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의 이동 신기록 소식이 전해져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겁다. 거대한 바다를 떠도는 혹등고래의 이동 경로와 거리, 계절적 패턴은 자연계에서 특별한 현상 중 하나로 꼽힌다. 지구의 환경 변화와 해양 생태계의 건강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흑등고래 또한 해마다 같은 이동 경로를 따르지만, 최근엔 그 경로를 바꾸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태평양·인도양 1만3046㎞ 이동
긴수염고래과에 속하는 혹등고래는 모든 것이 커다랗다. 몸길이가 19m까지 자라고 체중이 40t이나 된다. 가슴지느러미는 성체 혹등고래 전체 길이의 3분의1 정도인 약 4.6m까지 자란다. 이 가슴지느러미로 물을 격렬하게 내리치면서 고래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고, 또 먹잇감들을 놀라게 해 한곳에 모아 흡입한다.
혹등고래의 주요 먹잇감은 작은 새우처럼 생긴 크릴새우와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여름에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극지방의 해양에서 먹이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온도가 내려가는 겨울이 되면 새끼를 키우기 위해 번식지인 남쪽 아열대의 바다로 이동한다.
그런데 최근 호주 서던크로스대 고래 생물학자인 테드 치즈먼 연구팀이 수컷 혹등고래 한 마리가 남미에서 아프리카까지 1만3046㎞(8106마일)가 넘는 놀라운 여정을 마쳤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1만3046㎞는 한 마리의 단일 혹등고래가 이동한 거리 중 가장 긴 거리에 해당한다. 1999~2001년 사이 브라질에서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섬까지 9800㎞를 헤엄친 암컷 혹등고래 이후 20년 만에 세운 신기록이다.
1만3046㎞는 한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거쳐 뉴욕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보통 혹등고래는 매년 8000㎞(4971마일) 이상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이번 한 마리의 혹등고래는 일반 혹등고래가 이동하는 거리보다 거의 2배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한 셈이다.
또 이 용감한 해양 거인의 여정은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를 여행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혹등고래는 2013년 태평양 콜롬비아 해안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2017년 원래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발견됐다. 하지만 5년 후인 2022년, 동아프리카 해안에서 떨어진 잔지바르 근처 인도양에서 예상치 못하게 목격됐다. 혹등고래는 전 세계 바다에 서식하며 포유류 중 가장 긴 이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고래의 이동은 두 번식지 사이를 이동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고래는 종마다 이동하는 경로가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이동 경로'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예를 들어 태평양의 혹등고래 개체군 중 하나는 여름에 알래스카 주변 해역으로 이동해 먹이를 찾고, 겨울에는 북태평양의 하와이제도 주변 해역에서 짝짓기를 해 새끼를 낳아 키운다. 반면 북대서양의 두 개체군은 메인만에서 노르웨이까지 먹이를 찾고, 겨울에는 인도양 아프리카 연안의 서인도제도와 카보베르데 해역으로 옮겨 번식을 한다.
하지만 연구팀이 발견한 혹등고래는 번식지가 서로 다른 바다, 즉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두 번식 집단 사이를 이동했다. 치즈먼에 따르면 혹등고래는 놀라울 만큼 정밀하게 방향을 잡는데, 이 혹등고래 또한 어린 고래가 아니어서 방향감각을 잃어 번식 구역을 벗어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이는 지금까지 일관성을 유지했던 혹등고래의 이동 패턴이 예상보다 더 유연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번 발견은 치즈먼이 공동 창립한 플랫폼인 '해피웨일(happywhale.com)' 덕분에 가능했다. 그동안 연구자, 고래 관찰자들, 전 세계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혹등고래 사진을 이 웹사이트에 올렸다. 현재 이곳 데이터베이스에는 약 10만9500마리의 고래가 저장되어 있다. 연구팀은 이들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의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해 혹등고래의 꼬리지느러미를 분석했다.
고래는 보통 꼬리지느러미의 모양 형태에 의해 같은 개체임을 확인한다. 사람의 지문처럼 개별 고래마다 꼬리지느러미의 모양, 무늬, 색깔, 흉터 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이 혹등고래의 이동을 하나하나 추적해나간 것이다. 그 결과 태평양에서 먹이를 찾아 살아가던 혹등고래가 인도양으로 이동한 혹등고래와 똑같은 고래임을 식별해냈고, 1만3046㎞를 횡단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부족해진 먹이와 짝 찾으러 멀리 이동
그렇다면 혹등고래는 왜 이렇게 장대한 여정을 하게 되었을까. 연구팀은 가장 큰 이유의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혹등고래가 먹고 사는 크릴새우의 양이 기후변화로 줄어들면서 먹이를 찾아 더 멀리 이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비정부기구인 '혹등고래 프로젝트'는 2021년 한 해에만 브라질 대서양 해안에서 혹등고래 사체가 216구나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혹등고래 프로젝트'의 미우톤 마르콘지스 사무총장은 "브라질 해안에서 혹등고래 사체가 대규모로 발견되는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먹이가 부족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발견된 혹등고래 사체는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상태였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수컷 혹등고래의 1만3046㎞라는 장거리 이동을 촉진한 또 하나의 이유로 사회적 또는 환경적 요인을 꼽는다. 지구촌의 고래 사냥 금지령 이후 혹등고래의 개체 수가 회복되면서 일부 고래들이 새로운 번식지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혹등고래는 콜롬비아에서 다른 수컷들과 짝을 두고 경쟁했을 가능성이 높고, 덜 공격적인 환경을 찾기 위해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실렸다.
고래는 이산화탄소 포획과 저장의 일등공신이다. 지방과 단백질이 많은 거대한 몸집 안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수톤씩 저장한다. 그 때문에 고래가 자연사할 경우 몸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되고, 몸에 저장된 탄소도 고스란히 가라앉게 된다. 고래의 사체가 심해 깊은 곳까지 가라앉는다면 탄소는 수백 년 이상 바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격리된다.
미국의 해양 과학자 앤드루 퍼싱(Andrew Pershing) 박사는 혹등고래를 비롯한 8종의 고래가 죽은 뒤 해저로 가라앉을 때의 이산화탄소 저장량을 추산했다. 그 결과 매년 3만t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심해에 갇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에서 지구를 지키는 고래를 잘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통해 고래가 전 세계의 바다로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얻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