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스가 뜨길 바랐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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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등학교에서 열린 인터내셔널데이 행사 뒷 이야기【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망했어. 태극기가 거꾸로 걸려 있어!"
 
학교에 있는 아이에게 갑자기 문자가 왔다. 큰일 났다길래 처음에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방과 후에 둘러본 교내 <Culture Fest(국제 문화 축제)> 한국 부스에 태극기가 거꾸로 걸려 있다는 것이다. 
 
▲ 거꾸로 걸린 태극기 작년, 처음 열린 인터내셔널데이 행사에 태극기가 거꾸로 걸려 있었다.
ⓒ 장소영

작년에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International Culture Club(국제 문화 클럽)'이 처음 생겼다. 각국의 음식을 맛보고, 우표를 비교하는 등 간간이 클럽 활동을 하다가 학부모회의 지원과 약간의 예산이 확보되어 조촐하게 첫 문화 축제를 준비했다고 한다. 클럽 멤버들의 뿌리가 되는 나라(Home Country)를 중심으로 열두어 개 나라 부스를 마련해 각국을 소개하고, 약간의 전통 간식도 나눠주더란다.
 
우리 가족은 맨해튼에서 차로 두어 시간 떨어진 주택지구에 산다. 주변의 큰 학군에는 한국계 학생들이 꽤 많지만, 손바닥만 한 작은 학군인 우리 아이 학교에는 한국계 학생이 딱 세 명뿐이다. 그중 둘이 우리 집 아이들이다. 셋 다 컬처클럽 회원이 아니라 이런 실수를 막을 수 없었다. 

담당 선생님에게 가서 태극기가 잘못 걸렸다고 이야기해 보랬더니 수줍음 많은 아이는 차마 바쁜 선생님을 붙들고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속이 터졌다. 학교 공식 SNS에 접속했다. 다행히 <Culture Fest> 소식이 있었다.

첫 행사를 잘 치른 것을 축하하며 태극기가 거꾸로 달렸다고 댓글로 알렸다. 내년에도 혹시 이런 행사를 하느냐, 9학년 신입생만 맴버로 받느냐 물으니 재학생도 환영하고 학부모의 관심과 지원도 진심으로 필요하다는 담당 교사의 답신을 받았다. 막내에게 일러뒀다. 학부모인 엄마가 지원을 해줄 테니 잊지 말고 내년엔 꼭 클럽에 가입하거라! 

질수는 없지, 코리안 아이가!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학교 '인터내셔널 데이(International day)' 경험을 한 지도 20년 가까이 지났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우리 가족은 메릴랜드주에 살았었다.

근처에 NIH(미 국립 보건국)이 있어서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원 가족이 아파트 단지내에 꽤 있었다. 다문화 행사를 하기에 좋은 조건이라 학교에서는 매년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를 가졌다. 요즘이야 흔한 학교 행사이지만, 당시만 해도 드문 일이었다. 

행사 일이 다가오면, 아파트 단지가 들썩였다. 중국, 인도계 엄마들은 물론 평소 얌전하기로 유명한 일본계 엄마들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행사 준비를 했다. 머릿수가 작다고 질 수는 없지. 한국 아줌마의 힘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엄마들뿐 아니다. 군필 한국 아빠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태권도를 가르쳤고, 재주 있는 엄마들을 중심으로 부채춤 공연도 열심히 준비했다. 엄마들은 발품을 팔며 도복과 한복을 모아왔다. 

행사 전날, 큰 거실이 있는 집에 엄마들이 그룹을 지어 모였다. 김밥 팀, 잡채 팀, 불고기 팀, 궁중 떡볶이 팀으로 나누어 재료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처음 참여한 나는 1인당 한 컵씩만 주면 된다는데 웬 음식을 동네 잔치하듯 준비할까 궁금했다.

행사 당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엄마들이 다시 모여 음식 조리에 들어갔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햇살 따가운 날, 아파트의 작은 주방에서 땀 흘리며 끓이고 볶고,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수백 줄의 김밥을 싸던 엄마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결전의 날이 왔다. 널찍한 트렁크의 승합차가 아파트 현관 앞에 도열 했다. 한국 부스를 꾸밀 재료들과 음식, 공연 의상, 한 주 내내 엄마들이 틈틈이 만든 태극부채와 책갈피 같은 기념품들을 학교로 실어 날랐다. 김밥 팀이었던 나는 커다란 김밥 트레이를 들고 푸드 코트로 향했다.

세상에. 우리보다 더 일찍 와서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여러해 행사를 해오다보니 '한국 음식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서, 한국 테이블 앞으로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벌써부터 긴 줄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학교 학생 가족뿐 아니라 학교 인근 주민들도 둘러볼 수 있도록 야외에서 하는 행사라 동네 잔치처럼 음식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의외로 잡채의 인기가 높아서 불고기와 잡채는 금방 동이 났다. 중국의 만두나 일본의 모찌, 롤은 불고기와 김밥에 댈 것이 못 되었다.

행사 경험이 있는 고학년 엄마들의 지략이 돋보였다. 전통색이 너무 강한 공연이나 전시는 호응을 얻지 못한다고, 우리에게는 소중하지만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것들을 과감히 줄였다.

세종대왕을 설명하는 대신 학교 이름을 한글로 쓴 책갈피를 나눠주었고, 태권도도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태극 1장을 선보인 뒤 바로 격파 시범을 보여주었다. 한국만의 독보적인 면을 골라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즐기는 아이들 속, 나만의 전투 에너지

그런 기억 때문일까. 막내 아이의 학교 문화 축제가 다가올수록 내가 더 조바심이 났다. 학교에서도 예산을 잡아주며 큰 관심을 보이고 클럽 맴버도 늘어 행사 규모가 커졌다.

작년과 달리 하루 종일 실내 체육관에 부스를 열어놓고, 전교생이 학년별로 시간을 정해 구경을 온다고 한다. 올해는 26개 국가의 부스가 설치될 예정이란다. 수줍음이 많은 우리 아이는 부스 소개 대신 꾸미기를 맡았다. 부스라고 해봐야 작은 책상 위에 보드 세 개를 붙여 전시하는 게 전부지만 신경이 쓰였다. 
 
학교에서 행사 준비 모임을 하고 오면, 집에서 아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2차 준비 모임을 가졌다. 한국 부스의 왼쪽엔 중국, 오른쪽엔 일본이 배치된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다. 중국 부스를 바라보는 왼쪽으로 대형 세종대왕 그림을 걸고 한글 소개를, 일본 부스를 바라보는 오른쪽으로 이순신 제독 그림을 걸고 독도와 한국의 지형을 소개하기로 했다. 중국과 일본이 붉은색을 많이 사용할 테니, 우리는 부스위에 청기와를 그려 올리고 삼면이 바다인 점을 강조해 전체적으로 파란색을 활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간식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김밥을 소개하고 싶어 했다. 작년에는 작은 컵에 간단한 전통 과자 하나씩, 250컵을 준비했다고 한다. 올해는 전교생이 방문하는 만큼 최소 500컵은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니, 담당 교사가 800컵도 가능하겠느냐고 물어왔다. 김밥 한 알씩만 줘도 100줄을 싸야 한다. 비건용도 따로 필요할 텐데 이를 어쩐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행사 당일 부스를 지키며 나라 소개를 하는 건, 한국계인 우리 아이가 하는 편이 좋겠다고 선생님이 친구들과 역할을 바꾸라고 하셨단다. 친구들에게 부스 꾸미기를 맡기고, 간식도 간편한 과자류로 바꾸고, 전통 놀이도 하나쯤 준비해 소개해 보라고. 

아쉽지만 하는 수 없었다. <오징어게임>의 유명세를 이용해 한국에 급히 '달고나 막대 사탕'을 주문했다. 좋은 세월이다. 주문 후 한 주 만에 대용량 달고나 사탕이 뉴욕에 도착했으니. 덕분에 한인마트를 돌며 사탕 구입 하는 수고를 덜었다.
 
▲ 한국 부스를 채울 소품들  중국 부스를 보고 오니 괜한 비교가 되어 행사 전날 급하게 부스를 꾸밀 소품을 모았다. 앞면엔 태극기를, 뒷면엔 한글 이름을 쓴 네임 카드를 800장 정도 만들었고, K pop 엘범과 전통 소품들도 모두 꺼냈다. 전통 놀이로는 윷놀이를 택해 모와 윷에 상품을 걸었다.
ⓒ 장소영

태극기가 거꾸로 달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행사 전날 낑낑대며 커다란 달고나 사탕 박스를 들고 미리 행사장에 가보았다. 중국계 학생 몇이 늦게까지 남아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 부스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태극기는 잘 걸렸지만 삼면 보드만으로는 허전했다. 곁에 중국 부스를 보니 소품 준비도 알차게 했다. '엄마가 앉아 있다가 붓펜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면 안 될까?' 학부모는 지원만 가능하고 참여는 안 된단다. 중국계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부스 외의 테이블을 따로 만들어 붓글씨 써보기 체험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집을 탈탈 털어 소품을 찾아냈다. 멀리 필리핀에서 한국어과 교수를 하고 계신 지인이 보내준 궁중 의상 색종이 접기며, 한국에서 지인이 보내준 한글날 특별 에디션 한글 텀블러와 컵도 꺼냈다. 그동안 감사의 선물로 드리곤 했던 전통 문양 거울, 자개함, 책갈피, 필통도 모조리 꺼냈다. 윷놀이를 그대로 재현하기엔 시간이 허락지 않을 테니, 윷을 던져 모나 윷이 나오는 학생에게 상품을 주기로 했다. 

부스 지킴이는 가능한 전통의상을 입도록 권고 받았지만, 학생들이 한복을 입어 보도록 하자는 아이 의견을 따랐다. 여자 한복 저고리는 입기가 까다로우니 대신 화려한 수의 마고자를 치마 위에 입게 했다. 그동안 학교 행사 때 받은 팸플릿을 참고해 가능한 많은 학생의 이름을 한글로 써서 800장 정도의 네임카드를 만들었다. K-pop 가게를 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아이돌 포스터와 앨범도 공수받았다.

이른 아침, 한 보따리 짐을 들고 부랴부랴 학교로 갔다. 이정도면 대단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눈길을 끌고, 즐길 만 할 거야. 하룻밤 준비한 거치고는 꽤 괜찮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지지 않을 거 같아!  
 
내심 혼자 뿌듯해하고 있는데 곁에 있는 중국 부스에서 전통복을 입은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마네킹에 걸 한복이 필요하냐고, 자기가 한 벌 가지고 있으니 빌려주겠다고 한다. '한복을? 혹시 너희들도 한복을 중국의 소수민족 의상 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중국풍의 이상한 계량 옷을 한복이라고 주는 건 아닌지?'

괜한 의심이 들어 순간 머뭇거리는데, 아침으로 도너츠 먹겠냐고 내민다. 그러면서, 어제 보니 한국 마네킹이 비어 있길래, 한국 친구에게 부탁해 돌잔치 때 입었다는 어린이 한복을 빌려왔다고 보여주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중국계 남학생은 우리 대신 달고나를 정리해 주면서 <오징어 게임>에 대해 즐겁게 떠든다. 

갑자기 뭔가 머쓱해졌다. 준비를 위해 모여 있는 학생들 틈에서 뭔가 나만 다른 기운을 뿜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중국과 한국 부스 바로 옆, 준비된 중국의 부스를 보고 오니 괜한 경쟁심이 생겨, 집에서 급히 준비해간 소품과 한글이름 카드 등으로 한국 부스를 채웠다. 이 날, 양국의 부스와 전통 체험 테이블에 학생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 장소영

한국 부스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내 체육관의 마룻 바닥은 윷을 던질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관심을 끌었다. '한복 드레스'도 인기였다. 아시안 문화권에서 체형에 딱 달라붙지 않고 원색의 부푼 긴 치마는 '한복 드레스' 밖에 없다 보니 눈에 확 띄었다. 직접 입어보게 한 아이의 아이디어도 좋았다. 

학생 중에 한글을 읽고 쓰는 이들이 간혹 있었다고 한다. 친구가 자기 이름은 없다고 울상을 지으니, 즉석에서 친구 이름을 카드에 써 줄 정도로 실력이 좋더란다. 
  
"엄마, 내가 그만 부끄러웠지 뭐야. 철자가 틀릴까 봐 나는 쓰지 않겠다고 했거든. 한글 쓰기 연습을 해서 내년엔 내가 써줘야겠어." 
 
달고나 사탕도 불티나게 나갔다. <오징어 게임> 간식이 나왔더라고 소문이 퍼지자, 드라마에서처럼 직접 우산 모양을 파내는 줄 알았던 몇 학생들이 '오리지널 우산 달고나'는 없느냐 묻더란다. 아이로부터 실시간 반응을 카톡으로 들으며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 한복을 입어보는 학생들  부스 안내자는 가급적 전통 의상을 입으라는 권고가 있었지만, 우리는 대신 한복을 입어보는 체험 행사로 돌렸다. 여학생들이 '한복 드레스'를 입어보려고 했고, 남학생들은 달고나 사탕에 관심이 많았다. 한복을 입은 여학생뒤로 달고나 사탕을 먹고 있는 남학생이 보인다.
ⓒ 장소영

 
그러고 나니 아침에 본 중국계 학생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미국이라는 나라 같은 땅에 어울려 살며 사실은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미국 밖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미국에 살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내가 내내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웃 나라와의 우정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 문화의 우월함을 자랑하고 독보적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SNS에 한국 부스 이야기로 도배가 되길 바랐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수줍음을 이기고 부스 안내로 종일 수고한 아이는 들떠 있었다. 아이에게 내 부끄러움을 굳이 내비치지는 않았다. 너무 바빠서 다른 부스 구경을 못했다는 아이게게 넌지시 "그러게 아쉬웠겠네. 내년에는 말야, 너무 전투적으로 준비하지 말자. 다른 부스도 돌아보면서 하자"고 애둘러 말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엄마, 내년에는 꼭 오리지날 달고나를 구워줘요!"

아이의 요청은 거절했다. 국자 하나로 800개의 달고나를 굽는 극한 노동은 절대 하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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