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유럽도 한국도 '손동작' 논란...무슨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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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전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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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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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르노코리아자동차의 신차 홍보 동영상에서 한 여성 직원이 '집게 손' 모양을 해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르노코리아는 발 빠르게 사과하며 인사위를 열겠다고 밝혔으며 영상에 등장한 여성 직원은 직무수행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논란은 해당 직원을 향한 사이버 괴롭힘 등으로 번졌고, 전날에는 이 직원을 살해하겠다는 예고 글이 올라오는 등 여파가 여전하다.

'집게 손' 논란의 시초는 2021년 모 편의점 기업이 내건 이벤트 포스터였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 이벤트 포스터에 그려진 손의 모양이 극단적 페미니즘 성향의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며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손동작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모 온라인 패션 플랫폼과 서울지방경찰청의 홍보물에도 비슷한 모양의 손 그림이 그려져 몰매를 맞았다. 두 기업과 경찰청 모두 혐오 표현을 내포한 이미지를 사용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한동안 뜨겁게 이어졌다.

홍익대학교에 설치됐다가 파손된 일베 손동작 조형물 ⓒYTN

'집게 손' 이전에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일베) 손동작이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중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약지를 집어넣어 일베의 'ㅇ'과 'ㅂ' 글자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일베 회원들은 이 특이한 손짓으로 직업, 학력 인증과 함께 '인증샷'을 남겼다. 배우, 아이돌 등이 이 손동작을 한 채 사진을 찍었다가 일베 의혹을 받기도 했고, 방송가나 대기업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손 모양을 방송 화면이나 포스터 등에 사용했다가 논란이 됐다. 홍익대학교 앞에는 일베 손동작 조형물이 설치됐다가 하룻밤사이 파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 불거진 '집게 손' 논란의 손동작은 결을 달리 한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물건을 집는 듯한 이 손동작은 범지구적으로 '적은 양' '조금'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메갈들이 '남성의 작은 성기'를 표현할 때 이 손동작을 쓴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는 곧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이 손동작이 혐오표현으로 사용됐다는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느덧 의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집게 손'이 하나의 혐오표현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에 따라 기업이나 단체, 관련 업체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늘어나면서 업계는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과 협업하는 한 홍보 외주업체 관계자는 YTN에 "직원들 사이에서 디자인할 때 아예 손은 넣지 말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며 "아는 사람만 아는 표현이라면 피드백이 대여섯 번씩 오가도 잡아내기 힘들지 않나. 하지만 이런 논란이 생겼을 때 외주업체의 피해가 가장 막대하다. 애초에 의심의 싹을 잘라내는 게 낫지 싶다"라고 전했다.이러한 손동작 논란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엄지와 검지를 맞대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머지 손가락 3개를 펴 보이는 손동작이 백인우월주의의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극우 사이트 8chan, 그 원조 격인 4chan 등에서 백인우월주의와 연관돼 사용되면서 혐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반(反)명예훼손 연맹'(ADL)은 이 손동작이 대부분은 '괜찮다'는 의미로 쓰이는 점을 언급하며 "이 손동작을 쓰는 사람을 보면 섣불리 결론짓기보다 의도를 추측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지난 2일(현지 시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 16강전에서 튀르키예 중앙 수비수 메리흐 데미랄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 뒤 선보인 손동작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데미랄은 엄지와 검지·중지를 모으고 나머지 두 손가락은 곧게 펴 늑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했고, 이는 튀르키예 우익 극단주의 단체 '회색 늑대'의 인사법이라고 여겨지는 '늑대 경례'와 비슷하다는 의혹의 불이 지펴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유럽축구연맹(UEFA)은 데미랄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고, 독일 정치권에서도 데미랄의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같은 움직임에 튀르키예 외무부는 독일 대사를 소환해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메리흐 데미랄 선수 ⓒAP/연합뉴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동작은 의사전달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논란이 된 손동작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그 상징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며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다. 난 백인이야, 난 우월해, 난 색깔이 있어. 이러한 것들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온라인상에서의 인증샷 릴레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은근슬쩍 내비치는 손동작 등에 깔린 심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존재감의 문제다. 손동작 하나로 세상의 비난을 받더라도 자신의 주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이슈가 되면서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는 비난과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어 하는 주장적인 심리를 갖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튀르키예의 데미렐 선수는 자신의 손동작이 국가적 자부심을 순수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경기 이후 기자회견에서 "세리머니는 튀르키예인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며 "이 세리머니를 보여줄 기회가 더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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