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남산 끌려가 특허 포기한 발명가 유족에 지연이자 포함 23억여 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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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25. 오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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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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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 염색 기술 특허권을 뺏긴 발명가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 3천만여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이세라 부장판사)는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홀치기'를 발명한 고 신 모 씨의 자녀 2명에게 국가가 모두 7억 3천만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지연이자를 더하면 신 씨 자녀들이 받을 돈은 모두 23억 6천여만 원입니다.

홀치기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직물 특수염색 기법입니다.

신 씨는 이 기법을 발명한 후 5년여에 걸친 소송전 끝에 1969년 특허권을 얻었습니다.

이후 기술을 모방한 다른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972년 5월 1심 선고에 따라 5억 2천만여 원을 배상받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을 준비하던 중 신 씨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남산 분실로 끌려가 구금된 채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고 특허권을 포기한다"는 자필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각서를 받은 재판부는 결국 '소 취하'를 이유로 소송을 종결했습니다.

신 씨가 당한 일의 배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연행되기 전날 열린 수출진흥 확대회의에서 홀치기 수출조합이 상공부 장관에게 "민사소송 판결 때문에 수출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건의했고, 이를 보고받은 박 전 대통령이 수출업자들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신 씨는 2006년 11월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나 각하됐고, 그는 명예 회복을 하지 못 한 채 201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유족이 다시 신청해 작년 2월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고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부는 "신 씨는 불법 감금돼 심리적, 육체적 가혹행위를 당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소 취하서에 날인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회복하기 어려운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신 씨는 자녀가 재차 진실규명을 신청하기 전에 사망해 생전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좌절됐다"며 "공무원에 의해 조직적이고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일어날 경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신 씨가 1972년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해 받기로 한 5억 2천만여 원과 지연이자,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등을 고려해 총 배상액을 산정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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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투쟁들을 취재합니다. SBS 탐사보도부 원종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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