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기 이진숙을 38년 뒤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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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6. 오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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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방송장악 하수인 보내 MBC 다시 잡겠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 글은 최승호 전 MBC 사장이 페이스북에 쓴 글로, 본인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과거 MBC 파업 당시 이진숙 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 최승호 페이스북

  
 과거 MBC 파업 당시 최승호 전 MBC 사장
ⓒ 최승호 페이스북

1986년 MBC에 입사할 때만 해도 저와 제 동기 이진숙이 38년 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요.

1987년 6월 항쟁 뒤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독재에 충성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독립적인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저나 이진숙도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파업도 많이 했지요. 그 싸움을 통해 국장책임제, 임명동의제 등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파업을 할 때는 경영진이나 간부들과 대립했지만 끝나면 다시 방송 만들기에 전념할 수 있었고, 감정의 앙금도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쌓은 MBC의 저널리즘이 꽃을 피운 예로 저는 2005년 황우석 보도를 들곤 합니다. 거의 전 국민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MBC는 줄기세포 조작을 밝히고 보도해 냈습니다(물론 당시 최문순 사장이 창피하게 우왕좌왕하기도 했고, 뜻있는 언론인과 과학자들의 도움이 컸지요). 노무현 정부는 황우석 보도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보도를 막으려 하지 않았고,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서 서울대 조사-> 검찰 기소-> 대법원 판결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이 모든 걸 흩트려 놓았습니다. 공영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온갖 술책들을 썼습니다. 김재철이라는 희대의 낙하산을 내려꽂았고, 국정원이 MBC 장악 청사진을 만들어 김재철·이진숙·김장겸 등 협력자들과 함께 착착 실행에 옮겼습니다. MBC인들이 170일 파업이라는 유례 없는 저항을 하자 이들은 아예 '피를 바꾸겠다'는 발상을 하고 시용 기자들을 대거 뽑아 파업을 하는 기자들 자리를 메우고, 파업이 끝난 뒤에도 비제작 부서로 보내버렸습니다.

유능한 피디 기자들이 더 이상 방송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MBC의 경쟁력, 신뢰도는 나날이 추락했습니다. 촛불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고 제가 사장이 되어 복귀했을 때 MBC는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제대로 준비된 드라마가 없어서 과거에 방송한 것들을 리마스터링해 재방송하기도 했습니다. 한시바삐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경쟁력을 회복해야 했습니다. 신뢰를 찾으려면 당연히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청산도 필요했습니다.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잘못이 반복될 것이니까요. 제작 경쟁력을 다시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도 필요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 저희의 슬로건이었습니다. 당연히 돈도 많이 들었죠.

저는 2년여 만에 제가 할 일을 끝내고 다시 <뉴스타파>로 돌아왔습니다. 저를 이어 박성제, 안형준 사장이 MBC를 잘 이끌어 왔고 오늘날 MBC의 신뢰도는 최고입니다.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깊이 새겨질 것
 
 최승호 전 <MBC> 사장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이진숙씨나 국민의힘은 MBC를 매우 편향된 방송으로 낙인찍으려 하지만 MBC의 신뢰도가 김재철 이후 급전직하로 떨어져 김장겸 사장 시절에 최저점을 기록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해 현재 최고인 것은 여러 가지 지수에 의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평가하는 시청자평가지수(KI지수)부터 <시사저널> 전문가 조사, <시사인> 조사, 미디어미래연구소 조사, 그리고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 심지어 KBS에서 조사한 것도 같은 패턴입니다. 어느 한 가지 조사 결과라면 편향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김재철·김장겸·이진숙은 MBC를 망가뜨렸고 그들에 저항한 MBC인들은 MBC를 살려냈습니다. 다만 아직도 MBC는 김재철·이진숙 시대에 뿌리내린 내부 갈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그 점은 극복해 나가야 할 점입니다. 7년 동안 망가진 집을 고치고 세우느라 제가 세심한 신경을 쓰지 못한 점도 있고,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라고 후회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MBC 내부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서로 노력하면 결국 화학적인 결합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의 화신처럼 혹은 더 무식한 방법으로 이진숙이라는 희대의 방송장악 하수인 경력자를 내려보내 MBC를 다시 잡겠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가는 길을 계속 가면 잠깐은 MBC의 비판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국민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진숙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통위원장이 돼서 MBC 사장을 바꾸고 자신을 비판하는 후배들을 잠깐이나마 탄압하며 권력을 즐길지도 모르지만 결국 언론 자유에 대한 최악의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가 한때 자랑했던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얼마나 종군했는지 참 그 타이틀도 부끄럽겠습니다만)라는 허명이 오히려 배신의 향내를 더욱 짙게 해서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깊이 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최승호 기자는 전 MBC 사장이자 현 뉴스타파 PD입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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