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전쟁은 유럽의 흑역사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이슬람교도와 그리스정교회 소속 기독교인이 학살됐으며, 8차까지 전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성년자도 다수 희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과 어둠은 공존하는 법이다. 십자군전쟁으로 유럽에서 증류주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고, 흑사병 예방에 관한 힌트도 얻게 됐다. 이슬람으로부터 연금술이 들어오면서 알코올 소독 개념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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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상은 유럽에서 서남아시아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테오도시우스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는 등 유럽에서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고대 그리스 사상이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독교 세력에 의한 분서갱유가 로마 전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중세 암흑기로 불리는 이 시기 예술 작품에는 인간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적인 그림보다 신(神)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예술 작품이 인정받았다. 신이 만든 세상에 도전하는 4원소설 역시 같은 이유로 유럽에서 배척돼 서남아시아로 전파됐다. 이슬람 지역에서 연금술이 발전한 이유다.
연금술을 공부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인 금을 만드는 일을 추구했다. 이들은 금을 만들기 위해 물체에 열을 가하거나 진공 상태에 두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술을 두고서도 같은 방법이 시도됐다. 와인, 맥주, 막걸리 같은 곡물 발효주에 열을 가한 것이다. 그 결과 물보다 알코올이 먼저 기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알코올(에탄올)은 78.3도에서 끓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화한 알코올이 찬 성질을 만나면 다시 액체가 된다는 사실 역시 발견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술이 증류되는 메커니즘과 같다. 증류는 영어로 스피릿(spirits)인데, 발효주의 영혼(알코올)만 뽑아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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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증류주는 중세시대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의 치료제로 쓰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을 치료하기 위해 증류주에 여러 약재를 넣어 약술을 만들었다. 다만 흑사병의 원인이 쥐에 붙은 벼룩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치료가 진행된 탓에 한계가 명확했다. 그럼에도 증류주가 흑사병 예방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폴란드가 대표적 예다. 폴란드는 흑사병 피해가 여느 국가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폴란드에는 증류주로 몸은 물론, 식기나 가구 등을 소독하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소독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연금술은 화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연금술을 집대성한 인물로 흔히 이슬람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이 꼽힌다. 무슬림 화학자이자 천문학자, 지구과학자, 철학자, 물리학자, 약사, 의사였던 그는 연금술 창시자로 불린다. 하이얀은 오늘날에도 쓰이는 기본적인 화학 개념과 이론, 여러 물질의 제조 방법과 관련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의 저서 ‘금속귀화비법대전’에는 여러 금속의 제조 방법과 염색법은 물론, 와인 증류법도 기술돼 있다. 연금술이 근대 화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연금술(alchemy)이 화학(chemistry)이라는 말의 기원으로 이어진 점에서도 드러난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