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유럽 극우를 걱정할 때 아니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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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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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한국 극우의 위험성, 실제보다 저평가되고 있어임기 3년을 남기고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이 이 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다. 현지 시각 6월 30일 1차 투표 때 1위를 했던 국민연합(RN)이 이달 7일 결선투표에서는 3위로 내려가고, 그 자리를 신인민전선(NFP)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이 차지했다. 한 주일간 프랑스 극우를 겨냥해 쏟아진 전 세계적 경계심이 이런 대역전의 밑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과반수는 아니지만, 좌파연합이 1위가 됐다. 뒤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한 범여권연합 '앙상블'이 2위가 됐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을 뒤이어 극우정당을 이끄는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을 일단은 막아냈다는 안도감 때문에, 좌파가 1위를 차지한 사실이 갖는 의의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유럽 극우의 약진은 팬데믹과 경제위기에도 기인하지만, 이 대륙이 감당하기 힘든 난민이나 이민의 대거 유입에도 기인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치·경제 혼란으로 인한 이 같은 인구이동의 압력이 유럽인들을 불안케 하고 이것이 배타적 극우세력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유럽의 극우 현상은 그동안 동유럽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지금은 남동유럽과 서유럽에서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는 2022년 10월에 일찌감치 이탈리아 총리가 됐다. 전 세계가 프랑스 총선에 주목할 때인 이달 2일 네덜란드에서는 극우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주도하는 연정이 출범했다.

한국 극우가 유럽 극우보다 위험한 이유
 
 국민의힘 대표 후보들이 지난 8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 본격적인 정견발표를 하기에 앞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상현·한동훈·나경원·원희룡 대표 후보.
ⓒ 연합뉴스

극우 문제가 유럽 전체의 현상이 됐다는 점은 지난 6월 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로도 증명된다. 720명을 뽑는 이 선거에서 극우로 분류되는 유럽보수와개혁(ECR), 정체성 및 민주당(ID), 독일대안당(AfD), 헝가리 피데스(Fidesz)-기독민주국민당(KDNP)이 차지한 의석은 23.2%인 167석이다.
 
서유럽의 양대 산맥인 독일과 프랑스의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보면 극우의 힘이 더 크게 절감된다. 독일에서는 독일대안당이 15.9%로 2위를, 프랑스에서는 국민연합이 31.4%로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국가적 대사인 파리 올림픽을 코앞에 둔 마크롱 정권이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띄우게 만들었다.
 
유럽은 파시스트(1922)와 나치(1933)의 집권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악몽을 겪었다. 아직은 제2의 무솔리니나 히틀러가 출현하지 않았지만, 20세기 전반을 연상시키는 극우 현상이 유럽 전역에서 부활 중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유럽 이상으로 극우의 피해를 입었다. 나치나 파시스트 이상으로 가공할 만한 일본 극우세력의 침략을 1900년을 전후한 때부터 겪었다. 일본 극우와 그 추종자인 친일 극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은 물론이고, 위안부·강제징용·강제징병 같은 강제동원과 토지수탈 등의 경제적 착취로 인해 개인들도 망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극우 현상 역시 알고 보면 유럽의 극우 현상보다 위험하다. 유럽에서는 극우의 탈을 쓴 극우정당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극우에 대한 경각심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1위로 골인하는 듯한 마린 르펜이 3위로 밀려난 것은 극우 본색을 감추지 않는 국민전선에 대한 견제 심리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 극우의 위험성은 표면상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 극우가 일본 극우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극우의 탈을 쓴 일본유신회라는 3위 정당이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를 극우화를 이끄는 최대 에너지는 집권 자민당에서 나온다.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와 보조를 맞추는 자민당은 외형상으로는 보수정당 같지만 본질은 극우정당과 다를 바 없다.
 
자민당은 재일한국인 등 소수자 억압, 배타적 민족주의, 역사수정주의(잘못된 역사 부정주의) 같은 전형적인 극우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도 외형상으로는 일반 보수정당처럼 비친다. 극단주의의 탈을 쓰지 않았기에, 이들은 대중의 견제를 덜 받으며 극우노선을 걷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나타나는 극우적 모습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5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6·25전쟁 제74주년 행사'에서 6·25의 노래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극우를 움직이는 힘은 군소 극우정당들에서 나오지 않는다. 일반 보수정당의 외형을 띠는 국민의힘 정권에서 각종 극우적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태도, 노동과 언론에 대한 태도, 북한에 대한 과도한 태도, 근현대 독재정권들에 대한 태도, 친일청산 및 식민지배에 대한 태도 등은 국민의힘 정권이 자민당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군소 정당들이 아닌 국민의힘에서 한국 극우의 힘이 나온다는 점은 지난달 30일 발행된 학술논문에서도 확인된다. <정치·정보연구> 제27권 제2호에 실린 황인정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의 논문 '누가 한국의 극우인가? 한국 극우의 특징과 정치적 함의'는 국민의힘과 극우세력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위 센터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3년 1월 19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20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기초로 하는 위 논문은 "극우 성향을 갖는 개인의 정치행태는 기성 보수정당과 그 정당의 대선 후보에 대한 투표로 나타났다"며 "극우 성향을 갖는 시민들이 당선과 집권 가능성이 낮은 극우정당 대신에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그리고 현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 뒤, 자신이 극우라고 대답한 응답자들의 특성을 결론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강력한 한미동맹 주장, 보수정당에 투표, 국민의힘을 정당 중에서 가깝게 여기고,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낮게 보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국민의힘 지지자들 속에 많다는 것은 한국 극우의 위험성이 실제보다 저평가되기 쉽다는 점을 시사한다. 프랑스처럼 극우세력이 국민연합 같은 대형 극우정당에 모여 있다면 이들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도 커지기 쉽겠지만, 국민의힘 같은 일반 보수정당 속에 많기 때문에 위험성이 낮게 평가되기 쉬운 게 사실이다.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기초한 지병근 조선대 교수의 논문 '민주주의 후퇴 인식의 이념적 편향성'(2023년 <동서연구> 제35권 제3호)은 최근 한국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과 관련해 "정당, 언론기관 그리고 극우 시민단체의 행태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요인이라는 인식 또한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 뒤 "극우 시민단체의 집단행동을 지목한 이들도 76.6%에 달하였다"고 기술한다.
 
한국에서도 극우세력에 대한 경계심은 높다. 그런데 한국 극우의 의제는 극우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

이것은 극우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이 보수정당 내의 극우세력으로 향하는 데에 지장을 주는 구조다. 이는 국민의힘에는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극우의 사회적 폐해를 조기에 시정하는 데는 훼방이 된다. 
 
지금 한국은 유럽 극우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물론 유럽의 극우 현상이 한국에도 영향을 주지만, 그보다 시급한 것은 우리 발등에 이미 떨어져 있는 한국 극우의 문제다. 한국 극우가 일본 극우와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과 언론을 억압하며 부의 편중을 부채질하고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데도 이들이 유럽 극우만큼 견제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험한 현상이다.

기자 프로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역사서 집필에 주력하고 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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