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배운 '절차적 정의'가 무너진 '개판' 재판
240712 '김재규 재심 청구 사건' 마지막 심문 기일 中 |
변호사: 10·26 재판을 두고 사법부 오욕의 역사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사건 40년 넘게 이 사건 관련해서 소회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안동일 변호사(증인): 제가 증인으로 와서 증언 하는 소회를 얘기해달라고요? (재판장을 바라보며) 조금 얘기해도 될까요. 재판장: 하시죠. 안동일 변호사: 김재규 피고인의 변호를 일곱 분이 했습니다. 제가 막내였는데 저만 생존해 있고 나머지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유일한 증인으로서 이 자리에 섰는데, 감개가 깊습니다" 제가 10·26 사건을 얘기할 때마다 당시 재판은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고 막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 그렇게 막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44년 45년 전에 일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법부 환경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은 (잠시 침묵) 오욕의 역사라고 했습니다만, 치가 떨리고 참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
240712 '김재규 재심 청구 사건' 마지막 심문 기일 中 |
안동일 변호사: 제가 대학에 들어가 <법학 개론>을 배울 때 처음 배운 것이 '절차적 정의'였습니다. 아무리 목적과 목표가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 절차와 수단이 옳지 않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당시 재판은 이런 절차적 정의가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쉬운 것은 당시 아무리 군법 회의라고 하더라도 '사법부'입니다. 옆방에는 차출돼 나온 검사, 판사 십여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계속 재판 지켜보면서 지도하고 '코치'했습니다. 심지어 쪽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랬을 때 거기 나와 있던 검사, 판사 중 "이렇게 재판하는 건 아니다", "이런 절차는 없다" 항변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중략) 사법부의 요체는 사법권의 독립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라고 헌법에 쓰여 있습니다. 당시 군법 회의가 과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목소리 커짐) 재판했는가, 참으로 통탄해 마지않습니다. 우리나라 지성, 지식인 공직자가 … (침묵)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일을 해줬다면 절차적 정의가 무너지고 그거에 의해서 신군부가 집권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한으로 여기는 겁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당시 변호인은 민간인인 김재규의 재판을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가 아닌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 이관해달라며 재정신청을 냈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재판부에 전달된 '쪽지'…그 후엔 "그만하라"
240612 '김재규 재심 청구' 사건 2차 심문 기일 中 |
변호사: 재판 기록 메모했다는데, 쪽지가 전달되면 재판부가 달라졌습니까. 안 변호사: 아유, 그럼요 쪽지가 날아오면 잠시 휴정하기도 하고 예컨대 재판 진행을 말하자면 제지 한다든지, 제가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변호사: 쪽지가 전달된 것은 이 법정을 놓고 가정한다면, 오른쪽에 문이 있었나요? 안 변호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른쪽 문이었던 걸로 던 걸로 기억합니다. (중략) 휴정하는 동안 국선 변호사 오라고 해서 (법무관) 집무실에 갔더니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안개가 담배 연기 자욱한 방이었는데…(중략) 법무관 바로 옆자리에 있는데 한 남자분이 "국선 변호사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해"라고 질문을 해서 "아니,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 손 좀 봐야겠어"라고… (방청석에서 탄식) 이게 좀 험악하구나 했는데 몇 마디 오고 가는데 "속개합니다"라는 법정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를 밀면서 법정에 들어가라고 해서 나왔죠. 마이크로 듣고 여기서 모니터링 해가지고 지시 사항을 적은 쪽지를 보내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
240612 '김재규 재심 청구' 사건 2차 심문 기일 中 |
변호사: 당시 재판 과정의 '험악성'이라고 할까요, 재판부에서 피고인 변론이나 진술 제지하는 대목입니다. [1979년 1심 군법회의 2차 공판 기일 녹취록 재생] 김재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신 체제는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도 이해가 안 갑니다. 민주주의 핵심은 민주, 민권, 자유, 평등입니다. 그리고 삼권 분립이라는 게 특징입니다. 결국 한국이나 서구의 어떤 나라든 간에 민주주의가 둘일 수 없습니다. 한국이라고 해서… 검찰관: 본 법정이 무슨 어떤 헌법학 강의장이 아니고, 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신문은 제한해 주십시오. 김재규: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은 성립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신헌법을 볼 때… 법무사: (격앙된 어조로) 제한하겠습니다. 그만하십시오. 김재규: 유신헌법이라 하는 것은… 법무사: (큰소리로) 법정 질서에 도전하는 겁니까! 변호사: 이 사건의 동기를 말씀하는데 이를 제한하면 이 사건이. 법무사: 동기를 간단히 말씀하십시오. 자꾸 역사, 역사하지 마십시오. [녹취록 재생 끝] 변호사: 여기서 제한됐습니다. 법정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이가 재판장입니다. 안동일 변호사: 기억납니다. 계속 저렇게 제한하고…목소리를 들으니까 저 법무사가 돌아가셨는데 아마 쪽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렇게 험하게 제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김재규' 재심할까…이르면 8월 결정
훗날 본 공판조서는 법정 진술과는 딴판이었다고요. (1, 2차 기일 사이 대법원 재정신청 결과를 기다리던 3일을 제외하고는 재판 시계는 숨 가쁘게 흘렀습니다.)
240712 김재규 재심 청구 사건 마지막 심문 기일 中 |
1979년 김재규 1심 최후진술 김재규: 10월 유신 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과 종신 대통령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가 돼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자유 민주주의를 지킬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이를 말살할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도 절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10·26 혁명의 목적을 말하면 첫째가 자유민주주의 회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중략) 제가 한마디 확실히 해둘 것은 결코 저는 결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혁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군인이었고 혁명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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