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월에 생각하는 스승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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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13. 오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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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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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 손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손인호 손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을 '선생의 날'이라 하지 않고 왜 스승의 날이라고 부를까? 물론 '스승'은 토박이말이고 '선생'은 한자 말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현대 말에서는 그 뜻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문헌에서는 '사(師)' 또는 '선생'이 '스승'을 대신했다. 《논어》 「위정」 편에서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이로써 새것을 알면 스승으로 섬길 만하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고 했고, 「술이」 편에서는 "세 사람이 같이 갈 때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焉]"고 했는데, 이러한 한자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회 제도적으로 수많은 '선생 또는 사(師)'가 등장하게 됐다.

엄밀히 따지면 훈민정음(한글) 창제 이전에는 '사(師)'를 '선생'으로 풀이하거나 앞가지 또는 뒷가지로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제 이후 바로 언해본에 '스승'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자주 쓰던 말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뜻은 사뭇 다르다. 요즘은 주로 '선생'이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며, 모르는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선생(盜先生)'처럼 비아냥거릴 때 쓰기도 해 선생의 의미가 매우 낮아진 것을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세기 말 개화기에 근대 학교가 나타나면서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반적으로 교사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특정적으로 지칭한 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윗사람을 부르는 말과 혼용되기도 했다.

5월만 되면 '진정한 스승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도 따르고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이 있는가'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필자는 경북 의성군 단북면 성암리의 평범한 가정에서 5남 1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32세에 건축사 면허를 따 전문 건축사로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으나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3일 만에 깨어나 보니 세상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특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삶이 뒤바뀐 순간이었다.

그 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재활전문병원에서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으며 몇 날 며칠을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를 반복하다가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김한식 대구한의대 교수님의 '장군 스피치'를 만나게 됐다. 교수님은 사랑과 헌신으로 제자들이 자신의 어려움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마침내 필자도 장군 스피치 교육을 통해 삶에 걸림돌이었던 언어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고 이제는 더 큰 자신감과 용기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장군 스피치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16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대학으로 이직한 이유는 오직 월급 몇 푼 받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제자의 꿈을 이뤄 주는 진정한 스승이 되기 위해서다"고 말씀하셨다.

스승이란 모름지기 가르침과 삶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면, 그만큼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서 그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하겠지만, 누구에게 스승이란 말을 듣는 일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가르치고 보살피는 삶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교직에 계시는 모든 선생님은 곧 스승임이 틀림없다.

죽기 전에 단 하루만이라도 누군가가 나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불러주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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