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 친견, 고양이 설화…상원사 중창 강력한 이유 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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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21. 오후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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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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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세조의 강원도 순행 ⑥·完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中 ‘명주적삼’. 사진=문화재청




1466년 세조의 강원도 순행 마지막 목적지로 오대산 상원사를 방문했다는 내용은 세조실록에는 비교적 짧게 소개(38권, 세조 12년 윤3월 17일) 돼 있다. 상원사 중창을 기념하는 낙성식을 위한 것이었지만, 수행한 이들의 명단 이외에 이날 방문 목적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담겨져 있지는 않고, 대신 신숙주·한계희·노사신에게 시켜 *별시(別試)를 치르게 했다는 기록들은 남아있다. 다만 상원사중창기와 오대산사적기, 상원사 중창권선문(⑤편 참조) 등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사료들을 통해 이날 세조의 상원사 거둥(擧動·임금의 나들이) 이유를 우회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상원사는 세조가 원찰로 삼을 만큼 각별하게 생각한 곳이었다. 그래서 “왜 상원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실록에는 실리지 않은 비어있는 공간, 행간을 이해하기 위한 별도의 자료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바로 세조, 오대산 그리고 상원사와 관련된 설화가 그것이다. 정사(正史)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세조의 오대산 상원사 방문이라는 역사적인 사실과 신화가 혼재해 구전되면서 오롯이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세조와 문수동자의 만남에 대한 설화다. 오대산사기 등에 따르면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1418~41)의 저주 때문에 얻게 된 피부병(창병)으로 고통받던 세조는 강원도 순행 2년전인 1464년(세조10년) 백일기도를 마치고 상원사 앞 계곡에서 혼자 목욕을 하던 중 동자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등을 밀게 한다. 세조의 등을 밀어준 동자는 다름아닌 문수보살’. 세조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후에 화공에게 문수동자를 그리게 해 상원사에 봉안토록 했다고 한다 .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어의를 걸었다는 ‘관대(冠帶)걸이’가 있고, 보물로 지정된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에 포함된 얼룩진 *명주적삼(사진)이 바로 세조의 피고름이 묻어있는 어의라는 주장이 설화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실재하는 증거들이다. 세조의 목숨을 구한 고양이와 관련된 설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상원사를 찾은 세조가 법당에 들어가려고 하자 고양이가 세조의 옷을 물고 잡아당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법당 안을 수색하게 해 자신을 시해하기 위해 기다리던 자객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실제 상원사 문수전 앞에는 고양이 석상이 자리를 하고 있다. 이들 설화는 오대산 상원사 중창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이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끝)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사진=문화재청


■미니해설

별시(別試)=조선시대 국가와 왕실에 경축할 일이 있을 때 치르는 과거시험을 말하거나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식년시(式年試)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부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과거시험을 일컫기도 한다. 1466년 윤3월17일 세조의 명으로 상원사 중창을 기념하는 별시를 치르는데 그 장소가 행궁이 위치해 있던 평창 성오평 인근의 만과봉(萬科峰)이다. 이튿날 별시 합격자를 발표하게 된다. 세조실록은 문과(文科)에 진지(陳趾) 등 18인을 뽑고, 무과(武科)에 이길선(李吉善) 등 37인을 뽑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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