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옷이 왜 이렇게 많지? 이제 여름이라 반팔들을 꺼냈는데, 작년에 별로 안 입은 옷들이 꽤 많네. 나만 이런 거 아니지?
분명히 옷을 살 때는 나름 심사숙고했는데, 막상 입고 다녀보면 나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손이 안 가는 옷이 있어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데, 나는 똑똑하니까 같은 실수는 이제 안 해야겠어. 그래서 결심했지. 예능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퍼스널컬러’ 진단을 한 번 받아보기로.
퍼스널컬러…모르는 사람도 있겠지? 퍼스널컬러는 타고난 개인의 신체 컬러를 뜻해. 피부 톤이나 눈동자, 눈썹, 머리카락의 색에 따라서 사람마다 어울리는 색조가 있다는 색체 이론이야.
국내에서는 한국표준색체계(KS)보다는 일본의 PCCS 색체계를 통해 진단하는 곳이 많은데, 깊이 들어가면 헷갈리니까 기본적인 것만 알자고. 퍼스널컬러는 크게는 따뜻한 색조인 웜톤, 시원한 색조인 쿨톤으로 분류돼. 여기서 조금 자세히 들어가면 △따뜻하고 밝은 ‘봄 웜톤’ △맑고 청량한 ‘여름 쿨톤’ △깊이 있고 진중한 ‘가을 웜톤’ △차갑고 도시적인 ‘겨울 웜톤’으로 구분되고, 더 구체적으로는 비비드, 스트롱, 딥, 다크 등등 다양한 체계로 분류할 수 있어.
퍼스널컬러 진단하는 곳은 부산 곳곳에 많이 있더라고. 고민하다가 포털사이트에서 리뷰가 300개 넘게 달린 서면의 한 업체로 골랐어.
원하는 시간대로 예약하고 찾아갔더니 웬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나오더라고. 직원인 줄 알았는데, 먼저 진단을 받고 나가는 손님이었어. 그래서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퍼스널컬러를 진단해줄 컨설턴트 선생님한테 물어봤지. “남자 혼자 오는 경우도 많나요~?”하고. 그랬더니 “그런 경우가 꽤 많고, 사실 남자든 여자든 혼자서 오는 비율이 70% 정도는 된다”고 하네.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으려면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상태로 와야 하는데, ‘쌩얼’ 보여주기가 민망해서 혼자들 많이 오는게 아닐까 싶어.
일단 본격적으로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아보기 전에 간단한 이론 설명과 설문조사가 진행돼. 평소 옷을 입을 때 선호하는 색이나 피부 타입 등을 물어봐. 나는 평소 네이비나 블랙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남자들은 거의 다 똑같은 응답을 한다고 하네. 불호하는 컬러로 빨강이나 노랑 같은 원색을 꼽는 것도 마찬가지래.
스스로 진단하는 퍼스널컬러에도 특징이 있었어. 나는 인터넷에서 진단법을 대강 보고 ‘겨울 쿨톤’일 것으로 예상을 했단 말이지. 그런데 선생님 말로는 남성 고객의 90% 정도가 자신이 겨울 쿨톤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해. 나머지 10%는? 아예 자가 진단도 하지 않고 백지 상태로 오는 사람이라고 하네. 아마도 남자들은 겨울 쿨톤에 어울리는 검정이나 네이비를 즐겨 입다 보니 이런 색상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여성 손님들도 과반은 애초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대. 역시 인터넷에 도는 자가진단법으로 자신이 봄 웜톤일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 선생님이 미리 예상해본 내 퍼스널컬러는 가을 웜톤 혹은 겨울 쿨톤인데, 자세한 건 직접 여러 색의 천을 얼굴에 대보는 ‘드레이핑’을 해봐야만 알 수 있대.
드레이핑을 할 때 주의해서 봐야 할 건 내 얼굴의 약점과 강점 중 어느 것이 부각되느냐 하는 거야. 나는 얼굴에 노란기가 많은 편인데, 일단 쿨톤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더라. 여름 쿨톤에 어울리는 파스텔 톤의 천들을 갖다 대니까 얼굴의 노란기가 더 진해졌어. 또 겨울 쿨톤에 맞는 진한 네이비 계통은 안 맞더라고. 볼이나 이마에 파란기가 돌면서 혈색이 죽어 보였어. 회색이 섞인 탁한 색도 마찬가지였어. 그러니까 내가 이날 평소 선호하는 스타일대로 입고 간 네이비 상·하의는 색조만 놓고 보면 나랑 정말 안 맞는 옷이었던거야.
그러면 이제 봄 웜톤이냐 가을 웜톤이냐인데, 비교적 화사하고 연한 봄 웜톤 색조는 여전히 얼굴에 노란빛이 도는 느낌이었어.
몇 차례 더 천을 갖다 대고 진단 받은 내 퍼스널컬러는 ‘가을 웜톤’! 더 정확하게는 ‘가을 웜 스트롱’으로 나왔어. 이 타입은 색의 밝고 어두움을 나타내는 ‘명도’는 중간 단계, 색의 선명함을 뜻하는 ‘채도’는 강한 쪽이 어울려.
그리고 가을 스트롱에게 명도와 채도보다도 중요한 건 색의 맑기인 ‘청탁’이야. 청탁은 쉽게 말하면 색상에 회색기가 얼마나 도느냐 하는 건데, 회색이 많을수록 탁하고 적을수록 맑은거지. 나는 회색이 들어가면 혈색이 없어 보여서 맑은 색 옷을 입는 게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연신 강조하셨어.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색은 화려하면서도, 마냥 밝지는 않고, 검은색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빨강(토마토 레드, 브릭 레드)이나 오렌지, 초록(카키) 혹은 고동색 등인데 대부분 가을이 연상되는 컬러더라고. “이런 색은 옷장에 별로 없는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손님들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면서 웃었어.
이렇게 컬러 진단이 끝나면 내게 맞는 머리 색이나 액세서리를 알려주고, 사용하고 있는 색조 화장품도 점검해줘.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머리카락은 초코 브라운이 어울리고, 액세서리는 볼륨감이 있는 골드 계통이 어울린다는 식이야. 은색 메탈 시계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네…. 쓰고 있는 비비 크림도 가져 갔는데, 피부 톤에 비해 어두운 색상이라 한층 밝은 걸 써야 맞다는 진단을 해줬어.
이게 가장 기본적인 코스였고, 비용은 7만 원 정도였어. 가격만 놓고 보면 마냥 저렴하진 않지만, 거의 1시간 동안 받는 1대1 컨설턴트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비용이야.
업계 경력 5년인 시은 컨설턴트에 따르면 남성은 봄, 여름 계통보다는 가을, 겨울 계통의 톤이 많은 편이래. 여성에 비해 피부톤이 어두운 경우가 많고 머리카락과 눈썹의 색이 짙어서 그렇다고 하네. 남자가 봐도 피부가 새하얀, 예를 들어 차은우 같은 피부가 여름 쿨 라이트라고 하면 좀 이해가 빠르게 되지?
또 남성들이 색조 화장을 그리 많이 하지 않으니, 오히려 퍼스널컬러에 맞게 스타일링을 하면 여성들보다 더 극적인 변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어.
퍼스널컬러 자가 진단법에 대해선 “황인종은 노란기가 많은 편인데, 웜톤인지 쿨톤인지는 전문가도 직접 드레이핑을 해봐야 알 수 있어요. 핏줄 색을 본다든지 하는 인터넷 자가진단법은 정확하지 않아요”라고 설명했어.
그래도 인공지능(AI)이 발전했는데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스마트폰 앱을 찾아봤어. 카메라로 촬영하면 퍼스널컬러 진단을 해주는 뷰티 앱을 이용해봤는데, ‘가을 웜톤’까지는 맞혔지만 상세한 톤은 ‘가을 다크’로 나왔어. 오프라인으로 진단 받은 가을 스트롱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거지.
그래서 나는 퍼스널컬러 진단은 직접 받아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앱을 사용해보는 걸 추천해. 퍼스널컬러에 맞는 메이크업 제품을 모아서 추천하거나, 특정한 색이 내 퍼스널컬러에 맞는지 분석해주는 ‘컬러 파인더’ 기능이 있는 뷰티 앱들이 있거든.
퍼스널컬러를 알고 나면 옷을 고르기 쉬워질 줄 알았는데, 마냥 그렇진 않았어. 일단 내 퍼스널컬러와 어울리지 않는 색상의 옷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으니 고민을 줄여준다는 이점은 있어. 하지만 반대로, 내 퍼스널컬러에 맞으면서도 디자인까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려 하니 쇼핑할 때 더 신중해지고, 시간이 더 오래 걸렸어.
시은 컨설턴트는 퍼스널컬러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어. “퍼스널컬러에 거부 반응이 큰 사람도 있어요. ‘제가 이 톤이라고요?’라며 기분 나빠하는 고객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퍼스널컬러에 꼭 맞는 스타일링만 해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에요. 평소엔 본인이 선호하는 옷을 입고, 퍼스널컬러는 면접, 결혼식 같은 중요한 날에 최적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위한 참고용으로 알아두면 나쁠 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