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헬시 플레저’, 무알코올 맥주 시장 성장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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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 구매 비율 가장 높아… 맥주 시장 부진과 대조

5월 30일 저녁 7시, 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 맥주 코너. 황초은 씨(27)는 익숙한 듯 하이네켄 무알코올 맥주 4개를 연달아 꺼내 들었다. 황 씨는 한 달에 한두 번 이 편의점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대량으로 구매한다. 평소 무알코올 맥주를 냉장고에 쟁여놓고 마신다는 황 씨는 “맥주를 좋아하지만 다음날 출근하기 부담돼 어느 순간부터 무알코올 맥주를 더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주부 박모 씨(33) 역시 “무알코올 맥주는 육아로 지칠 때 취하는 느낌 없이 술 마시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맥주 시장에서 무알코올 맥주 판매액은 2016년 처음으로 100억 원대를 돌파한 뒤 2017년 127억 원, 2018년 139억 원, 2019년 153억 원, 2020년 236억 원, 2021년 386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고 2022년 560억 원, 2023년 590억 원을 기록하며 600억 원 선을 넘보고 있다.

서울 한 대형마트 맥주 코너에 무알코올 맥주를 포함한 다양한 맥주가 진열돼 있다. [뉴스1]
취하지도 않는 술을 왜?
이 같은 무알코올 맥주 판매액 상승은 전체 맥주 시장이 부진하다 보니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맥주 판매액(소매점 기준)은 2020년 4조3700억 원에서 2020년 4조2400억 원, 2022년 4조1300억 원으로 지속해서 감소했다.

무알코올 맥주 선호는 젊은 층의 소비 트렌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의식적으로 술을 멀리하는 것) 문화가 자리 잡았고, ‘저속 노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것)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트렌드가 기호식품인 술에서도 무알코올을 주문한 것이다. 평소 식단과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는 윤상아 씨(27)는 “술은 칼로리가 높아 체중 관리에 방해가 된다”며 “무엇보다 술을 마시는 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해롭다고 느껴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알코올 맥주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하이트진로음료가 월 1회 이상 무알코올 음료 음용 경험이 있는 20~49세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여성(30%)의 무알코올 맥주 구매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여성(25.4%)이 뒤를 이었다. 국내 최대 무알코올 주류 온라인 플랫폼 쏘버마켓 관계자도 “주 고객층은 20대 중반~40대 초반 여성이고 최근 연령대가 점점 넓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식 문화가 변화한 것도 무알코올 맥주 소비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상당수 기업에서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회식이 사라졌고 그 시간에 ‘혼술’을 즐기는 이들은 꼭 취하려고 술을 마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엔 술이 집단 중심으로 소비됐기 때문에 비소비재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자신의 기호대로 즐길 수 있는 향락재 성격이 크다”며 “건강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와 개인 단위로 술을 소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무알코올 맥주라는 선택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알코올 맥주 선호는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322억2000만 달러(약 44조2300억 원) 규모였고 2027년까지 463억8000만 달러(약 63조6800억 원)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반응이 뜨겁다. 2월 미국 전체 식료품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맥주(매출액 기준)는 무알코올 맥주 ‘애슬레틱 브루잉’인 것으로 나타났다. 맥주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2023년 무알코올 맥주 시장점유율이 7%에 달했다. 홀거 아이헬레 독일양조장협회 대표는 독일 매체 ‘디벨트’와 인터뷰에서 “조만간 독일에서 만드는 맥주 10분의 1이 무알코올이 될 것”이라며 “맥주업계에서 최근 10년간 이만큼 성장한 분야는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선 ‘밍밍한 맛’ 잡자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10여 종의 무알코올 맥주. [전혜빈 기자]
다만 무알코올 맥주를 마셔봤으나 재구매하지 않는다는 이도 적잖다. 과거 금주 목적으로 무알코올 맥주를 구매했다는 전혜리 씨(28)는 “(무알코올 맥주는) 너무 밍밍해서 그걸로 맥주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었다”며 “오히려 입안에 불쾌한 느낌이 남아 금주 중이 아니라면 차라리 저도수 술을 마시는 쪽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주류업체들은 소비자 입맛을 만족시키고자 새로운 맛과 형태의 무알코올 맥주 제품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자사 대표 제품인 ‘카스 제로’는 단순히 탄산에 맥주향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며 “일반 맥주와 동일하게 제조 공정을 진행한 뒤 필터로 알코올을 일일이 걷어내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맥주 본연의 맛을 살린 무알코올 제품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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