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주는 정말 '바가지'의 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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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25. 오후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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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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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 불구 아직도 가격 기준 제각각
관광객은 모르는 '도민 무료' 관광지도
제주의 한 해수욕장이 관광객 없이 텅 비어있다. photo 연합


지난 8월 20일 저녁 7시 제주 국제공항. '국제선 출발' 구역에는 홍콩, 중국, 일본 등으로 출발하는 몇백여 명의 외국인들이 4열 종대로 늘어서 있었다. 반면 '국내선 출발' 구역은 텅텅 비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국제선 구역의 4분의1도 되지 않는 내국인들은 곧바로 수속을 밟는 모습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 7월 17일 기준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해외 항공 노선 확대, 크루즈 관광객 증가로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8월 18일 기준으로는 121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최근 내국인들 사이에서 제주도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지는 모양새다. '여기어때'에 따르면 최근 국내 여행지 중 여행객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으로 전체 응답자 중 37%가 '강원도'를 골랐고, 2위가 '제주도'였다. 추석 여행지 중 가장 선호하는 국내 여행지 또한 '강원도'가 제주도를 제치고 1위로 꼽혔다.

제주의 한 관광지에서 20년째 유명 제주갈치조림 가게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같은 경우 본래 외국인이 별로 안 좋아하고 안 먹는다.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게 확연히 느껴진다. 작년 지금 이맘때라면 식당이 꽉 찼었을 텐데 작년 대비 40% 줄었다. 최악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공항 근처에 거주하며 말농장을 운영하는 한 70대 도민은 "요새 마주치는 게 죄다 중국 관광객"이라며 "한국 관광객은 작년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MZ들 사이에서 제주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카페에서 코로나 때부터 일했다는 한 20대 도민은 "같은 시기 평일인 걸 생각하면 엄청 줄었다. 코로나 이후 계속 줄었지만 올해는 반 이상 더 줄었다. 발디딜 틈이 없었던 곳인데 해외로 다 나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 관광객들의 냉담한 반응은 일명 '제주 바가지'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행지 물가와 서비스에 대한 논란은 본래 다반사지만, 최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주 여행에 대한 논란이 유독 심해졌다. '비계삼겹살'부터 시작해 '20만원짜리 갈치' '썩은 참외' '5만원짜리 해산물' 등 몇 달 만에 다양한 경험담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며 여행 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이는 엔저에 따른 일본 여행 붐과 맞물려 '제주도 갈 돈이면 일본 간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주간조선은 성수기인 지난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4일간 제주도를 방문해 실제 휴가 비용을 체험해봤다. 논란이 되었던 장소를 직접 찾아 제주 관광객과 제주도민, 도청의 목소리를 들었다. 논란 이후 어떤 변화가 있는지, 바가지라는 비판에 과장은 없는지 점검했다.

지난 8월 20일 오후 7시 제주 국제공항 국제선 출발 구역에 외국인들이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photo 권아현


'비계삼겹살집'의 반전

직접 찾아가본 결과 바가지 논란을 빚었던 '그곳'들은 대부분 상황이 개선돼 있었다. 일명 '비계삼겹살'로 비판받았던 유명 고깃집을 찾아 논란이 됐던 고기 종류를 주문해봤다. 고기를 내온 직원은 "고기 올려드리기 전에 상태 확인해보시라. 괜찮다고 하시면 구워드리겠다"고 말했다. 90% 넘는 부위가 비계로 보여 논란이 됐던 사진과는 달리, 직원이 커팅해준 고기는 비계 부위가 절반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날 이곳을 찾은 관광객 대모씨는 "질이 좋고 맛있는 고기"라며 "만족스러운 식사였다"고 평가했다. '5만원 해산물'과 '무허가 영업'으로 논란이 됐었던 용두암에서는 더 이상 노점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용두암 인근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이제 아예 장사를 안 하신다. 이곳은 원래 물질하는 장소라 조만간 해녀들이 나오긴 할 것"이라며 "(해산물을) 잡아오는 대로 썰어서 먹게끔 팔진 않아도, 손님들이 원하면 즉석에서 통째로 거래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녀포차'로 불렸던 곳에는 관광객이 만든 듯한 돌탑들만 쌓여 있었다.

그러나 제주 물가에 대한 관광객들의 걱정, 불만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주의 한 오일장을 찾은 커플(30대)은 오일장에서 불거진 썩은 참외 논란을 '잘 모른다'라면서도 제주 물가에 대해 "바가지 씌울까봐 아무래도 좀 걱정은 된다" "제한된 비용에서 소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관광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관광객 희모씨(서울)는 "제주도 어딜 가도 커피가 9500원"이라며 "다른 관광지도 물가가 비싼 걸 알지만, 제주가 특히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 갈치요리집 앞에서 만난 관광객 서모씨는 "통갈치구이를 4인이서 20만원 내고 먹었다"며 "솔직히 10만원이면 적정한 가격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제주의 오일장 내부 폐업 점포(위). 제주 관광 중심지에 위치한 건물에 임대 안내가 붙어 있다. photo 권아현


관광객 "바가지 걱정된다" 도민 "부끄럽다"

도민들은 관광객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 같은 바가지 논란을 비판했다. 자신을 제주 토박이라고 밝힌 A씨(20대)는 "솔직히 부끄럽다. 바가지가 맞다. 갈치조림도 너무 비싸고. 전에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10년 전쯤부터 계속 높았던 것 같다. 예전부터 제주도는 임금이 많이 낮은 편이다. 임금이 낮은데 가격은 관광객 물가에 맞춰서 받으니…. 저희도 이제 생각을 하고 합리적으로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0여년 전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왔다는 B씨(60대)는 제주 오일장 썩은 참외 논란이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제주 상인들이 반성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재래시장이 가격 싸다는 건 옛날 얘기다. 대부분 마트가 더 싸고 싱싱하다. 야채 하나도 안 팔리지 않나. 사실 여기서 살 만한 것은 더덕 한 가지밖에 없다. 그러면 덤도 주고, 깎아주고 하는 시장 인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서울이나 다른 육지 지방 같으면 이 정도는 아니다. 여기 사람들만 조금 이상하다. 너무 인색한데 스스로 왜 문제인지 모른다. 손님이 없어지면 원인분석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가격을 더 올린다. 처음 서울에서 제주 내려왔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5년 전서부터 너무 인색해졌다."

서비스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였다. 오일장 상인회와 상인들은 썩은 참외 논란에 대해 "온라인에 올리기 전 우리에게 가져왔으면 환불을 해줬을 것" "한 가지 사례로 과장해 모든 상인들을 매도한다"며 반박했지만, 도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10년째 제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라모씨는 "제주도민은 기본적으로 돈이 많다. 정부 지원책이 많아서 감귤농장 하면 1년에 기본적으로 500만원씩 지원이 나오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불친절한 경우가 있다"라며 제주 도민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앞서의 도민 B씨는 "마트보다 비싸다고 말하면 화를 내면서 '그럼 마트 가'라고 한다. 이렇게 더운 날은 좀 늦게까지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해 떨어질 만하다 싶으면 4시부터 벌써 짐을 싼다. 그래 놓고 장사가 안 된다고 한다"고 상인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가격을 올렸는데도 '내린 척' 꼼수를 부리는 가게들도 종종 보였다. 기자는 지난 8월 18일 1인분 '혼밥'이 주문 가능하다는 리뷰를 보고 유명 제주갈치조림 식당을 방문했다. 메뉴판에는 모두 1인분 기준 가격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림 1인분을 주문하자 리뷰에도, 메뉴판에도 없었던 정보인 "5000원을 추가하셔야 한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사장에게 영문을 묻자 "손님이 너무 없어 최근 2인 기준 가격을 2000원 내렸다. 8월부터 1인분은 5000원을 추가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1인 혼밥 또는 소규모 단위가 많아졌다는 사장의 설명을 고려하면, 사실상 가격을 인상한 셈이다.

편의시설 대여료를 파격 인하한 해수욕장의 경우에도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측은 주간조선에 "해수욕장 파라솔과 평상 이용료 민원이 급증함에 따라 지난 7월부터 도내 12개 해수욕장 모두 파라솔·평상 대여료를 인하했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1곳의 경우 파라솔은 2만원으로 인하해 통일했고, 평상은 3만원으로 인하 하거나 또는 당초 가격의 50%를 인하했다. 나머지 1곳 해수욕장의 경우 조수간만의 차가 큰 백사장 여건으로 인해 위치 관리가 어려워 소폭만 조정했다."

오영훈 제주지사(왼쪽 셋째)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 넷째)이 지난 8월 12일 ‘제주와의 약속’ 숙박분야 실천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photo 뉴시스


편의시설 대여료 마을 청년회가 정해

'1곳 빼고는 파라솔 가격을 통일했다'는 도의 이런 설명과는 달리 해수욕장마다 그 기준과 가격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지난 8월 21일 찾은 H해수욕장의 경우, 보도자료와 공지 등에 따르면 파라솔 대여료는 2만원이다. 주변 해수욕장 관리자들에 따르면 이 '파라솔'이 지칭하는 것은 '파라솔 탁자 의자' 세트다. 그러나 H해수욕장에서 '파라솔 돗자리' 세트는 2만원이지만, '파라솔 탁자 의자' 세트는 2만5000원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상인은 "'파라솔 돗자리' 세트는 해수욕장 정중앙에 위치해 가장 더운 자리다. 8월에는 모래가 너무 뜨거워져 사용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돗자리 세트를 대여했다가 이중으로 돈을 쓰는 관광객들도 많이 봤다"고 전했다.

G해수욕장의 경우 '파라솔 탁자 의자' 세트가 2만원에 대여 가능했지만, 대신 8월부터 튜브 바람 주입 비용을 받고 있었다. 편의용품 대여 장소에는 '개장부터 무료로 운영하던 모든 튜브 공기주입비용을 8월 1일부터 유료로 운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제주도의 일방적인 기사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튜브 유료 운영 이유도 적혀 있었다. G지역 청년회 일원에게 튜브 주입 비용에 대해 물어보자 "1000~2000원을 내면 해드리고 있다"며 "우리가 대여료를 받고 빌려드리는 튜브나, 관광객이 개인적으로 해변에 가져오는 튜브를 가리지 않고 다 해드린다"고 설명했다.

한편 편의시설 대여료가 손님의 유무에 따라 아직도 제멋대로 책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평상가격을 내리지 않은 G해수욕장에서 평상을 대여하려고 문의해보니 "원래 하루 종일 대여하면 10만원, 반나절 대여하면 5만원인데 오늘은 그냥 5만원으로 해드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날씨가 흐려 해수욕 관광객이 거의 없는 날이었다. 기자가 "오늘 반나절만 대여하면 얼마냐"고 묻자 "반나절이든 하루 종일이든 5만원이다"라는 답이었다. H해수욕장의 민간 사업체에 평상 대여를 문의해보니 "반나절이든 하루 종일이든 원래 6만원인데, 5만원에 해 드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해수욕장은 마을 사유지입니다''개인 파라솔, 그늘막은 설치 가능 구역에만 설치 가능합니다'… . 이런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제주의 대부분 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이 속한 지역 마을의 사유지다. 편의시설 대여료가 제각각인 이유도 해변을 관리하는 마을 청년회 등이 운영을 맡는다는 제주만의 독특성에 있다. 개인 편의시설 설치가 가능한 곳을 안내받아 보니 G해수욕장의 경우 주차장에서 가장 먼 곳에 폭 20m 남짓만 허용됐다. 이 해수욕장의 총 길이는 약 350m이니 5% 정도만을 허가한 셈이다. H해수욕장의 경우에도 가장 변두리 지역 일부에 개인 시설 설치가 가능했다.

이에 대해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해수욕장 개념은 사실 공유수면이며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영역이라 소유 개념이 애매하지만,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마을이 소유하고 관리해왔었기 때문에 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 드린다. 그러다 보니 운영권 자체를 마을이 가지고 있고, 수익이 나오면 마을 발전을 위해 쓴다"고 설명했다. 또 오 지사는 "제주는 마을 공동체 자산이 많은 곳이다. 공동체 문화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마을 공동목장이 여전히 남아 있고, 어촌계가 마을 해녀의 공간이고, 오름 하나가 마을의 재산이고 그렇다. 그래서 대화와 설득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마을 단위의 해변 독점이 바가지 요금과 배짱장사를 부추긴다는 원인 분석도 나온다. 앞서의 자영업자 라모씨는 "솔직히 제주사람들 정신 차려야 한다. 전국 해수욕장 중 마을이 독점으로 파라솔 등을 관리하는 곳은 제주밖에 없다. 공개입찰 방식으로 공평하게 하거나 시에서 운영해야 하는데 텃세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마을회관 커피숍까지도 그들 아니면 운영을 못한다"라고 꼬집었다.

반면 시에서 운영하는 물놀이장 등은 편의시설 등이 무료로 운영되며 도민들만 알고 이용하는 등 주요 관광지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도민 방문 비율이 관광객 대비 74%에 달하는 도민명소 1위 정모시 쉼터에서 만난 한 20대 남성은 "해수욕장 가면 평상 빌리는 데만 10만원이 들 거다. 여기는 돈이 10원도 안 드는데 굳이 맨날 보는 해수욕장을 갈 필요가 없다. 관광지랑 주민이 이용하는 곳은 당연히 물가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시청 관리자는 "여기는 시청에서 관리하는 물놀이장이기 때문에 구명조끼, 평상 모두 무료로 대여가 가능하다. 취사는 금지되지만 배달을 시켜서들 드시더라. 도민들 위주로 많이 오신다. 해수욕장 바로 앞에 사는 도민도 여기로 물놀이를 온다. 하루 400명 정도가 올 때 50명 정도만 외국인, 외지 관광객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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