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세력'은 북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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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20. 오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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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독재시절 '망령' 되살려낸 윤 대통령과 한심한 해명[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6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변하다 : 이치에 닿지 아니한 것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주장하거나 변명함.'

대통령실을 출입한 지 겨우 보름 됐지만, 소위 '관계자'들이 강변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어제(19일) 같은 경우도 그랬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 곳곳에 반국가세력이 암약한다'고 말했다. '반국가세력'이라니, 분단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딘지 무서운 단어 아닌가.

대통령의 문제 발언은 을지훈련이 시작된 19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와 군에게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주문하면서 나왔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며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 내부에 암약하고 있다고 했으니, 누가 봐도 '반국가세력'은 윤 정권을 반대하는 야당이나 일부 운동단체들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민주당은 "'반국가세력들'은 해방 후 친일파가, 독재 정권의 하수인들이 즐겨쓰던 표현"이라고 분개했고, 조국혁신당은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이라는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 같다"고 직격했다.

반발이 심하다고 느꼈는지, 대통령실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세력'은 국내 세력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것이다.

80년대 독재세력의 유물을 되살려낸 윤 대통령

 대통령 재임 당시 국무회의 주재하는 전두환씨.1984.10.23
ⓒ 연합뉴스

대통령실 대변인은 "동시다발적으로 하이브리드전이 일어나는 게 최근 전쟁 양상이며, 북한도 이런 회색 전쟁 형태의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결국 "북한의 위협과 관련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반국가세력'은 1980, 90년대 한창 대학가에서 학생운동이 격렬했을 때 그들을 잡아들이던 공안검사가 TV에 나오면 늘 하던 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자주 썼던 말인 듯하다. '국가전복세력'이란 말도 함께.

그 옛날 독재세력의 전유물처럼 쓰이다가 민주화와 함께 이제는 거의 없어진 망령을 윤 대통령이 되살린 것이다.

호기롭게 말해놓고 문제가 되니 이제 와서 북한을 지칭한 말이라고 발뺌을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소가 웃을 얘기다. '국내에 암약하는 북한의 위협'이면 그냥 '간첩'이라고 하면 되지 왜 그리 말을 어렵게 하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간첩이 그리 많으면 말만 할 게 아니라 다 잡아들여야 하지 않나.

윤 대통령은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말해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광복절 연설에 정작 들어가야 할 일본제국주의 세력의 만행이나 그 추종자에 대한 비판은 없고 웬 '반국가세력'인가.

 16일밤 KBS 뉴스라인W에 출연한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
ⓒ KBS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나

대통령이 앞뒤 안 맞는 말을 많이 하니,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해명할 '꺼리'들이 많다.

19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의 친일 발언 논란에 대해 "친일 프레임을 씌워서 계속 이를 정쟁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야당의 그런 모습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윗분들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해명해야 하는 곤혹스런 입장은 이해하겠지만, '국민의 마음'이 아니라 '일본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공무원의 발언을 그냥 두고 보라는 얘긴가.

윤 대통령은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의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에는 뭐든지 무조건 퍼주는 한편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내 세력은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버리는 태도가 계속된다면, 전 국민의 항전 의지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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