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출생'도 지원, 탈북민 사각지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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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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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대상 대안학교인 ‘한꿈학교’에서 제3국 출생 자녀들을 포함한 탈북청소년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photo 한꿈학교


"아직도 어렵고 가끔은 힘들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엄마랑 같이 사는 게 좋아요."

탈북민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살고 있는 A(20)씨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탈북 과정에서 중국인 아버지를 만나 A씨를 낳았다. A씨는 유년기를 중국에서 보냈지만 중학교를 마칠 무렵 어머니를 따라 남한에 입국한 뒤 정착했다. 그는 이미 귀화를 마친 상태로 검정고시에도 합격해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했다. 아직 서툰 의사소통 등 한국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출생지인 중국을 가끔씩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A씨에겐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하다. 이제 A씨는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A씨와 같은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8월 8일 북한이탈주민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시행계획'을 심의 및 의결했다. 이날 발표된 계획은 지난 7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언급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을 위한 정책 추진에 따른 후속 조치다. 통일부는 이번 계획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역량, 화합 등 세 가지 측면에서 10대 과제 이행방안을 마련하고, 특히 '탈북 여성 안정'과 '제3국 및 국내 출생 자녀에 대한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제3국 출생들은 탈북민 자녀임에도 탈북민 지원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탈북민으로 인정하고 북에서 온 자녀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 범위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제3국 출생들도 탈북민 범위에 포함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수경 통일부 차관이 지난 8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3국 출생'이 북한 출생의 두 배

기존 탈북민 지원 정책에서 소외됐던 이들에 대한 지원이 본격적으로 확대된다면, 보다 많은 탈북자녀들이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부는 법률안 제출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를 위해 일단 드라이브를 건 통일부 정책 취지에 국회가 호응한다면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3만4078명. 이 중 여성 비율은 지난해 6월 기준 2만4000여명으로 9500여명인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탈북여성들은 대부분 중국 등 제3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인신매매나 강제결혼을 통해 아이를 갖게 된다. 이후 북송 위험에 놓인 이들은 제3국을 떠나 대부분 남한으로 향한다.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자녀를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맡기지만, 남성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장애인 등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자녀가 청소년이 됐을 무렵, 어머니는 자녀를 남한으로 오게끔 한다. 남한에서는 이렇게 입국한 아이들을 '제3국 출생' 자녀라고 부른다.

최근 수년간 제3국 출생 자녀의 비율은 빠르게 늘고 있다. 교육부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남한에 재학 중인 탈북학생(전체 1769명) 중 제3국 출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71.1%(1257명)로 28.9%인 북한 출생(512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제3국 출생은 2015년 북한 출생 비율을 처음 역전한 뒤부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탈북청소년 대상 대안학교인 '한꿈학교' 김영미 교장은 주간조선에 "코로나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이후 탈북학생의 입국이 현저히 줄면서, 2016년부터 탈북학생의 수를 능가하던 탈북여성-중국출생 자녀(제3국 출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북한 출생으로 남한에 정착한 청소년들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남한 정착을 위한 다양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제3국 출생자녀들은 제외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한 출생들은 취업장려금이나 자산 형성을 위한 미래행복통장 등 정부의 지원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제3국 출생의 경우 북한에서 직접 내려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탓에 탈북 부모에게 제공되는 것 외에는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국립전통예술고 학생과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하늘꿈중고등학교’ 합창단 학생들이 지난 7월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공연하고 있다. photo 대통령실·뉴시스


'한국사람 되고 싶지만'… 국어가 가장 난관

경제적 지원 외에 제3국 출생 자녀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따로 있다. 바로 언어 문제다. 이들은 북한 출생과 달리 유년기부터 한국어를 사용한 적도, 공식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따라서 남한에 들어와 제도권 교육에 진학해도 또래들을 따라갈 수 없다. 앞서 A씨도 "(처음 입국했을 때) 한국말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중국어가 사실 더 편했지만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김영미 교장 역시 "북에서 온 친구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정보 덕분에 외래어도 어느 정도 알고 들어오는 반면 제3국 출생들은 기본적인 대화도 힘든 상황"이라며 "일반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도 종종 언어와 교우관계의 어려움으로 대안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있다"고 했다. 일상적 소통도 어려운 제3국 출생들에게 선택지는 대안학교뿐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 병역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탈북남성의 경우 병역이 면제되지만 제3국 출생들은 예외다. 김 교장에 따르면 제3국 출생 남학생들은 대부분 남한에 정착한 후 한국인으로서 병역 의무를 다하겠다는 입장인데도 입대하기 여의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교장은 "제3국 출생 남학생들은 생활 한국어도 서툰데 군대 가서 적응하는 것은 더욱 힘든 처지"라며 B씨와 C군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장에 따르면 B씨는 '한국에 올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군 복무 하겠다'며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아버지가 조선족이었던 B씨는 다행히 다른 아이들보다 한국어 실력이 나은 편이라 안정적인 군 생활이 가능했다. 반면 C군은 대안학교에 오자마자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았지만 한국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 교장은 "(C군은) 신체검사 받는 것부터 난관이었다"면서 "병무청에 여러 차례 전화했었는데 아직 제3국 출생을 받아줄 만한 준비가 덜 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제3국 출생들이 남한 사회에서 겪는 차별 역시 여전하다. 탈북민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조명숙 교장은 주간조선에 "한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짱개'라는 말을 듣고 와서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했다"면서 "사회적으로 '중국인 아니냐'는 인식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3국 출생 자녀들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탈북민 엄마를 따라 남한에서 살겠다고 온 친구들이다. 중국에서 컸지만 '한국사람 되고 싶다'고 말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조 교장은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은 (맞춤형 한국어 교육이) 대안학교에서만 이뤄지다 보니, 일반 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국어 교육을 전혀 받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장 역시 "과거에는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 괜찮았지만, 이젠 제3국에서 온 친구들이 많다 보니 한국어 교육에 중점을 두고 교육한다"면서 "(한국어 교육이) 가장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국회 모두 관련법 개정 나서

이번에 통일부는 제3국 출생들을 아예 '북한이탈주민법'에 포함시키는 법률안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관련법 제2조는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만을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의하고 있다. 통일부는 여기에 '제3국 출생자녀' 정의규정을 추가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학력 인정과 교육 및 보육지원 관련 문제도 제3국 출생들에게 확대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제껏 제3국 출생 자녀들을 탈북청소년 지원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긍정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김 교장은 "(북에서 온) 탈북 학생들에게는 지원 혜택이 나름 있는 편인데, 제3국 출생들은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바뀌길 기대한다"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정착 지원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는 제3국 출생 학생들을 탈북자의 범주에 넣고 있다"며 "구체적인 제도도 보완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앞서 제3국 출생을 위한 입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논의된 바 있다. 지성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2월 관련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원욱 전 더불어민주당(현 개혁신당) 의원도 2022년 10월 통일부가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기본 업무를 놓친다는 뜻"이라며 비판했었다. 그러나 이후 국회 차원에서 법안 마련은 없었다.

최근 정부가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날을 제정하는 등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정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국회에서도 관련법 제정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지난 6월 북한이탈주민 출신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제3국 출생들을 북한이탈주민지원법 교육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모처럼 정부와 국회가 제3국 출생들을 위해 함께 의지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제 정부가 본격적으로 입법을 추진할 경우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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