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술맛 나는 책, 책맛에 취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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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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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연대기 / 마크 포사이스
<주정뱅이 연대기> 표지.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은 “좋은 술이 없는 곳에 좋은 삶이란 없다”고 했다. 중국의 장자는 “술 마시는 꿈을 꾸는 사람은 아침이 밝으면 슬프다”라며 한탄했다. ‘웬 술타령?’이라는 생각보다 술 생각부터 먼저 나신다면, 이 책을 슬쩍 권해본다. <주정뱅이 연대기>. 작가이자 언론인, 편집인, 그리고 술꾼인 저자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주정뱅이, 일부 '사람'이 아닌 놈들도 있다)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선사시대 술 취한 원숭이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의 만취 축제, 중세시대 선술집과 서부시대 살룬의 풍경이 연대기처럼 펼쳐진다. 어느 시대에도 어떤 대륙에도 주정뱅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명이 생긴 이래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 모여 술을 마셨다. 때로는 지배의 도구로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명의 시작이라는 것이 지배와 피지배의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러시아를 그 대표적 사례로 든다. 독재자 스탈린은 공포와 더불어 과음으로 소비에트 공화국을 통치했다. 고위 간부들은 매일 밤 스탈린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인사불성으로 술을 마셔야 했다. 술은 그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서로 반목하게 했으며, 실수로 본심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스탈린이 축출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술을 거부한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잃었다. 니콜라이 로마노프가 그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랬다.

음주가 주는 여러 해악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사(史)가 계속되는 한 술 또한 사라지지 않을 테다. 미래에 어떤 ‘멋진 신세계’가 도래하더라도,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면세 쇼핑을 떠나는 날이 온다 해도, 인간은 여전히 모순되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술맛 나게 만드는 책, 술맛만큼이나 책맛에 취하게 만드는 책이다. 마크 포사이스 지음/임상훈 옮김/비아북/312쪽/1만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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