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보다 더 검은 색’은 어떤 색일까

입력
기사원문
김종열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색의 지도 / 톰마소 마이오렐리·카를라 마네아

<…지도> 시리즈의 두 번째 그림책
색 관련 과학·문화·역사 포괄적 해설
색에 대한 고정관념 깨뜨리는 내용
<색의 지도> 표지.


빨간색은 강렬하고, 금방이라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힘 있는 색이다. 19세기 초까지 유럽에선 웨딩드레스의 색(흰색이 아니다)으로 애용되며 아름다움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회색은 한때 ‘더러운 흰색’으로 불리며 우유부단함을 상징했지만, 지금은 안정감과 균형감을 주는 인기 있는 색이 됐다. 검은색은 대체로 어둠과 우울, 애도를 뜻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과 마사이족에게는 풍요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다.

<색의 지도>는 색의 과학적 원리에서부터 시대와 문화권별 색의 의미, 원하는 색을 만들기 위한 발견과 발명, 첨단 과학과 미래의 색 등 색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아름답고 유쾌한 그림과 함께 들려준다. 지구의 역사를 시대·주제별 연표와 생생한 그림으로 그려 호평 받은 <시간의 지도>의 톰마소 마이오렐리와 카를라 마네아가 다시 뭉쳤다. 화가인 마네아는 이 두 권의 책으로 9월에 선정 예정인 올해 ‘세계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WIA) 과학과 기술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색을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빨간색이 뭐야?”라고 묻는 꼬마에게 “응, 세상에서 강렬하고 선동적인 색이야”라고 설명해봐야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라는 반응일 게 분명하다. “얼마전 네가 흘린 코피 색깔이야”처럼 머리 속에서 이미 고정돼 있는 이미지로 비유하거나, 스마트폰 화면에서 인터넷으로 ‘빨간색’을 검색해 그 색깔을 보여주는 방법이 최선이다. 여기에서 코피 색깔이 과연 순수한 ‘빨간색’일까, 하는 문제는 잠시 접어둔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색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 중 하나가 다양한 색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그림책’의 형태일 테다. 그리고 이 책은 그림책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방금 전 잠시 접어두었던 ‘코피 색깔이 과연 순수한 빨간색인지’의 문제로 돌아가자. 책은 대표색의 휘하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사 색을 함께 소개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레드)의 휘하에는 진홍색(스칼렛 레드), 주홍색(버밀리언 레드), 암적색(카민 레드) 등이 따른다. 여기에서 잠시 번역의 어려움을 통감한다. 네이버사전에 따르면, 선홍색이야말로 ‘스칼렛’으로, 진홍색은 오히려 ‘다크 레드’로 번역된다. 여하튼 갓 뿜어져 나온 피의 색은 빨간색이라기보다 스칼렛 레드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피의 색깔을 ‘완전한’ 스칼렛 레드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애매하지만 ‘가깝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색과 인간이 임의로 정해 부르는 색이 100%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어떤 색은,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수히 많은 색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코발트 블루빛 가을 하늘’이라고 하지만, 정작 코발트 블루는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이 색채 상인 에두아르 아담의 도움을 받아 새로 만든 색이다. 과학의 발달은 더 많은 색의 ‘발명’(‘발견’이 아니다)을 불렀다. 메사추세츠 공대(MIT)의 엔지니어들은 빛이 갇혀 있는 미세한 튜브(탄소 나노튜브) ‘묶음’으로 구성된 물질을 만듦으로써 ‘검정보다 더 검은 색’을 발명했다. 미래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색도 나올 거라 한다.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책 제목 그대로 ‘색의 지도’를 만든다. 인류가 만든 다채로운 색들이 어디서 탄생했는지 그 지역을 찾아 세계 지도에 표시한다. 한반도에는 ‘셀르던’이라는 색이 칠해져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청자색’으로, 책에선 ‘보석 아쿠아마린의 색소이지만 색이 흐리다’라고 설명한다. 맛집 여행이 아니라 색깔 여행을 다녀도 좋을 것 같다.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책이다. 톰마소 마이오렐리 글·카를라 마네아 그림/주효숙 옮김/너머학교/80쪽/2만 3500원.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