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강원도] 선림원지 흐드러진 개망초의 꽃말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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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21. 오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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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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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선 ‘귀꽃’(17)


무재, 은오와 ‘선림원지'' 동행

개망초 꽃말 ‘화해'' 우연 일까



지난해 말 태백 출신 소설가 주영선의 새 소설집 ‘세자매’를 저자 사인과 함께 전달받고도 그놈의 ‘깜빡’ 병 때문에 소개를 못 한 게 내내 아쉬웠는데, 늦게나마 이번 기회에 다룰 수 있어 다행이다. 주영선의 소설은 주로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예컨대 첫 장편소설 ‘아웃’의 위현마을이나 이 소설집의 두번째 작품인 ‘내 이웃의 하나뿐인 존재’에 나오는 사해리가 그런 곳이었다. 하기야 사회 부조리와 그로 인한 갈등을 글감으로 하는 주영선표 소설이 갖는 특징을 감안하면 ‘가상’은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한 당연한 안전 조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코너와는 영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드디어(?) 찾아냈다. 단박에 읽어내린 소설집의 네 번째 단편소설 ‘귀꽃’을 통해서다. ‘그곳’이 어디인지 얘기하기 전에 소설의 줄거리를 보자면 이렇다. 화자인 무재는 자신의 일을 정리하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 집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그가 낙향하고 몇 달 후 요양원에 들어간다. 어머니 집에 홀로 살게 된 무재는 산책을 다녀 온 어느 날 같은 연립에 살고 있는 은오의 뜬금없는 커피 초청을 받는다. 은오는 한 달을 기한으로 연립 1층에 이사 온 여자다. 말그대로 힐링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무재는 그런 은오를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은오에게 무재는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2인분 이하는 팔지 않는 음식점에 갈 때나 산책할 때의 동행자 정도의 포지션이다. 무재도 “소풍을 나가듯 가벼운 관계 속에 살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은오의 ‘선림원지’ 동행 제안에 꼼짝없이 운전사가 된 무재가 음악을 듣겠냐고 은오에게 물었을 때 감상적으로 되는 건 싫다며 안 듣겠다고 말하는 단호박 답변에서 둘 사이, 관계의 엇갈림이 읽힌다. 도착한 선림원지는 온통 개망초 꽃밭. 그리고 귀꽃(隅花·우화·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을 보며 원추리를 떠올리는 은오. 시간의 결과물인 꽃이 인간의 추함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은오의 확신에 무재의 설득은 좀처럼 포개지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를 꽃과 같은 존재로 생각해 보라는 무재의 말에 어찌 보면 정답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땅 속에서 겨울을 보내다 계절에 맞게 그 자태를 보이는 꽃처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결국 반성과 노력의 산물, 인고의 결과물임을 넌지시 일러준다. 선림원지에 흐드러진 개망초의 꽃말이 ‘화해’인 것은 우연일까. 설림원지는 양양군 서면 서림리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대의 절터다. 소설 속에서 무재의 내비게이션에서 선림원지까지 거리가 23㎞인 점을 감안하면 무재와 은오의 연립은 현실 세계에서 역산해 보면 양양군 양양읍의 D연립 정도의 위치로 생각된다. 이들의 거주지에 시립도서관이 등장하는 것을 봐서는 소설 속에서 이들은 시에서 살고 있는 듯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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