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은 배신, 한동훈은 쓴소리" 韓 향한 TK 민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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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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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두고봐야… 尹과 계속 각 세우면 공멸" 목소리도 작지 않아
지난 3월 21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구 중구 동성로를 찾아 시민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photo 뉴시스


"현재로선 한동훈 후보의 인기가 더 많다. 원희룡 후보와 비교할 때 지지율은 6 대 4 정도다."

지난 7월 2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상인 장모씨에게 '서문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느냐'고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장씨 부부는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원희룡 후보 캠프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그런 장씨의 입에서도 지금의 당대표 선거 판세는 한동훈이 앞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장씨가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원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원 후보 캠프 후원회장에게서 들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 서문시장은 TK(대구·경북)의 상징적 장소다. 선거철마다 보수 정치인이 찾을 만큼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서문시장을 3차례 방문했다. 2022년 4월 당선인 신분으로 서문시장을 다시 찾은 윤 대통령은 "권력이 서문시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 때마다 서문시장을 방문해 대구 시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확인했다.

지난 7월 2일 기자가 만난 서문시장 상인들은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답게 국민의힘 전당대회 추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간이의자에 앉아 연신 손부채질을 하는 상인들에게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얘기를 꺼내면 다들 '정치는 잘 모른다'며 일단 손사래부터 쳤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지 10여분이 지나면 '사실은 국민의힘 당원'이라는 고백이 튀어나왔다. 상인들은 전당대회 판세를 나름대로 분석하며 누가 당대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도 거리낌 없이 밝혔다.



"서문시장 상인 60%는 한동훈 좋아해"

서문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한 박모(66)씨는 "여기서 60% 이상은 한동훈 좋아한다. 한동훈은 자기 주관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며 "국민의힘이 살려면 구태 정치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물건을 고르던 한 70대 주민은 "이재명 싫어서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더니 너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많이 한다"며 "정치 잘할 줄 알았는데 자꾸 책 잡힐 일을 만드니까 안타깝다"고 거들었다.

당원임을 밝힌 한 50대 상인은 "국민들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매일 싸우기만 하는 정치권에 지쳤다"며 "한 후보는 말하는 걸 보면 똑똑한데 아직 정치에 때묻지 않은 '청순한' 인물이라 더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를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 불렀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당대표가 되는 것이 맞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4파전으로 치러지지만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친윤(나경원·원희룡·윤상현) 대 비윤(한동훈)' 구도가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나·원·윤 후보는 한 후보를 향한 '배신자' 공세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 원 후보는 한 후보를 향해 "당이 대통령을 버렸을 때 어떤 결과가 되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며 "특검과 탄핵은 공멸로 가는 국민배신의 길"이라고 말했다. 나 후보도 "한동훈 후보가 배신 프레임의 늪에 이미 빠졌다"고 했으며, 윤 후보는 "한 후보가 왜 윤석열 대통령과 절연하게 됐는지 알 것 같다. 자기애가 너무 강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한동훈을 겨냥하는 '배신'이란 단어는 사실 보수 지지층에게는 민감한 키워드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 언급한 이후 배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 보수 정치인을 단죄하는 낙인이 됐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이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단죄한 이유는 자신이 반대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었다. 이후 당정 갈등이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배신의 정치는 보수 지지층의 '탄핵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표현으로 강화됐다.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에 출마한 여타 후보들이 한동훈 후보를 향해 배신 프레임을 들이대는 것은 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난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몇 차례 의견충돌을 빚은 데 이어 '채상병 특검법'을 여당이 직접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 후보는 지난 6월 23일 당권에 도전하며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현재 방식이 아닌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을 제안한 바 있다. 여당의 독자적인 특검법안으로 정국을 정면 돌파하자는 취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대통령 지지율 20%대인데 무슨 배신?"

하지만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에서는 현재 이 같은 배신자 공세가 잘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대구 수성구에서 만난 한 40대 당원은 "오랜 기간 국회의원 했던 유승민은 박 전 대통령을 잘 알면서 계획적으로 배신의 정치를 했다"며 "유승민은 여기 발도 못 붙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 후보에 대해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며 "한동훈이 윤 대통령에 대해 어떤 배신을 했나"라고 말했다. 한 50대 당원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았다면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데 엇나간다고 한동훈을 욕했을 것"이라며 "대통령 지지율이 20%대인데 무슨 배신이란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당원이 언급한 대통령 지지율은 한국갤럽이 지난 6월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말한다.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은 25%로 나타났는데 일주일 전보다 1%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한국갤럽은 "윤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4월 총선 후 석 달째 20%대 초중반을 답보 중"이라며 "윤 대통령의 취임 3년 차 1분기(2024년 4〜6월) 평균 직무 긍정률은 24%로, 전임 대통령들보다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TK에서조차 배신자 프레임이 먹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것뿐만 아니라 '배신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전 대표가 배신한 대상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지역 맹주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지역 기반이 있었으며 보수의 상징적 인물로서 팬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겐 지역 기반과 보수 상징성이 없다. 그래서 배신자 프레임에 호응하는 보수 지지자들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을 당원이자 '위드후니(한동훈 팬카페)' 회원이라고 밝힌 김모(65)씨는 "이 정권을 지키려면 과연 누가 누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라며 "원희룡은 지난 총선 때 인천계양을에서도 이재명에게 밀렸는데 대선에서 어떻게 이긴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김씨는 "대구가 바라는 것은 보수 정권 재창출 딱 하나"라며 "한동훈이 말하는 것이 딱 맞다"고 했다. 지난 7월 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한 후보는 "진짜 배신은 정권을 잃는 것이고 지는 것"이라며 "정권을 잃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고, 민심에 따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심은 '정권 재창출'에 있다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조모(35)씨도 "여기선 윤석열 대통령 다음 대선 후보로 누가 적합한지를 계속 염두에 둔다"며 "이재명이 너무 싫어서 절대 대통령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적절한 대항마는 한동훈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원이라는 한 60대 택시기사는 "한 후보를 윤 대통령이 왕따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윤 대통령이 한동훈을 불러냈으면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이런 목소리에서 보이듯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어대한(어차피 당대표는 한동훈)' 기류를 뒷받침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6월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에게 '국민의힘 대표 경선 후보 4명 중 누가 대표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는가'를 물은 결과, 한 후보가 2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어서 나경원 후보 19%, 원희룡 후보 13%, 윤상현 후보 3% 순이었다. 조사 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자(308명)로 좁히면 과반 이상(55%)이 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무당층(518명)을 상대로 선호도를 분석한 결과, 한 후보가 38%로 선두였고 원 후보·나 후보가 각각 15%, 윤 후보 4%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지난 7월 3일 CBS 라디오에서 "후보 4명의 지지율을 합치면 72%인데 100%로 다시 계산해보면 한동훈 위원장이 50% 정도를 지금 얻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 80%, 일반 국민 여론조사 20%로 치러진다. 이 중 일반 국민 여론조사는 역선택 방지를 위해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을 기준으로 한다. 즉 민심 반영 비율 20%에서 한 후보가 52.8%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 25~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별 적합도는 한 후보가 37.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나 후보는 13.5%, 원 후보는 9.4%, 윤 후보는 8.5%였다.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는 59.3%가 한 후보가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답했다. 이후 원 후보 15.5%, 나 후보 12.6%, 윤 후보 5.9% 순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신율 교수는 "당심을 보려면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이뤄진 여론조사를 보는 게 맞다"며 "ARS는 정치적 고관여층이 주로 대답하기 때문에 답변자가 당원일 확률이 전화면접 조사보다 높다"고 말했다. 앞서의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100% 전화면접으로 이뤄졌지만, 에이스리서치의 조사는 ARS 100%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응답한 국민의힘 지지자 중 당원의 비율이 높을 수 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언제든 尹과 차별화 카드 꺼내들 인물"

당원 투표가 80% 반영되는 상황에서 투표권이 있는 책임당원의 40%는 영남권에 몰려 있다. 약 80만명으로 알려진 책임당원 중 약 32만명이 영남권에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선 정확한 당심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권 주자들의 눈은 텃밭인 TK로 향할 수밖에 없다. 4명의 후보가 당권 도전 이후 발 빠르게 대구를 방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한 후보는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 뒤 첫 지방 일정으로 대구를 찾았다.

한동훈을 추격하는 다른 후보 캠프에서는 당심과 민심이 다를 것이란 기대도 품고 있다. 지난 7월 3일 SBS 라디오에서 원 후보는 "어대한은 원래 없는 것이고 언론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며 "어대한이라는 인기의 표면적인 분위기나 지금 여론조사 결과에 참고는 되겠지만 실제 투표 결과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원 후보 러닝메이트로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인요한 후보도 지난 7월 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여론조사가 뒤집힐 가능성이 90%는 된 것 같다"며 "우리 힘이 경상도에 있고 그분들이 올바른 선택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흥미롭게도 앞선 여론조사들을 지역별로 살펴봤을 때 한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곳은 TK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TK의 한 후보 지지율은 33%였으며 원 후보는 19%, 나 후보는 17%를 차지했다. 에이스리서치의 조사 결과에서 한 후보의 TK 지지율은 45%로 전체 지역에서 차지한 지지율(37.9%)보다 높았다. TK에서 나 후보는 15.9%, 원 후보는 11.6%였다. 주간조선이 지난 7월 1일 만난 복수의 지역 정가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민심이 곧 당심'이라며 '어대한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한 지역 정가 관계자는 "총선 전의 당대표 선거에선 공천권을 누가 행사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겠지만 지금은 한쪽에 줄 설 이유가 크지 않다"며 "당원의 70%는 소신대로 찍을 것"이라고 했다.

당심과 민심은 다를까? 같을까?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서 '총선 참패 주범' '정치 미숙아' 등의 표현을 쓰며 한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대구를 방문한 3명의 당대표 후보와는 만났지만 한 후보의 만남 요청은 거부했다. 이철우 경북지사와의 만남도 불발되면서 한 후보의 TK 공략에 차질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대구 주민들은 한 후보가 고립된 상황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키워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 같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한 30대 대구 주민은 "홍 시장이 논란을 만들면서 한 후보의 몸값을 높이고 오히려 이슈화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당원들은 여전히 '한동훈 대표'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채상병 특검법을 여당이 추진하자는 제안에서 보듯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카드를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1인자와의 차별화가 대권을 노리는 2인자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아는 한 후보가 앞으로 야권의 대통령 탄핵 공세가 본격화될 경우 어떤 선택을 할지 불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당원으로 오래 활동해온 한 경북 거주 60대 주민은 "한동훈이 배신을 할지 안 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며 "한동훈이 대표를 맡으면 적어도 당이 거대 야당에 맞서 단일대오를 형성할 가능성은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야심에 찬 한 후보가 대통령과 끝까지 각을 세우면 공멸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상황이 지난 2014년 대구시장 선거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당시 서상기·조원진 의원 등 친박계가 많이 출마했기 때문에 권영진 후보는 열외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친박계를 제치고 권영진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 유권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과 당을 살리는 것을 다른 차원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현상이 지금 있다. 당심과 민심이 다르다는 것은 현재 실체가 없다고 본다. 당원들은 보수 정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권력을 민주당에 빼앗기면 안 된다는 맥락 속에 한동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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