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동선과 야인(野人) 겹치지 않도록 함길도 관찰사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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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욕을 위한 세조의 온양 순행은 세조 10·11·14년 등 세차례 진행된다. 세조가 온양이 아닌 강원도 등 다른 지역의 순행을 고려한 것은 세조 10년 겨울의 일이다. 이미 그 해 2~3월 온양에 한차례 다녀 온 세조는 다음 해(세조11년·1465년) 봄에 다시 한번 온양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충청도에 든 흉년이 마음에 걸려 강원도 고성이나 황해도 배천, 해주 등의 온천에 가는 것을 두고 어느 곳이 좋겠는지 승정원에 의견을 묻는다(세조실록 34권·세조 10년 12월16일). 그러자 신하들은 세조가 제안한 세 곳에 왕이 마땅히 기거할 곳이 없는 것을 이유로 그대로 온양에 갈 것을 건의한다. 이에 세조는 후일에 갈 것을 기약하며 그 곳의 옥사(屋舍·집)를 수리해 둘 것을 명한다. 세조는 결국 이듬해 8월에 중궁(中宮)과 함께 온양을 찾는다.
이처럼 왕의 순행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수반된다.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할 수 없음을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세조 12년(1466년)에 세조가 행한 또다른 순행, ‘강원도 순행’의 준비과정을 보면 이를 아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 순행이 결정되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개를 고성에 있는 온천에 보내 행궁(行宮)을 수리하게 한다(세조실록 37권·세조 11년 9월 26일). 세조의 두번째 온양 순행이 끝나자 마자 강원도 방문을 위한 사전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강원도 순행이 시작된 것이 세조 12년 3월16일인 점을 감안하면 6개월 전부터 임금 맞이를 위한 분주함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조가 강원도에 오기 한달여 전에는 함길도(함경도) 관찰사에게 서신을 보내 서울로 향하는 야인(野人·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 살던 여진족)들이 임금의 순행 행렬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세조실록 38권·세조 12년 2월 22일). 이미 길을 떠난 자는 서울까지 가는 거리나 시간을 계산해 하연(下輦·임금이 행차를 멈추고 연(輦)에서 내리는 것) 한 뒤 지나가게 하고, 길을 떠나지 않은 자는 아예 올려보내지 말게 하라고 했다.
■미니해설
연(輦)=조선시대에 왕이 탔던 가마. 지붕, 몸체, 가마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가옥의 모양을 따르고 있다. 몸체 네 모서리에 용을 그린 둥근 기둥을 세우고 몸체에 주칠을 한 후 난간 부분에 금색으로 백택(白澤), 기린(麒麟) 등 다양한 상상의 동물들을 그려 넣었다. 네 면에 주렴을 드리우고 다시 휘장을 내려,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