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이후 더 생각나는 노무현 대통령, 직접 찾아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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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2.24. 오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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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 호출한 그... 답답해 찾아간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온기를 만났다나는 작년 4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재활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다.(관련 기사 : 재활병원서 보낸 추석, 생일상도 여기서 받았습니다 https://omn.kr/25vdm ).

어제인 12월 23일,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에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리워졌다.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입원 중인 병원에 외출 신청을 했다. 내 건강 문제로 걱정하던 아내는 고심 끝에 운전대를 잡고 봉하마을로 함께 향했다.

 봉하마을 초입, 무인 판매대에서 그를 추모 할 국화 꽃 한송이를 구매했다.
ⓒ 최호림

내가 사는 전북 전주에서 3시간여 만에 경남 김해시에 위치한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인데 그간 왜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까? 푸념 어린 혼잣말을 내뱉으며 아내의 도움을 받아 마을 초입으로 향했다.

무인 판매대에서 국화꽃 한 송이를 구매하고 마을로 들어서자, 바람이 이는 강추위에도 맨손으로 손수 수수깡 바람개비를 만들어 주는 자원봉사자가 서 있다.

"이게요, 노무현 대통령님의 글씨를 카피해서 만든 바람개비예요. 이거 가져가세요."

몰아치는 강풍에 노란 수수깡 바람개비가 쉴 틈 없이 날갯짓을 하며 돌아간다.

앞선 관람객 중 내 큰 아들뻘 되어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이곳에 오기 위해 버스,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다시금 20여 분을 택시를 타고 어렵게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리곤 내게도 묻는다. 어디서 오셨냐 묻기에 전북 전주에서 왔다 말했다.

이들 역시 나만큼 그가 생각났던 것일까?

되레 내게 멀리서도 오셨다던 그들은 꼭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처럼 봉하마을을 조심스레 다니며 구경을 했다. 동선이 비슷해 이동할 때마다 계속 마주치는 그들을 보면서, 이번 사태에서 돋보인 자랑스러운 MZ세대들이 생각났다.

국회 앞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유린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참가했던 그들이.

▲ 윤석열 탄핵 투표 가결, 기뻐하는 시민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탄핵 투표가 가결된 뒤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 이정민

마을 길에 접어들어 노 전 대통령 기념관을 지나자 노무현 대통령의 포토존이 나타났다.

실제 그가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를 형상화한 조형물 웃음이 정겨웠다. 누군가가 추워 보이는 대통령의 목에 노란색 목도리를 둘러놓았다. 그는 미안해하는 내게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실제 그의 음성은 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말로 고마움을 피력하지 않았을까?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조형물
ⓒ 최호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부엉이바위는 아마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였을 거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추억의 공간이자, 퇴임 후 평소에도 자주 올라가 경치를 감상하던 곳이었다는 곳. 하지만 2009년 5월 23일, 이 바위는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

부엉이바위가 보이는 그의 묘소는 미디어를 통해 많은 현실 정치가들이 힘든 시기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그 곳, 실제 그의 묘비는 내 예상과는 달리 무척 작고 소박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유지를 반영한 의도적인 설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비와 부엉이 바위
ⓒ 최호림

묘비 앞 마련되어 있는 추모단에 국화를 헌화하고 향을 피워 그를 추모했다. 왼편으로 부엉이 바위가 올려다보이자 또다시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작고한 가수 신해철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에서 했던 바로 그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것은 누군가요? 조선일보요? 저예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았고, 그 죄의식은 죽을 때까지 우리 발목에 쇠사슬로 묶여 있을 거예요."

노 전 대통령의 묘석을 받히는 철판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각인되어 있다. 꼭 혼란해진 세상에 노 전 대통령이 던지는 말처럼 느껴졌다.

추모를 마치고 자원봉사자의 해설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으로 이동했다. 한때 그를 못마땅해하던 이들이 퇴임 후 그의 거처를 아방궁이라 떠들어대서, 그 규모가 상당하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집에 들어가 보니 실상은 달랐다.

해설사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추후 국민들께 이곳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기준 아래서 이 집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즉, 가까운 미래에 이곳을 방문할 국민들이 불편함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집을 미리 설계했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예견대로 우리는 불편 없이 그의 집을 관람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방문객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배려로 만들어진 따뜻한 방에 모여 있으니 마치 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여기 있구나

모든 코스를 둘러보며 대통령의 집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안내해 준 자원봉사자 해설사 분이 마지막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힌다.

"여러분, 요즘 (세상이) 혼란스러워서 대통령님이 더 생각나시죠? 아마 그래서 이곳에 찾아오셨을 겁니다. 만일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뭐라 하셨을까요?

이곳을 찾아주신 여러분, 그리고 야광봉을 들고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기 위해 추운 날 시위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자랑스러워하시고 격려하며 눈물을 흘리셨을 겁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한번 대통령님 보러 와주세요."

그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5주기에 만에 그를 만나기 위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현재 국가적으로, 또 내 개인 건강 문제 모두가 다 힘들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서 뭔가 위로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방문했던 거지만 사실 가면서도 마음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직도 그곳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두꺼운 옷으로 꽁꽁 중무장을 했음에도 한파에 떨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웃으며 핫팩을 건네주고, 노 전 대통령의 묘비 앞에서 헌화하며 눈시울을 붉힐 때 함께 위로해 주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그들을 지켜보며 이들의 따뜻한 환대는 꼭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이 실현된 실제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노무현 기념관
ⓒ 최호림

결국 그날 밤 늦은 시간에야 병원에 복귀했다. 그리고 지금도 재활병원 병실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잠시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여행 경험은 내 답답했던 병원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비록 짧은 방문이었지만, 봉하마을에서 느낀 '사람 사는 세상'의 가치를 되새기며, 이제는 건강도 하루빨리 회복시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지금 이 뉴스를 읽는 독자 여러분께도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이어, 따뜻한 새해 인사를 건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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