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업 거부 의대생 유급 판단 시기 '학년 말'로 조정…수업일수 감축도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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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후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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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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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예과 1학년 유급 방지책·내년 신입생 학습권 보호 조치 마련
'야간·주말·전면 원격수업'도 허용…출결도 최대한 탄력적으로
의사 국시 추가 실시 검토…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 발표
◇지난 5월 24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가운과 책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속보=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의정(醫政) 갈등이 5개월째 접어든 가운데, 정부가 수업 거부 의대생들의 복귀를 독려하기 위해 유급 판단 시기를 기존 '학기 말'이 아닌 '학년 말'로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수업일수 확보를 위해 3학기제를 허용하고, 이를 통해서도 수업일수를 채울 수 없을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매 학년도 30주 이상'으로 정해진 수업일수를 2주 이내 범위에서 감축하는 방안도 가능하게 할 방침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휴학이 불가능한 의예과 1학년에 대한 유급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하고, 내년 교육 여건이 악화하지 않도록 2025학년도 신입생의 학습권을 우선 보호하는 학사 운영계획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교육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우선 교육부는 올해 1학기 대다수 의대생이 교과목을 정상적으로 이수하지 못한 상황임을 고려해 '학기제' 대신 '학년제'로 전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각 대학의 성적 처리 기한은 1학기 말이 아닌, 올해 학년도 말인 내년 2월 말로 연기된다. 의대생들의 유급 판단 시기 역시 내년 2월 말로 미뤄진다.

교육부는 그사이 의대생들의 학습 결손을 보충할 수 있도록 각 대학이 학년·학기를 다양하게 운영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각 대학은 보통 8월에 끝나는 1학기를 10월까지 연장해 보완 수업 기간을 확보하고, 2학기를 통상적인 일정(9∼12월)보다 축소해 운영할 수 있다. 만약 2024학년도 수업 기간이 부족한 경우, 2025학년도 이후 추가 학기를 개설해 2024학년도 교육과정 일부를 상위 학년에서 이수하도록 조정할 수도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4학년도 하반기를 2개 학기로 나누어 올해 학년도 내에 총 3학기로 운영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이 기간에 각 대학은 그간 학생들이 수강하지 못한 과목을 야간·원격수업, 주말수업까지 활용해 개설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이를 통해 과목을 이수하면 유급을 면할 수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학기를 개설·운영하는 경우, 수업에 복귀하는 학생들에게 추가 등록금 부담이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라고 각 대학에 권고했다.

미이수 과목 이수를 위해 1학기를 연장하거나, 추가로 3학기를 개설하는 경우 등록금이 '공짜'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학교별 여건에 따라 'I학점 제도'도 도입한다.

I학점 제도는 성적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해당 과목 성적을 미완(I)의 학점으로 두고 정해진 기간에 미비한 내용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탄력적인 학사 운영을 위해 필요시 전면 원격수업도 가능하게 하고, 출결 관리도 최대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원격수업 자료만 내려받아도 수업을 인정하는 방안을 계속해서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수업일수를 채우기 빠듯한 경우, 현재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매 학년도 30주 이상'으로 규정된 수업일수를 매 학년도 2주 이내 범위에서 감축 운영을 허용할 방침이다. 28주만 수업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육부는 이와 함께 현재 대부분 대학의 학칙상 휴학이 불가능한 의예과 1학년 학생들의 유급 방지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의예과 1학년의 경우 진급시키는 것이 교육부의 기본 방향이다. 일부 과목에 F 학점을 받더라도 유급되지 않도록 하고, 2학기 또는 상위 학년에서 수강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현행 학칙상으론 대부분 의대에서는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된다.

그런데도 현재 의예과 1학년 학생들의 대량 유급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교육부는 내년도 신입생의 학습권을 우선으로 보호하는 학사 운영 계획도 준비하라고 각 대학에 요청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이와 관련해 "수강 신청 우선권을 내년도 신입생에게 주는 등 여러 가지 학습권 보호 조치가 있을 수 있다"며 "올해와 무관한 내년 신입생들이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본과 4학년을 위해선 올해 2학기에 실습수업을 최대한 보충·운영하도록 하고, 2학기 보완이 어려운 일부 실습 과정은 계절학기에 수강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교육부와 각 대학 집계에 따르면 의정 갈등이 시작된 올해 2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전국 40개 의대생의 유효 휴학계는 1만600여건으로, 전국 의대 재학생(1만8천793명)의 57% 규모다.

유효 휴학계 이외의 휴학 사례까지 포함하면 대부분의 의대생이 휴학계를 제출한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 차원에서 2025년 의사 국가시험의 추가 실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학사 일정 변경 등을 고려해 수업에 복귀하는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국가장학금 신청 기간 추가 연장 등 조치도 준비한다.

각 대학은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의대 학사 운영 변경 사항을 학생들에게 개별 안내해야 한다.

대학 내 '의대생복귀상담센터'(가칭)를 통해 학생들의 수업 복귀를 독려하는 한편, 학생들이 복귀 과정에서 겪는 학업 부담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점검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대학 내 집단행동 강요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강제·의무 사항이 아니라 권고 사항이다. 각 대학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선택하면 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집단행동을 멈추고 학업에 복귀하는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의대생들에게 호소했다.

한편, 정부가 전공의에 이어 휴학한 의대생들의 유급을 방지하는 '유화책'을 내놨지만, 의대생들이 대거 복귀할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의대생들이 정부에 요구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백지화' 등 기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유급 방지 대책만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반발해 휴학 중인 의대생들은 이날 발표된 대책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이틀 전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전공의들이 보인 심드렁한 모습과 비슷하다.

휴학한 의대생 A씨는 "결국 전공의들과 상황이 똑같다. 돌아왔을 때를 전제 조건으로 유급을 안 시켜준다는 거니까 정부가 그동안 요구해왔던 입장과 같아 보인다"고 밝혔다.

A씨는 주변 의대 친구들의 의견을 종합하더라도 이런 입장이 다수라며 "우리 입장은 의대 증원 백지화 등 조건을 내걸었던 이전과 상황이 같다"며 "오늘 발표된 유화책은 복귀 여부를 결정하는 데 별 상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큰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교수들은 학생 복귀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전망을 보이면서도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정부로서 학생 유급 방지를 할 수 있는 최선책을 내놨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고, '제대로 된 처방'이 아니라며 이미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어 대체제는 불가능하다는 평도 나온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교육의 질 담보만 된다면 학사 운영에 유연성을 주는 건 나쁘지 않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기간을 늘리든 학기제를 변동하든 방법은 다양하다며 "학칙 개정을 통해서 일정 부분 교육의 질을 담보할 방안이 같이 있으면 현장에서 수용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이렇게 해도 안 돌아오고 저렇게 해도 안 돌아올 것 같다"며 "대학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학생이 돌아오지 않음에 대해서는 일부 감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미 의대 커리큘럼이 정교하게 짜여있는 상황에서 1학기 수업을 놓쳤고, 하반기에 이를 모두 듣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지방 국립대 의대 교수는 "의대 교육은 이미 정교하게 짜여있고 이를 임의로 줄였다 늘렸다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학생 유급을 무조건 면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커리큘럼을 조정하라는 것은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정부는 문제를 초래했고, 오늘 대책은 제대로 된 처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은 배워야 할 분량이 있고 이에 도달해야만 진급하는 것인데, 이런 교육의 질과 양을 담보하기 이미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도 "교육을 5개월 동안 못 받은 것을 그냥 사실상 넘어가겠다고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의대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이 임상 실습인데, 실습을 거의 안 가봤는데도 국시를 보고 의사가 되는 경우도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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