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 최대 루저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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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영접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에 자극받은 중국이 조만간 북·중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정례브리핑은 평소보다 이목을 끌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전시 상호 지원을 포함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질문이 나오자 "관련 보도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면서도 "이는 북·러 간 협력에 관한 것으로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일관된 입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각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질문이 나왔지만 린 대변인의 답변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과 러시아는 반미·반서방이라는 관점에서 중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런 두 나라가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관계를 대폭 끌어올리는 조약을 체결한 데 대해 중국 외교부가 "두 나라 간 문제"라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중국 입장에서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다'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부분에도 복선이 숨어 있다. 북·러 간 군사적 밀착이 한국과 미국, 일본의 강경 대응을 불러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왼쪽 둘째)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오른쪽 둘째)이 지난 6월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한·중 외교안보대화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쑨웨이둥이 달려온 이유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당초 푸틴 대통령의 평양 도착 예정일이었던 지난 6월 18일 서울을 방문해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한·중 외교·국방 2 2 대화 시간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한·중 외교·안보 대화는 2015년 국장급 대화를 한 이후 중단됐는데, 9년 만에 차관급으로 격상해 다시 열렸다. 당장 긴급한 현안이 있다기보다 북·러 간 밀착이 불러올 지정학적 변화에 대응하면서 중국의 불쾌함을 드러내기 위한 외교적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중국 외교 당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의식해 조심스럽지만, 웨이신과 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북·러 밀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판광펑(范冠峰) 산둥자우퉁대 법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위챗에 게재된 글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한반도 핵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할 것"이라면서 "북·러 군사동맹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가 이번 조약을 통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고 핵 고도화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함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 중국으로서는 잃을 것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북·중 군사동맹이 어느 순간 미국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북·러 정상회담과 상호 안보조약 체결은 북핵을 마주한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큰 부담이지만 최대 패자는 중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화하고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1990년대 6자회담 때부터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고리로 북한에 대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핵개발과 도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양국이 여러 차례 충돌하기도 했지만, 중국은 북한 대외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북·중 교역을 무기로 북한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런 영향력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에 맞서는 외교적 카드의 역할도 했다. 반면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 1990년대 '조·소 우호 및 상호방위 조약'을 폐기하면서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 의무에서 벗어났고, 경제 협력을 위해 우리나라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지정학적 구도를 바꿔놓았다. 북한이 궁지에 몰린 러시아에 미사일과 포탄을 대량으로 제공한 데 이어 과거 폐기했던 상호안보조약까지 체결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이번 북·러 조약 체결로 과거 냉전시대처럼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는 외교적 카드를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전문가인 쑨윈(孫韻)은 지난 6월 25일 북·러 정상회담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북·러 동맹에 잠재된 함정과 골칫거리는 중국이 줄곧 독점해왔고, 할 수 있다면 계속 유지하고 싶은 대북 영향력 독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당장 중국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으로서는 불편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러셀 아시아 소사이어티 부회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러 간 밀착은 대북 영향력 분야에서 중국의 새로운 경쟁 상대가 생겼다는 의미"라면서 "지난 수십 년간 절대적으로 중국에 의존해온 김정은으로서는 베이징에 대항할 소중한 카드를 갖게 됐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은 횡재했고, 시진핑은 두통거리가 생겼다"면서 "현재 상황으로 보면 북한이 최고의 승자이고, 중국이 최대의 패자(loser)"라고 했다.

북한이 이번 북·러 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얻고 싶은 최대의 선물은 핵무기 고도화에 필요한 기술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첩보위성 발사 등에 필요한 기술을 얻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이런 기술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북핵 위협에 놓인 우리나라와 일본 등이 자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핵전력 배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 한·일 자체 핵무장 등 우려

국내에서는 북·러 조약이 발표되자마자 핵무장론이 고조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 6월 23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전략 보고서에서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는 추세가 강화될 것"이라면서 "한·미 확장 억제의 지속적 강화, 전술핵 재배치 및 나토식 핵 공유, 자체 핵무장 또는 잠재적 핵 능력 구비 등을 포함한 다양한 대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토와 전략적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바탕으로 미사일 고도화를 계속하고, 한·미·일 3국이 이에 대한 대응 강도를 높이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건 중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9년이나 중단된 한·중 외교·안보 전략 대화를 차관급으로 격상해 다급하게 다시 추진하고, 우리 측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두 나라를 포함한 모든 나라의 공통된 이익"이라고 강조하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황이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미리 관리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북·중 양국은 우호적인 이웃국가로 고위층 간 교류와 협력은 양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내심 양국 간 군사협력이 한반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6월 24일 미 외교협회 강연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우려하고 있다"면서 "최근 미·중 양국 교류 과정에서 초조함을 드러냈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와 북한 간에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본다"면서 "중국은 북한이 이번 북·러 조약에 고취돼 동북아시아에 위기를 부를 수 있는 도발적 조처를 하지 않을까 우려할 것"이라고 했다.

미·중 관계 전문가인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도 뉴욕타임스에 "북·러 조약에 한·미·일 삼각동맹이 더해지면 동북아 지역의 대결, 경쟁, 충돌 위험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 "한반도 평화는 중국의 최우선 과제로 이 지역의 군사력 확대 추세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시진핑, 북·중 정상회담 추진할 것"

북·러 조약이 중국의 외교적 입지를 좁힐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자국이 북·중·러 3각 관계로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 러시아와 달리 경제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고 국제시장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중국은 두 나라와 처한 상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값싼 러시아산 석유 확보 등 경제적 실리를 챙겼지만, 외교적으로는 국제적 고립이 심화하는 피해를 당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과 척을 졌고, 우리나라나 일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유엔 등 국제기구 외교에서도 외톨이 신세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러 조약이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중국의 우려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이번 조약을 기반으로 동북아시아를 뒤흔드는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면 가뜩이나 경제문제로 골치 아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시 주석이 다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생각을 할 것으로 본다"면서 "푸틴이 이웃국가에 영향력을 과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조만간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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