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플스토리] 2000마리 유기견에게 새 가족을 선물하다 [반려동물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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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27. 오후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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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생명윤리협회 이정화대표

16년간 사비로 유기견 치료, 입양 연결
열악한 보호소 충격 직접 데려오기 시작
생활비 아껴서 유기견 관리 비용 충당
개인활동 한계 느껴 2017년 단체 설립
‘이데아의 유기견이야기’ 블로그 운영
“반려동물은 사지 말고 입양해 키워야”
유기견 위탁보호소 ‘강돌랜드’가 있는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뛰놀고 있는 유기견들. 이정화 대표 제공


‘반려동물생명윤리협회’ 이정화(60) 대표는 ‘이데아의 유기견이야기’ 블로그 운영자로 유명하다. 블로그는 입양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을 소개하는 글로 빼곡하다. 입양이 완료돼 새로운 가족을 찾은 유기견은 더 많다.

이 대표는 유기견을 입양해 사비로 치료한 뒤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주인에게 입양을 보내는 일을 16년 넘게 해왔다. 지금까지 이 대표 손을 거쳐 새 가족을 찾은 유기견이 2000마리에 달한다. ‘유기견 대모’라 불릴 만하다.

■인생을 바꾼 ‘누더기 개’와의 만남

원래 이 대표는 견종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개에 무관심했다. 20여 년 전 우연히 도로에서 ‘누더기 개’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홀린 듯 차를 세워 지저분한 개를 집에 데려간 뒤 주인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부산에 딱 1곳 있던 유기견 보호소를 들렀다가 충격에 빠졌다. 안락사도 없던 시절, 케이지 하나에 개가 5~6마리씩 방치돼 있었다. “보호소가 지옥 같았다”는 이 대표는 “너무 끔찍했는데 외면을 못 해 계속 찾아가 봉사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이 대표는 눈에 밟히는 불쌍한 유기견을 하나 둘씩 집에 데려왔다. 다른 곳에 입양을 못 보내면 자신이 돌봤다. 반대하던 남편은 가출까지 감행한 이 대표의 뚝심에 두 손을 들었다. 이 대표는 “당시 코커스패니얼이 유행했는데, 그만큼 유기도 많이 돼 보호소에 바글바글했다”며 “그래서 그곳에 있는 코커스패니얼을 거의 다 내가 살렸다”고 말했다.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온 개들을 입양 보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병원 검사 비용부터 만만치 않았다. 생활비를 아꼈고, 저축은 생각도 못 했다. 몸도 피곤했다. 안전하게 입양을 보내기 위해 직접 개를 차에 태우고 한밤중에도 서울로, 경기도로 찾아갔다. 실컷 기름값과 수술비를 들여 입양을 보냈더니 작은 트집을 잡아 다시 파양한 ‘진상 입양인’도 있었단다.

이 대표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여러 곳에서 도움을 얻었지만 개인으로 활동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2017년 반려동물생명윤리협회를 설립했다. 반려동물 유기 방지와 유기동물 구조, 치료, 입양 활동 등을 목표로 했다.

야심 차게 협회를 설립했지만, 방문자가 많은 ‘이데아’ 블로그 활동을 놓을 수는 없었다. 유기견을 살릴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제법 큰 복층 집에서 살 때는 한 번에 최고 50~60마리까지 돌봤다는 얘기에서 이 대표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 대표는 “지금 생각하면 미쳤죠”라며 웃었다.

‘강돌랜드’를 둘러보고 있는 반려동물생명윤리협회 이정화 대표. 이정화 대표 제공


■반려동물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현재 이 대표는 노령이나 장애 등의 문제로 입양을 보내지 못한 8마리의 유기견과 함께 살고 있다. 나머지 20여 마리는 천혜의 환경을 갖춘 전남 신안군 자은도의 유기견 위탁보호소 ‘강돌랜드’에 맡겼다.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을 통해 10년 넘게 알고 지낸 김태원 씨가 운영하는 곳이라 믿고 맡길 수 있었다고 한다. 2020년 KBS 1TV ‘동물극장 단짝’에서 이곳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씨 역시 만만찮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유기견을 돌보고 있다. 종종 후원이 들어오지만, 충분치 않다고 한다.

이 대표는 유기견을 강돌랜드에 보낼 때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치 않은 몸 때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 대표는 작년에 허리디스크 수술만 두 번 받았다. 그는 “과거에 비해 지금은 유기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젊은 활동가와 단체도 많아졌다”며 “그래서 이제는 제가 그렇게 미친 듯이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뒤로 물러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대표는 크고 작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했던 사람이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좌절에 빠져 공황장애도 겪었다. 또 입양한 유기견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데아’ 블로그 상단에는 “반려동물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대표는 “아직도 해마다 10만 마리가 넘는 강아지가 유기된다”며 “가능하면 펫숍에서 강아지를 사지 말고 유기견을 입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10년 전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인간들의 잘못 때문에 허무하게 숨지는 수많은 유기견을 생각하면 제가 살아있는 한 이 일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몰고 온 승합차 곳곳에 묻어있는 털과 개 특유의 냄새는 수많은 유기견을 구해낸 증거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이 대표의 희생과 봉사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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