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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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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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소설학교 참관기

8~9일 경남 통영에서 개최
부산소설가협 주최 41회째
소설가·시인·시민 46명 참가
“활자 매체는 거름 같은 역할”
여름소설학교 참가자들이 경남 통영 세병관에서 안영란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있다.


8~9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여름소설학교에 참가하고 돌아온 길이다. 올해로 41회를 맞은 여름소설학교는 코로나 기간 3년을 빼고는 매년 열려, 부산소설가협회(회장 정영선)의 존재 이유가 여름소설학교라고 부를 정도다. 정미형 소설가는 부산대 생물학과를 졸업하던 해인 1985년 4회 여름소설학교에 처음으로 참가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당시에는 소설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참가자도 더 많았다. 이번 여름소설학교에는 소설가를 비롯해 다수의 시인과 일반 시민 등 모두 46명이 참가했다.

통영으로 가는 버스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할 때 소설가들의 특징을 하나 발견했다. 다들 자기를 “소설 쓰는 ○○○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김해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30년 부산일보 독자 서채은 씨가 자차로 참가했는데, 소설가 식 인사를 한다면 “꽃 파는 ○○○입니다”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시인들이 왜 여름소설학교에 참가했는지 의아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자뿐이었다. 박경리 작가도 처음엔 시를 썼는데 김동리가 소설을 권유했단다. 구모룡 평론가는 일찍이 “장르가 아니라 ‘감동’이 중요하다. 장르 구속이 필요 없는 시대다”라는 말을 했다. 참, 이날 구 평론가는 흥에 취해 뒤풀이에서 노래를 몇 곡이나 불렀다.

여름소설학교 참가자들이 부산소설가협회 정영선 회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15년 전 통영 한산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정착한 유익서 소설가의 ‘예술은 소임을 다 한 것인가?’라는 강연으로 행사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팔순의 유 소설가는 지금까지 소설을 비롯해 책을 50권 정도 냈다. 요즘은 양자역학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아날로그의 반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단다. 그래도 문학에 대해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니 문학은 참 어렵다.

드디어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소설의 변화와 글쓰기의 고민’을 주제로 한 토론 시간이 되었다. 사회를 맡은 박향 소설가는 소설가라면 아무나 시켰고, 지목 당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준비 없이 나와 한참을 횡설수설(?)했다. 한 소설가가 “소설이 너무 안 팔려 글 써서 밥 먹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열심히 해서 꿈을 이뤄 만족하지만, 주변에 부끄럽기도 하다”라고 다소 푸념을 했다. 조갑상 소설가는 “책을 쉽게 내는 세상이 되면서 작가에게는 그만큼 안 좋은 작용도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없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생각을 달리하고, 소설 쓰는 방법을 달리하고, 출판을 달리하라”고 충고했다.

여름소설학교 참가자들이 윤이상 기념관 앞에서 ‘이 멋진 통영을 어떻게 만날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쳤다.


유익서 소설가는 뒤풀이 자리에서 “소설이 안 팔리는 이유는 못 써서 사람들이 공감을 안 하는 거다. 또 문학은 안 팔린다고 작업을 안 하는, 그런 게 아니다. 땅을 거름지게 만드는 거름이 활자 매체다”라고 말했다. 원로 소설가의 죽비 같은 말이 기자에게도 가차 없이 내리쳐졌다. 어느 해인가 여름소설학교에 모 문학 담당 기자가 고향집에서 생닭 두 마리를 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닭들이 탈출하자, 고 옥태권 소설가가 녀석들을 잡기 위해 쫓아다녔다니…. 인생은 짧고 에술은 길다.

조선 시대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인 세병관을 찾았을 때였다. 안영란 문화해설사가 “박경리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 늘 아쉬웠다. 기운이 좋은 이곳을 찾은 소설가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책 한 권 부탁한다”라고 덕담을 세게 날렸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 배경의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일박이일이었다. 통영 글·사진=박종호 기자

여름소설학교 참가자들이 박경리 소설가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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