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은 누가 쓰나”…5년? 7년? 10년? 판사 임용기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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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5. 오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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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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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판사로 일하려면 일정 기간 '법조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2013년 도입된 이른바 '법조일원화(法曹一元化)' 제도 때문인데요. 검사나 변호사, 교수, 공무원 등으로 법조 경력을 쌓은 사람 가운데서 판사를 임용하는 제도입니다.

2024년까지는 5년 이상, 2025년부터 2028년까지는 7년 이상, 2029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쌓아야 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법원조직법 제42조(임용자격)
② 판사는 10년 이상 제1항 각 호의 직에 있던 사람 중에서 임용한다.

왜 이런 제도가 도입됐을까요?

제도 도입 전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에서 성적 우수자를 바로 선발했습니다. 이른바 '소년등과'의 배경이기도 하죠. 하지만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이 그 안을 넘어 법관의 서열과 보직, 임지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법원을 관료화시키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 연수원을 갓 수료한 젊은 판사들이 사회 경험이 부족해 국민의 상식이나 법 감정을 재판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면서 2013년 법조일원화 제도가 도입된 겁니다.

그런데 법원이 최근 이 제도의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주장의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하면, "판사가 되기 위한 법조경력이 5년이면 충분하다. 10년은 너무 길다"는 겁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엔 점점 우수한 판사를 뽑기 어려워질 것이란 예상이 깔려 있습니다.

■ "경력 7년, 10년 이상 법조인은 법관 지원 안 해"

오늘(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바람직한 법관임용자격 개선방안'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배용준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경력요건을 낮추지 않으면 우수한 판사 자원을 선발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 7년 이상 법조 경력자를 뽑게 되는데, 5년 이상만 법조경력을 가지더라도 판사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배 판사는 "1심 단독 재판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중요 사건은 1심 합의부에서 담당한다"며 "합의부를 운영하려면 설득력 있고 충실한 판결서를 작성할 배석 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7년 이상 법조 경력자들은 기존 직장에서 서면 작성을 하지 않는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판결서 작성을 해야 하는 법관 업무에 바로 적응하기 어렵고, 이는 법관 지원을 기피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배 판사는 이어 법원의 낮은 보수와 처우 부분이 현 제도와 맞물려 인재 유치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 현재 법관 보수 수준으로는 법관으로서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경력 기간이 긴' 법조 경력자를 유치하기 어렵다"면서, "법조경력 5년 신임법관의 보수는 연 7,300여만 원(원천징수세액, 기여금 등 공제 전), 법조경력 10년 신임법관은 약 9,200여만 원으로 법조경력요건을 강화할수록 능력이 검증된 임용 후보군과 법관의 보수 편차가 커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상당한 경력의 법조 경력자가 판사가 되기 위해선 누리고 있던 변호사로서의 보수를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매우 커 지원을 주저하게 되고, 우수한 판사를 모집할 수 없게 될 거란 우려입니다.


배 판사는 "7년 이상 경력자는 자신의 조직 내에서 승진 내지 해외연수 기회를 가질 시기인데, 이를 포기하면서 법관에 지원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또 높은 법조경력을 갖추고 늦은 나이에 법관으로 임관하면 현재의 연금 수급조건 등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만큼의 연금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만 판사로 채용하면 많은 문제들이 불거질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배 판사는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만 판사로 임용할 경우 현행 합의부 유지가 어렵고, 법관 업무량이 많은 상황에서 법관이 고령화되면 업무역량 저하 및 사건 적체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것은 재판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다수의 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는 "법관으로서 재판·판결서 작성에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한 판사가 재판연구관으로 보임될 경우 조사·연구의 효율성 등이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배 판사는 "경력조건을 완화하면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다른 직역에서의 보수와 지위 포기에 대한 기회비용이 증가 되기 전 법관 지원이 가능해 적임자의 법관 지원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조경력요건을 완화하더라도 법조일원화가 후퇴하는 것은 아니고, 우려하는 후관예우를 법조일원화 체제에서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법관의 관료화‧서열화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위의 폐지 등으로 이미 상당히 해소되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법조일원화 제도의 전면 수정을 요구한 건데, 이는 최근 대법원이 들고 나온 주장과 동일한 주장입니다. 최근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5년의 법조 경력만 있으면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자격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며 대법원장에게 건의했습니다.

이번에 열린 세미나도 법 개정 동력을 내부적으로 축적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세미나에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조실장, 서울고등법원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 "법조경력 5년으로 단축이 바람직"

이날 토론회에서는 법원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일부 나왔습니다.

토론자로 나선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년 전후의 경력은 다른 직장에서도 일반적으로 경력직 이직 시기로, 시기적으로 최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양질의 지원자 풀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7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몸담은 곳에서 성실히 일해 인정받아 유학 기회를 제공받거나 승진한 경우, 혹은 자신의 사무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경우, 이를 버리고 경력법관에 지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교수는 "경력법관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아직 관리자 위치까지 가기 전에 법관에 지원해 평균 30대 중반에 법관으로 임용된 후 배석판사로서 부장판사의 지도 하에 4~5년 정도 일하다가 단독판사가 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법관임용제도와 재판제도는 비교적 일찍 선발된 우수한 인력이 장기간의 도제식 수련을 거쳐 다수의 사건을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저렴한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며 "(현재처럼) 10년 이상 경력 요건을 고수할 경우 이러한 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우므로, 법관을 현저히 증원하고 법관의 대우를 높이며 영미식의 당사자주도형 재판진행, 상소 제한, 단독재판화를 병행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재판 지연과 사건 적체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기원 한국법조인협회장도 "법관의 처우를 높이고, 법조경력요건을 단축하는 두 가지 방안을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7년, 10년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이라도, 법관이 되는 것이 처우, 명예 등의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진로의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법조경력이 짧은 법조인을 임용하는 경우 재판연구원, 법률구조공단 파견, 공공기관 법무부서 파견 등의 다양을 경험을 쌓은 후 배석판사직을 맡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어영강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이원적 방식의 임용'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 임용은 단독재판장 보임을 목표로 한 임용절차로서 무시험전형을 기본으로 2년간 배석판사 업무를 수행한 이후에 단독재판장으로 보임하도록 하고, 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임용은 현행과 같은 방식으로 법률서면작성, 서류전형, 실무능력평가 등으로 뽑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 "법조경력 완화는 사회적 합의 무위로 돌리자는 것"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법조경력요건을 완화하자는 견해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를 출범하면서 최소 10년의 법조경력을 가진 변호사 자격자들 가운데 판사를 임용하자던 2011년의 사회적 합의를 무위로 돌리려는 주장"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교수는 "판사 임용에 최소 10년의 법조경력을 요구한 까닭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의 입장에서 법적 분쟁을 바라보는 변호사의 수련이 판사의 자격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고, 이 과정에서 판사후보자를 선별하려면 장기간의 인사자료가 있어야 하고, 전관예우의 폐해를 피하려면 판사직이 자연스럽게 법률가 인생의 최종 직업이 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판사가 되기 위한) 최소 법조경력을 완화하자는 (법원의) 주장은 이 모든 요청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를 판사로 임용하게 될 경우 법조일원화를 확실히 이룰 수 있고, 판사집단의 다양성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조일원화가 법조경력요건을 완화하는 것보다 전관예우 완화에 도움이 되고, 후관예우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비를 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법관의 관료화‧서열화가 재연되지 않도록 확실히 방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2021년에도 법조경력 단축 시도 국회 부결…개정 가능할까

다만 대법원의 주장과는 별개로, 실제로 입법 가능성은 불투명합니다.

국회가 지난 2021년에도 판사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 기간을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탄희 의원
"현행법은 짧게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또 길게는 1993년부터 18년간 논의해서 2011년에 도입한 제도입니다. 그런 제도를 입법공청회 한 번 안 하고 법안 발의 후 단 3개월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렇게 퇴행시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무리수입니다. …대형 로펌 출신자들과 법원 내부 승진자들의 독식 현상이 심해지고 전관예우, 후관예우 더 심해집니다."

홍정민 의원
"최소 법조경력이 10년 이상으로 판사 임용기준이 강화된다면 법관 부족으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소한 30대 초중반은 되어야 어떤 분야의 경험을 쌓거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을 봤을 때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의 경우라면 10년의 추가 법조경력을 갖춘다면 빨라도 40대 후반, 평균 50세는 되어야 신임 법관으로 응시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제21대 국회 390회 1차 본회의 회의록

당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법률안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인력난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법조 현실과 전체 사법 시스템에 장기적으로 최악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법원은 변호사 시험성적 좋은 사람들을 로클럭(law clerk·재판연구원)으로 입도선매하고 대형 로펌들은 3년 뒤 판사로 점지된 이 사람들을 모셔 가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같은 당의 홍정민 의원이 "일본은 법조경력의 제한이 없고 미국과 영국은 5년 이상, 독일도 3년에서 5년 이상이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5년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특별히 불합리하다고 판단할 이유는 없다"며 찬성 의견을 냈지만, 국회는 재석 229인 중 찬성 111인, 반대 72인, 기권 46인으로 법안을 부결시켰습니다.

한 보좌관은 "법원은 법조경력 기간이 5년으로 바뀌려 할 때도 동일한 논리였다"며 "3년 전과 별다른 사정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개정안이 발의되더라도, 여야가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법조경력 완화라는 법안의 우선도가 얼마나 높을지 두고 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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