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국제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각국 방위산업은 탈냉전 이후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무기 구입이 크게 늘어난 게 주된 요인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고 이른바 ‘저항의 축’에 의해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아랍권의 무기 구매량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 전부터 중국발(發) 안보 위협 증대로 국방비를 꾸준히 늘려온 인도·태평양 지역도 글로벌 방산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 |
‘K-방산 신화’ 수식어가 붙은 한국산 무기가 국제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바로 이런 환경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무기 수출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애초에 구매 협상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수출 승인이 나도 설비 부족과 이해관계자 간 ‘밥그릇’ 다툼, 높은 인건비 탓에 생산 속도가 매우 느리고 가격도 비싸다. 반면 한국은 적성국이 아닌 이상 무기 판매에 대단히 적극적이다. 가격과 납기, 기술이전 면에서도 미국이나 유럽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분단국가 한국은 대규모 지상군·준군사조직을 보유한 북한과 대치 중이다. 이에 비슷한 국력을 가진 나라 중 손꼽힐 정도의 대군(大軍)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무기와 장비 소요가 많아 미국·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생산설비를 갖췄다. 제한된 예산에서 무기 성능을 최대한 뽑아내는 ‘가성비’도 우수하다. 무기 가격이 싸고 성능이 좋은 데다 납기까지 빠르니 잘 팔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군 ‘희생’도 K-방산 판로 확대의 주역이다. 폴란드는 2022년 7월 26일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해 같은 해 12월 6일 1차 물량을 인수했다. 계약 체결부터 초도분 인수까지 4개월가량 걸린 것이다. 같은 날 계약된 FA-50GF 전투기는 계약일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2023년 7월 11일 폴란드에 도착했다. 이처럼 빠른 납품 속도는 계약 전 생산된 한국군용 물량을 전용(轉用)했기에 가능했다. 폴란드에 납품되는 전차와 자주포는 육군 제8기동사단에 배치될 물량이었고, FA-50GF는 훈련기 겸 전술입문기 TA-50 블록 20 버전으로서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 납품될 물량을 일부 개조한 것이다.
최근 국내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라크는 3월 국방장관을 한국에 보내 천궁-Ⅱ 구매 의사를 타진했고 최근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3조5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이번 계약은 이라크에 천궁-Ⅱ 8개 포대를 수출하는 게 뼈대다. 이라크는 전체 물량 중 3개 포대를 신속히 납품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거리지대공미사일 천궁-Ⅱ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고자 개발됐다. 20㎞ 내에서 북한 전술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고, 최대 50㎞ 거리의 적 항공기도 격추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군에 20여 개 포대를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양산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각각 10개 포대 안팎 물량을 발주하면서 한국군의 ‘대기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가 한국군 물량을 자국에 조기 납품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국방부가 2개 포대를 조기 납품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계약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 |
무기체계는 기본적으로 파괴와 살상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해외에 판매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누가 사서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 그것이 국익에 해가 되지는 않는지 종합적 통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라크가 왜 천궁-Ⅱ를 구매하려 하고, 실제 수출이 성사될 경우 우리 국익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모르는 것 같다.
수다니 총리는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국·영국 등 다국적군을 몰아내기 위해 지난해 말 미국 측에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올해 들어서도 외국군 철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란과 친이란 세력 입장에서는 이라크 주둔 미군이 위협적 존재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외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이라크는 중거리 방공무기가 필요 없다. 현재 이란과 사이가 매우 좋고 같은 ‘저항의 축’ 일원인 시리아와도 관계가 돈독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등 다른 이웃 나라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게다가 이들 주변 나라는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탄도미사일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있더라도 수량이 매우 적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가 천궁-Ⅱ를 원하는 것은 자국 영공을 휘젓고 다니는 외국 국적 군용기, 다시 말해 미국과 이스라엘 군용기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닌지 의심된다. 자칫 ‘한국산 미사일’이 동맹인 미국과 우방 이스라엘 항공기를 격추하는 데 악용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