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윤석열 친위쿠데타 보며 두려움 느낀 이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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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극우 망상가들은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지난 15일, 미국 뉴욕에서는 뉴욕청년공화당원클럽(New York Young Republican Club, NYYRC)의 연례 만찬이 열렸다. 매년 12월에 개최되는 이 행사는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 그리고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이 대거 모이는 자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NYYRC는 설립된 지 100년이 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당 청년 조직이다. 시대에 따라 공화당 이념의 변화에 맞춰 그 성격도 함께 변해왔다. 청년들의 모임인 만큼, 당의 미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는 단체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행사가 주목받은 이유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그의 열성 지지자들이 대거 연사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1기의 백악관 선임 고문이었던 스티브 배넌, 트럼프 선거 켐페인 매니저였던 코리 루언다우스키, 극우 성향 남성 단체 프라우드보이즈(Proud Boys) 설립자 개빈 매키니스 등이 행사에 참석했다.

영국 개혁당(Reform U.K) 대표 나이절 패라지와 독일을 위한 대안(AfD) 베를린 청년 조직 대표 마틴 쾰러 등 유럽 극우 정치의 주요 인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외국 인사들의 참석은 NYYRC가 국제적 극우 네트워크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극우 망상가들의 두 가지 에피소드

 트럼프 행정부1기의 백악관 선임 고문이었던 스티브 배넌
ⓒ 연합/AP

NYYRC의 올해 갈라 행사에서 벌어진 두 가지 에피소드는 앞으로 들어설 미국 극우 정권의 모습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첫 번째는 트럼피즘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스티브 배넌의 발언에서 나타났다. 그의 발언은 극단주의 권력에 편승한 동조자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정신 구조와 그에 수반된 레토릭의 실례를 명확히 보여준다.

"트럼프는 친절한 마음과 위대한 영혼을 가진 지도자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보복을 원한다."

그의 이 발언에 참석자들은 열광적인 환호로 화답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 외의 미국 기존 체제와 그 구성원들을 단죄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암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부류의 존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를 도덕적 권위와 비전을 가진 인물로 이상화한다. 동시에, 신격화된 트럼프와 '인간계'에 속한 자신들을 구분 짓고, 현실 세계에서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구체적 역할과 행동 지침을 정당화한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개빈 매키니스의 입에서 나왔다. 취재차 그에게 다가온 <디 애틀랜틱> 기자 알리 브릴랜드를 향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게 수치심을 느껴야 할 거라면서 아주 진지하고 느린 어조로 '당신의 손목을 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손목' 발언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대로, 모욕적 언사일 뿐 아니라 섬뜩한 폭력이기도 하다. 극우 망상가들이 기존 사회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현장은 집권을 앞둔 정치 세력의 연말 갈라 행사였다. 축제가 되어야 할 자리에서 정적에게도 부적절한 말을 언론인에게 거리낌 없이 내뱉은 것이다.

 극우 성향 남성 단체 프라우드보이즈(Proud Boys)의 미국 포틀랜드 우파 시위
ⓒ 연합/AP

매키니스는 이 소동이 있은 지 얼마 후, 이번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수첩을 빼앗는 행위까지 저질렀다. 기자와 말다툼 끝에 수첩을 낚아채 다른 참석자에게 몰래 건네준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과거라면 이런 행위들이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졌겠지만, 이제는 연속적으로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덮으며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극우 망상가들이 부르짖는 복수의 정체

이들이 기존 사회를 대하는 병적 망상은 상식을 초월하며 합리적 추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언어적 공격과 정치적 대립을 넘어, 물리적 폭력과 가해를 스스럼없이 정당화한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민주적 공존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사회를 극단적 대립과 분열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위해 타자를 희생시키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구국적 행동이라 믿는다. 그들에게 반대하는 모든 이는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사고에서는 자신들만이 곧 국가이고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망상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사실 그날 행사에서 위협적 발언을 한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많은 참석자들이 '복수'를 주제로 연설했다. 국가의 적들은 모두 체포되고 구금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국가는 곧 자신들의 생각 안에 있는 그것이었다.

스티브 배넌은 "언론과 민주당은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권력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워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조사, 재판, 수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의원 브랜든 길은 "이 나라에는 다니엘 페니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하다. 조던 닐리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다니엘 페니는 정신장애인 노숙자인 조던 닐리를 목 졸라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선고를 받은 인물이다. 이처럼 이들은 자신들의 망상과 그 구체적 행동 방향을 숨기지 않는다. 망상가들은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면서, 세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구상한다.

윤석열 내란에 < AP통신 >이 미국인들에게 던진 질문

그리고 그런 구상은 때로 현실로 이어지며, 성공해, 실현되기도 한다. 그랬을 때의 사회는 어떤 디스토피아가 될지 짐작이 가능하다. 다수의 미국인들이 다시 칼을 갈고 돌아온 트럼프의 귀환을 보면서 느끼는 심리상태가 그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친위쿠데타를 보면서 조롱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과거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냉소적으로 바라봤을 그들이,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보면서 트럼프의 미국을 생각한다. < AP통신 >은 지난 9일 보도를 통해 "만약 한국이 공화당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트럼프가 있는 미국처럼 극도로 분열된 사회였다면, 대중이나 야당의 결정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군이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회의원들 역시 만장일치로 쿠데타를 막기 위해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2월 9일자 'South Korea’s democracy held after a 6-hour power play. What does it say for democracies elsewhere?(한국의 민주주의는 6시간의 권력 놀음 끝에 유지되었다.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화면
ⓒ AP통신 화면캡처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은 < AP통신 >도 언급을 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취약성과 동시에 회복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왜 자신들에게는 그런 회복력이 없는지 하는 질문을 내포한다.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강점"이 혹여 미국에 없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여전히 내란 세력과 싸우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이 지점에서 또 다시 역질문을 해봐야 한다. 만약 우리에게 시민의 역동성과 민주주의 회복력이 없었다면? <AP통신> 기자의 말처럼 만약 "윤석열보다 더 철저히 준비했을" 또 다른 권위주의자가 나타난다면? 특히, 만약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바라는 대로 윤석열을 끌어내지 못하고 그가 다시 권력의 한 복판에 돌아온다면?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시민행동의 산물'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은 지금의 한국 국민들을 평가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국민들이 절대 놓지 말아야 할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계가 이곳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과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사회대개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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