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품은 붉은 예배당엔, 수많은 사연이 사무쳤다[마음의 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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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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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전남 신안 임자도 진리교회

초기 성도들 직접 돌 날라 지어
전소된 뒤 ‘공간건축’서 재설계
순교 역사 품은 붉은 벽돌 교회
단순한 기하학적 육면체가 반복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지은 진리교회 전경. 온유, 절제 등의 글귀를 새긴 기둥이 성스러운 느낌을 더해 준다. 마당의 돌들은 1993년 화재 전 교회 외벽으로 쓰였던 것들이다.
저녁놀이 길바닥에 길게 땅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이었다. 여기는 전남 신안 끝자락의 섬 임자도. 저물녘 풍경을 좇아 바삐 해안가로 달려가던 이방인의 눈에 붉은 벽돌의 교회 건물이 보였다. 섬 규모에 견줘 교회는 다소 커 보였고, 뭔가 깊은 사연을 갈무리한 채 거인처럼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이 교회가 남도 기독교의 태자리 중 하나이자 섬 선교사(史)로 유명한 진리성결교회다.

진리교회가 담고 있는 선교 이야기는 무척 많다. ‘섬 교회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가 처음 개척한 교회라거나, 한국전쟁 당시 48명의 순교자를 내고도 이인재 목사가 자신의 일가족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피의 보복을 끊었다는 등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진리교회가 알려진 건 이처럼 순교의 역사를 통해서다. 한데 그 이후의 이야기도 그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진리교회는 1933년 임자도 중심지인 진리에서 작은 초가 예배당으로 시작했다. 1963년엔 꿈에 그리던 석조 예배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과정이 눈물겹다. 당시 교회 건축에 쓰인 돌은 멀리 떨어진 소악도에서 배로 실어 왔다. 배가 진리선착장에 닿으면 성도들이 내려가 그 무거운 돌을 이고 져 날랐다. 한 지역민은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참말로 쎄 빠지게 고생혀 부렀당께.”
전남 신안의 섬 임자도에 있는 진리성결교회 본당 바로 옆의 48인 순교비. 희생자들의 후손인 이인재 목사가 직접 지어 올렸다.
1983년엔 이인재 목사가 부임했다. 교회를 세운 아버지 이판일 장로 등 가족들이 순교한 지 33년 만이었다. 1990년엔 예배당 앞쪽 마당에 순교기념비도 세웠다. 목수였던 이 목사가 인부 두세 명과 함께 직접 지어 올렸다. 한데 1993년 또다시 사달이 났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젊은 성도 한 명이 예배당에 불을 지른 것이다. 돌로 쌓은 외부와 달리 목재였던 내부는 30분 만에 전소됐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지는 법. 교인들은 예배당을 정리하고 검게 그을린 외벽의 돌들을 깨끗이 닦아 쌓아 뒀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건축비를 모았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다섯 명의 자녀와 근근이 살던 여성 교인이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첫 건축헌금으로 냈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던 커플은 신혼여행비를, 땅꾼 청년은 뱀 잡아 판 돈을 헌금했다.

담임목사 등 교회 관계자들은 무작정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공간건축’을 찾아갔다. 최고의 예배당을 짓겠다는 바람에서다. 공간건축이 어딘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사무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김수근이 짓고 그의 후학들이 건축의 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첫 만남에서는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며칠 뒤 공간건축의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더란다. 공간건축의 설계 원안을 절대 바꾸지 말 것 등 몇 가지 조건만 지키면 설계비를 받지 않고 교회를 짓겠다는 전갈이었다.
진리교회 초입의 조형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진리교회는 1997년 완공됐다. 대지는 마을의 중앙,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이다. 새 교회는 신도들이 기도하는 장소인 동시에 도서실로, 식당으로, 놀이터로, 담소의 장으로 활용돼야 했다. 마을 사람 거의 전부가 신도여서다. 교회는 본당 및 기도실, 교육관과 식당, 사무동 등 3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다. 마당은 이 교회의 중심이다. 건물의 로비이자 통로이며 본당의 연장 공간이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대다. 각 건물은 단순한 기하학적 육면체가 반복되면서 쌓여 나가는 형태다. 단순하지만 성스러운 느낌이다. 마당 바닥에는 전소된 옛날 예배당의 돌들을 깔았다.

예배당 천장의 전등은 모두 48개다. 6·25전쟁 때 희생된 교인 숫자와 일치한다. 강단 뒤 벽면엔 요한복음 4장 말씀이 세로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돌판에 새겨진 한글 서체가 이채롭다.

고난을 딛고 예배당은 다시 태어났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는 김수근의 건축 철학이 그대로 구현된 듯하다. 할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지킨 그 교회. 지금은 손자이자 아들이 담임목사가 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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