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만에 처음으로 사 먹은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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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반찬 잘 골라 사 먹는 것도 능력"이라더니 맛있네요【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주문한 김치 ...
ⓒ 정현순

 
"택배 왔네. 뭐가 이렇게 무거워?"
"김치 주문했어. 빨리 왔네."
"김치를 주문했어?"
"응... 김치 주문했어. 나도 이젠 가끔 김치를 사 먹어 보려고."


외출했다 돌아오는 남편이 김치 택배를 들고 들어오면서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다.
요즘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축축해서인지 밥맛도 없고 그다지 입에 당기는 음식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갑자기 배추겉절이가 먹고 싶어졌다. 하얀 쌀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넉넉히 넣어 만든 겉절이를 얹어서 먹으면 입맛이 저절로 돌 것만 같았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그동안 김장김치와 얼갈이 겉절이를 번갈아 먹곤 했었다. 배추가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 포기만이라도 사서 겉절이를 해 먹으려고 채소를 전문으로 파는 곳을 찾았다. 두 군데나 가봤지만 배추는 없었다. 그나마 얼갈이배추는 한 군데만 있었고 한 군데는 양배추만 잔뜩 쌓였다. 마침 대형마트에 갈 일이 생겨 그곳의 채소코너도 찾았지만 없었다. 골목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상인들도 너무 비싸 갖다 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래 나도 이런 기회에 김치 한번 사 먹어 보자. 이젠 사 먹어도 괜찮지' 생각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인터넷으로 나름 신중하게 김치를 골라 주문했다. 많은 김치중에서 리뷰도 많고 맛이 좋다는 글이 많은 것으로 골랐다.

생전 사 먹지 않을 것 같았던 김치를 주문하고 솔직히 걱정과 기대가 되었다. '맛이 어떨까? 조미료 맛이 많이 날까? 난 젓갈을 많이 넣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데 젓갈이 많이 들어갔으면 어쩌지? 아~~ 내가 정말 이러면 안 되지. 이런저런 걱정이 되면 집에서 해 먹어야지' 하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운에 맡겨보자' 하곤 잊어버렸다.
 
지난해에 김장할 때만 해도 허리가 아파 쩔쩔 매는 것을 본 딸아이가 "엄마 누가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해요. 우리도 동생도 없으면 사 먹으면 돼. 엄마 아빠 두분이 드실 건데. 이젠 김치도 가끔 사드세요. 김치, 종류대로 다있어" 했었다.

그때 난 "그러게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도 김치는 안 사 먹을 것 같은데. 몸이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불과 8개월 만에 나도 놀랄 정도로 내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도착한 김치를 한동안 풀지 않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택배 상자를 열어 본다. 그 속에서 나온 빨간 양념의 김치가 군침을 돌게 했다. 얼른 밥을 꺼내고 방금 도착한 김치를 한 포기 꺼냈다. 칼로 썰지도 않았다. 그대로 식탁에 서서 긴 김치를 쭉쭉 찢어서 밥 위에 올려놓고 먹기 시작했다.
 
▲ 김치 ...
ⓒ 정현순

 
난 남편에게도 한 숟갈 가득 채워서 먹어 보라고 입에 넣어 주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맛이 어때? 이만하면 괜찮지. 첫 번 산 거 치고는 잘 샀지?" "먹을 만하네" 한다. 남편의 그 말은 맛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기도 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오랜만에 속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힘이 나는 것도 같았다. 밥이 보약이란 말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남이 해준 김치로 밥을 먹으니 최고의 밥상을 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잠깐의 걱정과는 달리 젓갈 냄새도 조미료도 많이 안 넣은 맛이다. 담백하고 뒷맛도 나름 깔끔했다. 달력에 적어 놓았다. 9kg을 둘이 얼마 동안이나 먹는지.

몸이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 가끔 이렇게 사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젊은이의 말이 생각난다. "맛있는 반찬을 잘 골라 사 먹는 것도 능력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 말 참 괜찮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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