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사흘 만에 초진 받고 의사도 친절” 전공의 파업에 2차 병원 향하는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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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가동률 97% 기록한 곳도… “2·3차 병원 간 환자 분담 정상화돼야”

40대 오모 씨는 최근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다가 길에 난 15㎝ 깊이 구렁을 보지 못하고 넘어졌다. 이 사고로 오른다리 뼈가 20조각이 나는 큰 골절상을 입었다. 곧 도착한 구급차에 실린 오 씨는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병원 측은 “자리가 없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인근 다른 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3차 병원 응급실 어느 곳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오 씨를 태운 구급차는 사고 지점에서 10㎞ 떨어진 서울 관악구 한 2차 병원 응급실로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한 뒤 진단을 받은 오 씨는 인근의 또 다른 2차 병원인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으로 이동했고, 그제야 제대로 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사고가 나고 2시간 가까이 지난 때였다.

“2차 병원 예약·진료 빠르고, 의료진 친절해 만족”
7월 2일 서울의 한 2차 병원이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임경진 기자]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에서 7월 2일 기자와 만난 오 씨는 “의사 파업만 아니었으면 대형 병원에서 곧장 수술받을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이 지체된 탓에 부기가 심해 당장 수술도 못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에서 전공의가 대거 이탈하자 2차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7월 12일 기준 상급종합병원 입원 환자는 2만5532명으로 전공의 집단행동 이전인 2월 첫 주보다 약 23% 감소했다. 높아진 3차 병원 문턱에 환자들은 2차 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병상 300여 개 규모인 서울의 한 2차 병원 측에 따르면 2월 셋째 주(12~18일) 77%였던 병상 가동률은 전공의 파업이 시작된 2월 넷째 주 91.6%로 올랐다. 6월 셋째 주에는 병상 가동률이 97%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이후 7월 둘째 주까지 해당 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한 번도 9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전공의 파업 이전 해당 병원의 평소 병상 가동률이 80% 안팎이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계치까지 환자가 몰린 것이다. “2~3월까진 환자들이 의사 파업이 곧 끝날 것이라 기대하고 3차 병원 진료를 기다렸지만, 의정 갈등이 길어지자 점차 2차 병원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한 2차 병원 관계자의 분석이다.

7월 1일 서울 동작구 서울시보라매병원 암센터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윤채원 기자]
‌주간동아가 7월 초 서울 시내 2차 병원 8곳을 직접 찾아 취재한 결과 환자들은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불편을 토로하면서도 2차 병원 진료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기자가 7월 1일 찾은 서울 동작구 서울시보라매병원에선 당초 3차 병원 진료를 받으려다 발걸음을 돌린 환자를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이들이 꼽는 2차 병원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예약과 진료였다. 예약 문의 후 평균 3~7일 만에 초진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환자들 설명이다. 서울시보라매병원에서 만난 74세 유방암 환자 A 씨는 “원래 삼성서울병원에 가려 했는데 내년 1월에나 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1주일 만에 예약이 잡혔다”고 말했다. A 씨는 6월 28일 초진에 이어 사흘 후 7월 1일 바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뇌출혈로 쓰러져 중랑구에 있는 서울시 서울의료원(서울시의료원)으로 곧장 이송된 부친을 돌보고 있는 B 씨는 “요즘 대학병원은 의료진 파업으로 말이 많던데, 이곳은 시립병원이라 계속 운영하니 다행”이라며 “아버지가 건강을 잘 회복하고 있고 의료진 처치나 병원 시설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말하는 2차 병원의 또 다른 장점은 ‘친절함’이었다.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에서 만난 60대 안모 씨는 이 병원을 5년 넘게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한때 다니던 대학병원에선 의사가 말을 자르기도 했지만, 이곳 의사는 설명을 자상하게 해줘 환자로서 불안감이 적다”는 게 안 씨의 설명이다. 심근경색으로 서울시의료원에서 스텐트삽입술과 풍선확장술을 받은 환자 C 씨(66)도 “대학병원은 아무래도 환자가 많아 예약 잡기가 힘들고 의사 얼굴 보는 시간도 짧은데, 이곳은 진료 때 교수와 길게 얘기를 나눌 수 있고 환자 편의도 많이 고려해준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성모병원을 찾은 갑상선(갑상샘) 질환 환자 D 씨(67)는 “11년 전부터 이 병원을 다녔다. 갑상선 질환 치료에 특화된 병원이라 믿음이 가고, 의사와 간호사도 친절해 계속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형 사고나 장마철 재난이라도 일어나면…”
현장에서 만난 2차 병원 관계자들은 하루빨리 의정 갈등이 봉합돼 의료 현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차 병원이 수용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제한적인 데다, 중증 환자의 경우 3차 병원 처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한 2차 병원 관계자는 “2차 병원과 3차 병원이 위중 정도에 따라 환자를 분담하는 의료 전달 체계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의정 갈등이 해소돼 3차 병원 진료가 정상화돼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2차 병원의 진료 부담도 커지고 있다. 병상 가동률이 높을 때는 97%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화성 일차전지 공장 화재 같은 대형 사고가 나거나 장마철 재난 사고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2차 병원도 병상이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할 수 있다. 환자가 몰리는 현 상황이 2차 병원에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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