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야생에서 멸종되어 가는 직업에 대한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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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20. 오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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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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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동사의 멸종 / 한승태

AI·로봇 등으로 대체확률 높은
네 가지 직업 관한 생생 체험기
'출판 저널리즘' 장르 지평 넓혀
<어떤 동사의 멸종> 표지.


명색이 언론인이라고, 한때 ‘출판 저널리즘’이라는 장르에 호기심이 컸다. ‘르포문학’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계기는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휴머니스트, 2012).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77일간의 기록이다. 이 책을 읽고 속보성(速報性, 미디어가 어떤 기사 따위를 일반에게 빨리 알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질)에 갇힌 기존 저널리즘 특성의 한계를 출판 저널리즘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오랜만에 출판 저널리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을 경험했다. <어떤 동사의 멸종>이다. 저자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한 르포를 쓴다. 이번이 세 번째 책이다. 그간 꽃게잡이 배, 양돈장 등 극한직업의 현장을 체험했다. 이번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직업 네 가지를 골랐다. 그리고 각 직업을 각각의 동사(動詞)로 소개한다.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그래서 책 제목 역시 ‘어떤 동사의 멸종’이다. 저자 스스로는 이번 책을 ‘장례식 풍경을 기록한 글’이라고 소개했다.

솔직히 ‘요리하다’(요리사)를 비롯해 일부 직업은 왜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 따르면 레스토랑 요리사의 대체확률은 0.96에 이른다. 주방 보조의 대체확률은 1이다. 대체확률은 로봇이나 AI(인공지능)에 의해 해당 직업이 대체될 확률로, 1에 가까울수록 그 가능성이 커진다. 저자는 네 가지 일터를 고를 때 주로 2010년대 중반에 발표된, 각종 직업의 자동화 가능성을 예측한 연구를 그 기준으로 했다. 다소 오래된 기준이지만, 글의 완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르포라는 장르의 특성상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미래엔 즉석식품이 너무 잘 나와서 요리사를 대체할 것이라 예측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저자의 글은 ‘생생’하다. 기자라는 직업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런 게 르포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표적 감정노동자인 콜센터 직원들의 업무 현장은 나로서도 평소 궁금한 터였다. 근무 환경의 비존엄성, 상담 고객의 몰염치성이 상상 이상이어서 놀랍다. 그러나 무겁지는 않다. 저자 역시 서문에 “장례식 풍경이지만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오열하고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위트 있는 문장으로 무거운 상황을 가볍게 전달하는 능력이 가히 일품이다. ‘품절 불만 다음으로 많이 걸려오는 전화가 배송 문의다. 아마도 이런 게 할리우드 영화의 해로운 영향력이 아닐까 싶은데, 고객들은 우리가 첩보 영화 수준으로 배송 차량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p51)’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는 글 도중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다양한 직종 관련 단어들에 주석을 달아 그 직업의 대체확률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양돈장을 그만둔 이후로 이렇게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러 나선 게 얼마 만인가(p42)’라는 문장이 적힌 페이지 아래에는 ‘지하철·전차 운전원 : 대체확률 0.86 <고용의 미래>’라는 주석이 달린다.

아무리 저자가 위트 넘친다고 해서 장례식이 마냥 즐거울 리는 없다. 저자는 힘든 콜센터 노동 현장을 보면서 ‘이런 일자리는 그냥 사라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정작 AI로 인한 대량해고가 현실이 됐을 때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닫는다.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 무언가때문에 사람들은 영하의 길거리에서 그것을 돌려달라고 소리친다. 노동이 곧 생존인 이들에게 없어져도 괜찮은 일따위는 없다. 한승태 지음/시대의창/404쪽/1만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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