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과 마약 경보에 서핑 성지 '양양' 명성도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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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17. 오전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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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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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발 '원나이트 메카'가 서핑업계 울리고 있다"
지난 8월 9일 금요일 밤 자정이 넘은 시각, 강원도 양양의 인구해변 근처 ‘양리단길’에 위치한 한 클럽.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양양 놀러갔다온 여자를 무조건 손절해야 하는 이유' '요즘 강남보다 핫하다는 양양 헌팅'….

'서핑도시'라고 불리던 강원도 양양이 '원나이트의 메카'라는 오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젊은이들이 양양에 놀러가는 목적이 '헌팅' 등 유흥, 그중에서도 '원나이트'라는 것인데, 실제로 소셜미디어(SNS)에 양양을 검색해 보면 게스트하우스 내부 파티장에서 몇백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떼창'을 하거나, 비키니 등 헐벗은 차림의 남녀가 새벽까지 길거리에서 취해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댓글 창에는 '조용한 바닷가를 집단난교 파티장으로 만들어놨네' '말이 서핑이지 밤에는 MZ들의 짝짓기 눈치보는 장소다' '마약도 분명 같이 할 것이다' '결혼반지 끼고 부부가 같이 가도 화장실 간 사이에 작업을 건다는 그 거리' 등 원나이트를 전제로 한 부정적 인식이 주를 이뤘다.

실제로 이 같은 풍문은 서핑업계를 비롯한 양양 관광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강원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22일부터 지난 8월 12일까지 강원 6개 지역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 중 양양을 찾은 숫자만 유일하게 줄어들었다.

이 기간 강원도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모두 62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8% 증가했고, 강릉시는 25.4%, 속초시는 12.6% 증가했지만, 양양군만 16.9% 감소한 것이다. 직장인 김모(28)씨는 "양양에 서핑하러 가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요즈음은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졌다. 원나이트를 즐기는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놀러가기가 꺼려진다"며 "변질되기 전에 다녀와야 했는데 아쉽다"고 밝혔다.

젊은 남녀가 주요부위만 가린 수영복 차림으로 술과 음악을 즐기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서핑 도시가 '한국의 이비사'로 변질

본래 양양은 '서핑의 성지'로 젊은 세대들에게 각광받았다. 이곳의 죽도해변 등은 수심이 낮고 비교적 파도가 센 편이라 서핑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양양은 과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7%를 차지하던 초고령 마을이었지만, 서퍼들 사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서핑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가 형성될 만큼 서핑 공동체 마을로 자리 잡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하늘길이 막히자 해외 대신 이곳을 찾아 서핑을 즐기는 인구가 많아졌었다. 2022년 양양을 찾은 서퍼는 6만7000여명이었고, 2023년 여름만 해도 주말마다 1000여명이 넘는 서퍼가 방문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특색인 '서핑'을 살려 수도권과 차별화한 양양을 지방인구소멸의 해법이자 성공사례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월 9일 기자가 직접 찾은 양양 인구해변의 '양리단길'은 서핑숍보다 유흥업소가 더 많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서퍼 김모(20대)씨는 화려한 차림을 하고 지나가는 여성 무리를 가리키며 "생얼이면 서핑족, 화장하면 원나이트족이다"라며 "옷차림을 보면 그 목적이 확연히 구분된다"고 말했다. 금요일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양리단길 일대를 관찰한 결과, 실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헌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더 많이 옷가지를 벗은' 젊은이들이 '더 많이' 거리로 나왔고, 헌팅이 잘된다는 인기 술집마다 몇십 명씩 길게 줄을 늘어서 있기도 했다.

이날 양리단길에서 만난 이모(27)씨는 "대부분 1차는 같이 온 친구들끼리 회 등 저녁을 먹고, 2차로 클럽이나 헌팅포차에서 헌팅을 한다. 3차는 바닷가다. 헌팅한 이성과 함께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신다"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을 위한 FREE 샴페인 1BOTTLE' 이벤트가 진행되는 등 여느 유흥가와 비슷하게 여성들을 더 많이 유입하기 위한 경쟁이 업소 사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분별한 스킨십은 양리단길에서 예삿일이었다. 풀장을 콘셉트로 한 S 클럽을 방문하자 한쪽 벽면에서 수영복 차림의 남녀가 스킨십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만취한 듯한 여성은 스킨십을 하다가 바닥에 주저앉았고, 외국인 남성이 그를 일으켜 한참 동안 스킨십을 계속했다. 주변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익숙한 듯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A 서핑게스트하우스 직원은 "클럽 등이 생기면서 양양이 문란해진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며 "작년에 썸 타면서 게스트하우스까지 들어와서 방 있냐고 하는 친구들이 엄청 많았다. 해변에서 콘돔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하나밖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양리단길에 위치한 한 편의점 알바생 김모씨는 "밤시간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콘돔을 많이 사간다"라고 말했다.



만취해 거리서 스킨십… 마약 위험도

더 큰 문제는 마약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었다. 앞서의 서핑게스트하우스 직원은 "지난주 주말에 '마약 판매합니다'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 명함이 길거리에 뿌려졌다"며 "단속을 하든 조치를 하라고 당부하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속초경찰서는 '마약류 이용 성범죄 예방법: 거절하기, 의심하기, 남은 음료 버리기, 새로 채우기'라는 내용의 홍보 현수막을 인구해변에 내걸기도 했다. 이날 양리단길 골목에서는 속칭 '삐끼(호객꾼)'들이 불빛이 나오는 술병을 들고 여성 무리에 접근해 "입 안 댄 거다" "한번 마셔보라"며 시음을 권하기도 했다. 해당 술병은 즉석에서 편리하게 시음이 가능하도록 이미 뚜껑이 열려 있는 상태였고, 입구에 작은 깔대기가 꽂혀 있었는데 내용물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SNS에서의 모습처럼 양양에는 이미 '헌팅'과 '마약'이 존재했다. 그러나 양양 의 자영업자들은 이런 현실이 다른 피서지에 비해 지나치다고 할 수 없으며,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양리단길에서 갑작스레 '방'을 잡아 원나이트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모텔, 여인숙 등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명이 방을 공유하는 게스트하우스나 펜션, 혹은 사전 예약이 필요한 고가의 호텔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양리단길에서 당일 숙박이 가능한 숙소를 검색해보니 1박에 3만원대의 게스트하우스 혹은 최소 2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호텔방이 선택지였다. 그 외 중간 가격대의 대실이나 숙박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B 서핑숍 직원은 "숙소는 강릉 시내권 등 외지에 잡는다. 이 동네에서 술먹고 놀다가 택시, 대리운전을 통해 이동하더라"라고 전했다. 이모(28)씨는 "최근 친구들끼리 양양에 놀러가서 서핑하고 헌팅 없이 건전하게 놀다 왔다. 원나이트를 하고 싶어도 주변에 숙소가 없을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부산 광안리나 제주도라고 해서 이 정도 사고가 없겠나"라고 반문했다. 7년째 양리단길에서 서핑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C씨는 "솔직히 서울 홍대나 이태원에 비하면 훨씬 작은데도 이상하게 타깃이 돼서 모 예능 프로나 유튜브에 많이 나온다"며 "게스트하우스가 대부분인데 남녀 혼숙도 안 되는 곳이고 철저하게 CCTV로 관리한다.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바로 (방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양리단길에 위치한 한 클럽의 홍보 포스터.


일부 유튜버들의 현실 과장

그렇다면 양양의 얼룩진 모습은 진짜 과장된 걸까. 앞서의 B 직원은 "술집, 클럽 등에서 마케팅을 그렇게 하니까… 헌팅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헌팅이 잘된다' 식으로 보여주니 젊은이들이 모여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C 서핑게스트하우스 사장은 "유튜버들이 시선 끌기, 이목 끌기용으로 양양에서 원나이트 하는 법, 여자 꼬시는 법과 같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것이 유행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에펨코리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주작이 의심되는 어색한 '양양 원나이트 썰'이 공유되며 '바이럴이다' '주변에 모텔도 없고 당일에 방 잡기 힘들다는데'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모 예능 프로에서는 '양양모텔'을 배경으로 한 패러디 시리즈를 방영하기도 했다. 양리단길에서는 1인 라이브 방송을 하는 유튜버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고, '여친 있는 세 남자의 양양 브이로그' '진짜 어른을 위한 양양의 모든 것' 등 양양을 콘텐츠 삼은 유튜브 영상, 혐오 콘텐츠들도 굉장히 많이 검색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SNS에서의 '양양 하면 원나이트' 이미지는 서핑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 앞서의 사장 C씨는 "젊은 서핑 손님들이 고성, 속초, 강릉으로 빠지고 있다. 올해가 (버티는 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버틸 수가 없다"고 토로하며 기자에게 가게의 매출 장부를 보여줬다. 장부에는 지난 7월 중순 기준 2022년도, 2023년도의 일일 서핑 신청 인원이 각각 '60명'가량이었던 반면 올해 7월 중순에는 그 수가 급락해 '10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C씨는 "방송에서 떠들고 나서부터 갑자기 이렇게 돼버렸다. 올해 저희 숍은 한 달에 1000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숍들이 작년 손님의 한 5분의1~7분의1인 상황이다. 광고비만 한 달에 300만~400만원씩 쓰는데도 서핑 손님 자체가 없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8월 10일 토요일 오후 인구해변에 사용하지 않는 서핑보드가 쌓여 있다. photo 권아현


이젠 고성·속초로… "서퍼 10분의1로 줄어"

앞서의 B서핑숍 직원은 "작년에 비해 손님이 10분의1도 안 된다. 원래는 손님 연령대가 20~30대였는데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젊은층은 줄었고, 자녀를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손님이 오히려 늘었다. 의심받을 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양리단길에서 과거 부동산을 운영했던 D씨는 "서핑하러 오는 사람보다 저녁에 술 마시러 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식당이나 서핑숍 하는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작년의 반도 안 된다'고 하더라"라며 "(서핑하는 손님들이 이제는) 고성 쪽으로 많이 들어간다고 들었다"고 했다.

양리단길 Y서핑게스트하우스 사장은 '서핑 손님이 많이 줄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년 이맘때에 비해 반 이상 줄었다"며 "예전에는 서핑 강습부터 숙박까지 패키지 상품으로 묶었었는데, 이제는 수요가 없다 보니 방이 남아있으면 당일 저녁마다 숙박만 가능하게끔 판매할 정도"라고 답했다. '클럽 등 다른 즐길 거리가 많아져서 그러냐'며 이유를 묻자 그는 "아니다. 평이 안 좋아져서 양양에 안 오는 것 같다. 최근 이 근처에 호텔이 많이 생겨 나눠 먹기가 되다 보니 손님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고 했다.

양리단길 E 부동산 사장은 "양리단길에 클럽 등이 들어서면서 구세력과 신세력 사이 융화가 잘 안됐다. 처음 양리단길을 만들었던 서핑족들이 술집·클럽 사장들에게 '우리 손님 다 뺏어간다'며 견제했다. 가게 앞 바다도 몇몇 술집 상인들이 임대를 얻어서 출입 못하게 판자로 막고 입장료를 받기도 했다. 서핑숍들은 지금은 조금 쉬어가는 타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동안 양리단길에서 일어났던 갈등을 설명했다. 그는 "이곳 월세가 평당 10만원 정도니 세를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벽까지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붐볐었는데,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되자 에너지가 많이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B서핑숍 직원 또한 "코로나 때 즐길 거리가 많이 없다 보니 서핑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한두 번씩 경험하고 나니 진짜 취미로 즐기시는 분만 남은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양리단길에는 소음을 비롯한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overtourism) 문제도 존재했다. 양리단길에서 1분 거리의 주택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기자가 직접 묵어본 결과, 바로 옆 야외 술집에서 버스킹 공연이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소음측정기로 해당 공연 소리를 측정해보니 창문을 닫은 상태인데도 전화벨, 교통이 복잡한 도로의 소음과 정도가 비슷하다는 '70데시벨'을 웃돌았다. 규정상 밤에는 60데시벨이 넘어서는 안 된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5데시벨 이상에 장기간 노출되면 혈압상승으로 허혈성 심장질환이 우려된다.

양양군청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부정적 이미지 개선 계획에 대해 "인구해변 하나만 너무 미디어 노출이 많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클럽 등 일부 업체들이 (양양의) 이미지를 망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양양에는 그런 곳만 있지 않다. 장애인 해변 캠프도 있고, 계곡도 있고, 설악산도, 해담마을도 있다. 이미지 개선을 하려면 다른 긍정적 이미지를 강조, 확대하는 홍보 활동을 해서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로 젊은 층들 사이에 부정적 인식이 있으므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SNS 홍보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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