맞아 스러져갔나. 발을 잘못 디뎌 부비트랩의 죽창에 혹여 찔려 죽지는 않은 걸까. 온갖 상상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는 누굴까. 물론 적군이었겠지만 원망스럽다. 왜 하필이면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을까.

동굴을 떠나 산길을 따라 걷는 중에도 나는 오만가지 생각에 몸을 떨었다. 올빼미는 울지 않았다.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에도 소리 없이 다가가 상대를 제압한다. 음흉한 산새다. 하긴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세계에서 그것은 자연의 이치 삶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천적은 어느 곳에든 있기 마련이니까. 약한 자는 강한자의 먹이가 된다. 전쟁의 현장에서도 그랬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절박한 현실 앞에 그들은 죽일 수밖에 없었던 걸까. 참혹한 현장, 나는 지금 거기에 서있다.

죽음은 끝이다. 다음이란 없다. 영혼? 그것도 없다. 다만 살아있는 자의 바람일 뿐이다. 모든 것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슬픔도 괴로움도 고통의 기억조차도. 개죽음, 슬픈 역사, 잊힌 영혼들, 어디로 가야하나. 나는 꿈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몸부림쳤다. 더욱이 세월의 흐름에 모두 잊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일부 기억이 남아있다면 용병 당연히 나라의 부름을 받고 파병된 군인일 뿐이다. 군인의 아내는 울지 않는다. 군인을 아들로 둔 어머니도 울지 않는다. 그래서 참았다. 입술을 깨물며 두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환영, 이젠 정녕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찾아야겠다. 아니 가봐야겠다. 어디서 어떻게 숨져갔는지 난 반드시 알아야겠다. '잘 가.' 월남으로 떠나기 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서 버스를 탈 때 내 등 뒤에 대고 그가 했던 말 그리고 뒷모습, 그게 끝이다. 훈련장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던 그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면 격려의 말이라도 해주고 힘껏 사랑한다고 소리라도 지를 걸. 나는 후회 속에 파묻혀 몇날 며칠 가슴앓이를 했다. 잘 가, 그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때 나는 미처 생각조차 못했었다. 이제와 되돌아보니 나는 정말로 바보였던 모양이다.

더 깊숙한 계곡으로 들어섰다. 울퉁불퉁한 산길이 험하기 이를 데 없다. 간신히 발을 내디디며 숲을 헤치고 아무리 찾아봐도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을까. 두 눈을 부릅뜨고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없다. 어디선가 산새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넌 아니? 그때의 일을. 나는 산새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산새는 벌써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돌 바위와 흙더미가 군데군데 보였다. 나뭇잎과 뒤엉켜 어지럽게 널려있는 숲속 광경이다. 개미도 풀벌레도 이름 모를 독충도 재빠르게 움직인다. 사람이 죽었다. 벌레들은 사정없이 들러붙어 살을 뜯고 피를 빨기 급급하다. 소름끼치는 광경이 내 환상 속에 머문다. 온몸이 으스스 떨려 급히 몸을 돌렸다. 까마귀 떼가 줄지어 몰려온다. 하늘이 시커멓게 변해간다. 어둠이 내려앉은 계곡은 산자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온통 고요한 가운데 살벌한 기운만이 좍 깔려있을 뿐이었다.

습한 공기가 산자락을 덮어왔다. 그런 다음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풀벌레들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소리마저 내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적막감이 계곡전체에 깔려있다. 나는 오싹한 기분을 끌어안은 채 온몸을 움츠렸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직된 내 몸은 이미 혼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후줄근 비를 맞으며 나는 어둠에 휩싸인 숲을 바라봤다. 어디쯤일까. 그가 숨진 곳은. 망상에 사로잡힌 나는 현실과의 사이를 좁힐 수 없었다.

"오늘도 힘들었어요?"

"매일 그렇지 뭐."

내 물음에 그는 싱겁게 대답했다.

"하긴 훈련병이 입소한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요."

"힘든 거 없어. 보람을 느낄 뿐이지."

"천직이라고 생각하니 그럴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암튼 시장하실 텐데 식사먼저 하세요."

"오케이."

그는 수저를 들었고 젓가락으로 연신 반찬을 집어 입에 몰아넣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허상일 뿐이다. 다만 내 눈에 그는 분명 존재하고 지금 순간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허망한 빈자리가 내 눈에 들어올 때는 내 마음의 공허가 뿌리 채 흔들린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슴이 뛴다. 부리나케 거실로 나가보지만 그는 없다. 어디로 갔지? 눈망울을 굴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리지만 그의 모습은 당최 보이질 않는다. 텅 빈 소파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TV화면이 내 눈 속을 꽉 채워온다. 불러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침실에도 욕실에도 베란다에도 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때야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다시 주방을 향했다.

식탁위엔 조금 전 그가 먹었던 밥과 반찬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단 한 톨의 밥알도 하나의 반찬도 건드리지 않은 채로. 혼이 먹고 간 음식은 살아있는 자의 육안으론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만족했다. 암튼 그는 맛있게 먹었고 분명 수저와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고마운 맘에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주섬주섬 밥그릇과 반찬을 정리해 빈 그릇은 싱크대에 넣고 밥은 밥통에 반찬은 냉장고에 넣었다.

'커피라도 마시고 가지.'

나는 아쉬움에 또다시 두런거린다. 그리고 주방을 빠져나와 여기저기 훑어본다. 베란다 안방 등 아무리 살펴봐도 역시 없다. 베란다에서 창문너머로 바라보는 하늘빛이 유난히 붉다. 아마도 그는 벌써 도착해 안주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늘 끝 저 멀리 산자의 손끝이 닿을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 죽음의 골짜기에 머물러야만 하기에.

'잘 자요.'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듯 중얼거렸다. 그가 화답이라도 하는 듯 하늘빛이 점점 검게 변해갔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맘 가는대로 글을 써내려간다.

'저는 꿈을 꿉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꿈. 27세의 당신과 22세의 제가 어딘가를 걷습니다. 하얀 구름이 하늘 가득한 먼 곳을 바라보며 가슴속엔 한없는 희망이 부풀어 오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저는 허공에 손을 저으며 붙들려고 몸부림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역시 꿈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허무한 마음에 저는 눈물만 흘립니다.'

그리움의 강은 마르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영원히 내 가슴속에서 잔잔히 흐를 뿐이다. 때로는 거친 비바람에 지칠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자리 그곳에 머물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그리움을 삶과 죽음이라는 먼 거리에서도 늘 간직하고 산다.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강은 안개처럼 연기처럼 사라지는 때도 있다. 손을 내밀면 저만큼 멀어지는 그리움의 실체는 누구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오묘한 상징일 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나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를 그리워하든 그건 오롯이 내 자유다. 다만 애석한 것은 그가 저세상에서 내 그리움을 알아줄지 그게 문제다. 물론 알든 모르든 상관은 없지만 될 수 있음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모르겠다. 그러므로 영원한 숙제로 남을 듯싶다.

"꽝!"

천지가 요동친다. 불길이 치솟고 주변이 온통 생지옥이다. 산새는 전부 날아가고 흔적도 없다. 피가 고인다. 흐른 핏물은 마침내 강에 흡수된다. 강물과 뒤섞인 피는 그리움을 뒤로하고 끝없이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결국 바다로 가겠지. 더 많은 그리움을 집어삼키려고. 계곡에 널브러진 시체위로 까마귀 떼가 몰려든다. 이미 이 세상과 멀어진 그들은 막을 힘을 잃었기에 조금도 거부하지 못한다. 여기저기 시신들이 흩어져있는 끔찍한 현장, 나는 오늘도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그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붙들어 안고 한없이 울고 싶은 마음에. 진정 떠나기 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걸 후회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하늘이 높은 곳에서 음울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밤이나 낮이나 나는 잠만 잤다. 자면서 꿈을 꿨다. 계곡을 헤매는 꿈이었다. 울창한 숲에는 벌레가 득시글거렸다. 파리, 모기, 그 외의 독충들이 마구 달라붙는다. 한번 물면 절대로 떨어져나가는 법이 없다. 기어코 피를 빨거나 물어뜯고 만다. 지독한 해충들이다. 그저 피를 빨기 급급한 모양으로 윙윙 소리를 내며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거기에 때론 뱀까지 달려들어 못살게 굴었다. 나는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며 떼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산은 가파르고 험준했다. 내 몸 곳곳에는 피가 맺혔고 가시에 찔린 곳은 따끔따끔 아픔을 더해줬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햇

빛이 차단된 숲속은 어둡고 음험할 뿐이었다.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막연한 공간,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삭막한 곳을 나는 헤매는 중이다.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시신을 찾기 위해서였다. 50여 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아직까지 살아있을 턱이 없다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러므로 무모한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없다. 나는 이렇듯 현실과 동떨어진 꿈속 헤맴을 멈추지 못했다.

어디선가 간혹 산새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름끼치도록 적막한 산 숲의 유일한 울음소리는 곧 내 맘을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대 어디 있는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대의 영혼이나마 만나고 싶은 내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날은 언제일지 그것만이라도 알려주오. 나는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산길 어느 곳에 풀썩 주저앉았다. 주변은 온통 숲으로 뒤덮여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오로지 푸름만이 전부일 따름이었다. 막막한 심정에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나 숲은 메아리조차 되돌려주지 않았다.

뱀에게 묻는다. 찾을 길이 없겠냐고. 뱀이 답변한다. 스르륵 몸을 피하며 날 따라오라고. 곧장 일어서 따라가 본다. 결국 가시덤불 속으로 뱀은 사라져버린다. 다시금 허망함이 내 가슴전체를 채워온다. 영혼이 묻는다. 날 찾는 이유가 뭐냐고. 그리워서 단지 그것뿐이라고 나는 소리쳤다. 그리움엔 끝이 없다. 영원히 가슴속을 채우고 달려들기만 한다. 마치 숲속의 뱀처럼 무작정 들러붙는 독벌레들처럼.

해가 질 무렵 먼 산이 어둠으로 뒤덮일 때면 나는 더욱 간절한 그리움을 갖는다. 그가 어둠속에 묻혀 그리움의 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까닭이다. 난 아직도 서성이는데, 그리움에 묻혀 계속 주변을 맴도는데, 그는 깜박 잠들어버린 것만 같다. 불러도 대답 없고 기억에서조차 차츰 멀어져간다. 세월의 강이 아가리를 벌리고 거침없이 다가온다. 그리워하지 말라고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나는 언제쯤 그 곁에 머물게 될까. 그땐 정녕 그리움의 강을 건너 힘껏 달려가리라.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노라고 정말로 그리웠노라고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맘껏 토로하리라.

그리움의 강은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지금 시간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잔잔하면서도 요동치는 내 속마음을 집어삼킨 채.

슬픔이 왈칵 밀려온다. 닿을 듯 말 듯 허공에 손을 젓는 내 손끝에서 그는 점점 멀어져간다. 그리움은 거기서 끝이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이승과 저승의 강이기에.

푸른빛 산이 내 시야를 얼핏얼핏 지난다. 울창한 숲도 굴곡진 산길도 화염이 솟아오르는 시뻘건 광경도 모두 내 안에든 허상의 세계다. 어둡고 험준한 산속 그가 숨진 곳, 내 마음은 여전히 그곳으로 달려간다. 함께하기 위해서 우린 하나이기에 어쩌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 아직도 여기 누워있는 거예요? 세월이 이토록 많이 지났는데도?"

"나갈 수가 없어."

"저는 어쩌고요. 저도 갈래요. 당신이 계신 곳으로."

"안 돼! 이곳은 어둡고 추운 곳이야. 한번 발 디디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그래도 그리움에 갇혀 사는 거보단 나을 거 아녜요."

"차라리 그게 낫지. 생각의 무덤은 영원할 수 있으니까."

"싫어요! 이젠 지쳤어요. 비록 춥고 어두워도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
"그건 당신 맘대로 되는 게 아냐. 하늘의 부름이 있어야 되는 거지."

"알아요. 하지만 저는 이승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요. 너무도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요."

"그래도 견뎌야해. 이곳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나는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알았어요. 당신 말대로 할 테니 제가 갔을 땐 꼭 거기 계셔야 돼요. 딴 곳으로 가지 말고."

"알았어. 약속할게."

이 생각 저 생각에 휩싸여 국립서울현충원 정문을 들어서는 내 발길은 무거웠다. 한걸음 두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멍한 기분이었다. 내가 여길 왜 오는 거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도 모르게 발길을 옮기게 된거뿐이다. 현충원 정문에서 새삼 안쪽을 바라보니 무척 넓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묵직한 분위기가 벌써부터 내 눈을 압도해온다. 조금 멀리 보이는 현충탑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고 군인형상 그리고 곳곳에 있는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심호흡을 여러 번 내뱉고 나도 모르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넓은 길을 따라 좀 더 위로 올라가니 앞이 훤히 트인 묘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맘이 착잡했다. 1, 2, 3, 5, 6, 7, 8, 여러 곳에 숫자가 하얀 팻말에 적혀있다. 나는 눈에 들어오는 숫자 중 3에 꽂고 계속 위쪽을 향해 걸었다. 긴 아스팔트길은 평지인거 같지만 약간 경사진 상태였다. 드디어 나는 3이라는 숫자 앞에 멈춰 섰다. 가슴이 뛰었다. 나는 긴 호흡을 내뿜고 잔디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묘비들을 훑어봤다. 고인의 계급과 이름 그리고 '묘'라는 글자가 맨 밑에 검은 글씨로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고운 색 조화가 꽂혀있는 가장자리를 돌아 뒤편을 보니 '1972년 7월 24일 월남에서 전사'라고 새겨져있고 윗부분에 298이라는 묘비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번호를 확인한 후 다시 앞쪽으로 몸을 돌렸다. 묘비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뜻 모를 아픔이 나를 휘감아왔다. 나는 문득 왼쪽 손을 들어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를 유심히 바라봤다. 월남으로 떠나기 전 결혼을 약속하며 그가 준 육군3사관학교 임관반지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참동안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있었다. 맘속이 아릿하고 아파왔다. 그것은 현재 내가 서있는 주변의 쓸쓸함 안타까움 등등이 믹서 돼 나를 더욱 감정에 치우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참 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떴다. 여전히 외롭고 허전해 보이는 묘비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듯 보였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묘비 앞에 나는 조용히 서있었다. 하늘이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산새울음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전히 뛴다.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이지만 아마도 생이 다할 때까지 나는 뛰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리움도 보고픔도 그리고 약속도 소중한 내 전부이니까. 나는 그의 묘비를 한없이 쓸어안고 그리움을 전했다. 알든 모르든 개의치 않고 나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를 그리워할 작정이다. 푸른빛 하늘이 유독 청명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묘비와 하나 돼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현충원을 다녀온 며칠 후 나는 또다시 강가에 앉았다. 강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그리움의 강이다. 영원히 마르지 않을. 오늘도 두견이 운다. 그리움의 새다. 애달파하는 두견새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온통 허물어뜨리고 만다. 나는 절규하며 애통함을 눈물로 대신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기에 더욱 애절하고 간절할 뿐이다. 누가 내 사랑을 갈라놓을 수 있을까. 없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오로지 내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러움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키며 오늘도 강가에 앉아 그를 그리워한다. 정녕 만남의 시간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죽음은 끝이다. 그리워하는 건 살아있는 자의 몫일뿐이다. 하지만 강은 마르지 않는다. 영원히 흐르며 그리움을 흘려보낼 테니까. 강물이 흐른다. 조용히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간다. 끝은 어딜까. 죽음일까? 나는 강가에 앉아 한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에 젖어있었다. 알고 싶다. 죽은 자도 그리움을 갖는지에 대해. 그도 나를 그리워할까? 하늘 저 먼 곳에서 애통한 심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것인가. 나는 자못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죽어보지 않고는 모를 저승의 세계, 그곳이 도대체 어딜까. 나도 가고 싶다. 그 곁으로. 하지만 그의 말대로 억지로 갈 수는 없다. 하늘에서 정해준 운명에 순응하며 괴로움 속에서나마 살다 어느 날 부르면 달려가는 수밖에. 그땐 정녕 그를 만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믿고 싶다. 분명 만난다는 걸.

만나는 순간 목청 높여 실컷 울어보리라. 너무도 그리웠노라고. 그리움에 지쳐 죽음만 못한 삶을 살았노라고 얘기하며. 하늘이 높다. 푸르고 맑아 보인다. 하얀 구름사이로 얼핏얼핏 그의 얼굴이 스쳐 지난다. 아아, 내 그리움은 바로 저곳에 있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갈 수 없는 안타까움에 계속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는다. 닿을 듯 말 듯 그와 나 사이는 좁혀졌다 멀어지며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나는 절규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오래도록 일어날 수가 없다. 허전함이 온 가슴을 채우고 슬픔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내 뇌리를 조여 온다. 아프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거처럼. 그 순간에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나는 휘청거리는 발길을 옮겨 숲이 우거진 산을 향해 걸어간다. 그를 만나기 위해 끝도 없는 그리움을 붙잡으려고.

숲은 푸르고 울창했다. 가파른 산길이 오르기 버겁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더욱 깊숙한 곳으로 몸을 감췄다. 이젠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세계다. 오직 그가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나는 보다 평화롭고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꽝! 꽈다 당!"

총소리가 들린다. 시뻘건 화염이 불을 토하며 공중으로 치솟는다. 군인들의 몸이 허공에 붕 떠 어디론가 날아간다. 온몸은 피로 범벅이 돼있고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생을 마감하고 만다. 널브러진 시체들이 여기저기 처참하게 나뒹군다. 머리 팔 다리 어디 한곳 성한 곳이 없는 시신들 바로 끔찍한 전쟁의 희생자들이다. 누구를 위해 그들은 목숨을 버렸을까. 나라를 위함이라면 뒤에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평생 그리움에 몸부림칠 살아있는 자는 또 어쩌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그들의 영혼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아무리 고개를 흔들고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나는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편지를 쓴다. 천국으로 보낼 편지를.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보낼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주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쓰고 또 씁니다. 비록 보낼 수는 없지만 저는 쓰지 않고는 견딜 길이 없는 까닭입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가슴에 쌓여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은 오늘도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았으니 가야한다고 매정하게 뒤돌아섰던 당신, 현충원 묘비 앞에서 저는 넋을 잃었습니다. 무거운 발길이 차마 돌아설 수 없던 그 시간을 어찌 잊으리오. 산새 서글피 울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저는 지금도 가슴한구석이 문드러질 만큼 아파옵니다. 묘비 곳곳에 놓여있는 색색의 꽃들이 당신에게 어떤 위안을 안겨줄까요. 제가 흘리는 눈물과 통곡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이젠 노년으로 접어 그때를 회상해봅니다. 고귀한 생명 현충원에 안장된 묘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대들이 있기에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는 충성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당신을 잃고 50여 년을 눈물로 지냈지만 국가는 당신으로 하여금 안정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가슴에 맺혀있는 그리움의 강은 끝을 모르고 흘러만 갑니다. 언제쯤 지워질 런지요. 당신의 유품에 들어있는 저를 향해 쓰다만 편지, 저는 경황이 없어 읽지 못했지만 지금껏 내용이 궁금합니다. 꼭 살아 돌아갈 테니 기다리라고 썼나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옳습니다. 하긴 살아만 빼고 돌아오긴 했으니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현충원의 쓸쓸한 밤 저는 한 마리 새가되어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당신이 만들어준 평화로움 속에서 영원히 노래하며 위로하고 싶을 따름이니까요. 유독 군인정신이 투철했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비가 내리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엄청 쏟아져 내리는 빗속을 뚫고 주야를 가리지 않은 채 뛰쳐나가던 당신모습이 또다시 제 뇌리 속을 아프게 스쳐갑니다. 대한민국 육군대위 곽용우, 맘이 뿌듯할 만큼 자랑스러운 당신의 계급과 이름입니다. 아직도 27세 젊은 당신모습만이 남아있는 제 머릿속 기억은 언제쯤 지워질까요. 영원히 지워질 거 같지 않은 환영입니다.

제 나이 이제 만 72세가 되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당신을 향해 오늘도 여전히 저는 편지를 씁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쓸 수가 없기에 저는 잠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아련히 떠오르는 그 옛날을 떠올려 봅니다. 당신이 한없는 꿈을 안고 조국을 위해 한 몸 바치겠노라고 맹세하며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경북 영천군 고경면 창하리의 육군3사관학교, 그 뒤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후 연무대, 수원, 수색 제9사단 30연대 그리고 월남의 전쟁터로 떠나기 전 강원도 오음리의 마지막 밤, 어찌 잊으리오.

날짜로 따진다면 18.250일 달로 본다면 600달, 저는 이토록 많은 시간과 세월동안 당신을 제 가슴한편에 묻어두고 살았습니다. 슬프고 고단했지만 그래도 당신이 제 기억 속에 머물렀기에 저는 행복했던 거 같습니다. 당신도 이젠 외로워하지 말고 살아생전 늘 말했던 의연한 군인정신으로 잘 참고 견뎌주세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향해 편지를 쓸 테니까요. 언제나 함께한다는 생각 가슴 속에 꼭 간직하고요.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강직하고 투철한 당신은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점을. 비가 개인 다음은 하늘이 유독 청명합니다. 당신과 제 가슴에도 보다 푸른빛이 감돌기를 소원해 봅니다. 그럼 오늘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시길 바라며 이만 끝을 맺습니다. 당신의 아내 올림'

편지를 쓴 다음 나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마구 내달렸다.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5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바람의 골짜기, 많은 군인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았던 곳 바로 바람버뎅이. 나는 거침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숨이 막혔다. 5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산골짜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온통 변화된 모습이지만 내 눈엔 그 옛날 그대로인 오음리, 산기슭에 웅크리고 있던 바람은 나를 보자 반가운 듯 불어 날렸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때를 기억하느냐고. 나는 대답대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마음한구석이 아릿하고 아파왔다.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으로 들어서는 내 눈빛이 사뭇 흔들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눌 수 없어 나는 이내 벽을 쓸어 만지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내 감정이 드디어 폭발한 곳은 전사자명단 앞에서였다. 이름을 확인한 후 나는 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오래도록 나는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가슴속 슬픔의 강둑이 터져버린 거처럼.

아쉬움 그리움 안타까움 등등이 한데 어우러져 끝없는 강을 이룬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음이 아릿했다. 다시는 온 지구상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일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자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남겨주면 어쩌란 말인가. 잔인한 건 총칼만이 아니다. 인간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그 과정이 더욱 고통스런 일일 런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한참동안 이런 생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가슴속이 콱 막혀왔다. 나는 어지럼증을 견딜 수 없어 벽에 손을 짚고 간신히 일어선 후 그대로 기댔다.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와 나를 스치고 지났다. 과거는 지워버리고 내일을 꿈꾸며 현재를 살아가라고 바람은 말하는 거 같았다. 붉은 동백꽃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나는 이 생각과 함께 입술을 야무지게 깨물고 쓸쓸한 바람버뎅이를 뒤로 했다. 하늘가득 하얀 뭉게구름이 어디론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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