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학부모가 있다. 학부모들은 만나면 서로 안부를 묻고 아이 키우는 이야기 등을 하며 친해진다. 그런데 부자 학부모는 다른 학부모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없다. 다른 학부모들이 물어보면 대답은 하지만 “이건 어떠냐”고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없다. 부자 학부모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도 없다. 도도하고 냉담하며 자기만 생각한다. 결국 다른 학부모들은 그 부자 학부모를 비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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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학벌 사회’라고 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살아가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서울대 출신은 의외로 타인의 학벌에 별 관심이 없다. 같이 몇 년을 일해도 상대방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잘 모른다. 관심을 보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조금 친해지더라도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서울대생은 상대에게 냉담하고 자기만 생각한다”는 인식도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대학생 시절 학교 밖에서 또래들을 만나면 어느 학교인지 묻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학생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학교를 물어봤다고 치자.
“너 어느 대학교 다니니?”
“난 ◯◯대.”
대화가 여기서 끝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상대방도 똑같이 물어볼 것이다.
“넌 어디 다니니?”
“난 서울대.”
이 순간 그 서울대생은 재수 없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 돼버린다. 자기가 서울대생이라는 걸 자랑하려고 학교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먼저 “어느 학교 다니니”라고 물어봤을 때 “난 서울대. 너는 어디 다니니”라고 대화가 진행되는 건 괜찮다. 이때는 “잘난 척한다” “학교 자랑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학교 다니니” “난 ◯◯대. 너는?” “난 서울대”라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면 이건 재수 없는 서울대생의 전형이 된다.
이 같은 경험이 쌓이면서 결국 서울대생은 학교에 대한 대화를 피하게 된다. 상대방 학벌을 궁금해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냥 관심을 끊는다. 즉 상대방이 물어보면 대답은 하지만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진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냉담한 서울대생이라는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부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파생되는 문제가 없다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꺼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치자.
“어디 사세요?”
“저는 ◯◯에 살아요. 댁은 어디 사세요?”
“저는 서울 강남 아파트에 살아요.”
이 경우 부자는 자기 자랑을 하려고 사는 곳을 물어본 재수 없는 사람이 된다.
“어떤 차 모세요?”
“저는 ◯◯차를 몰고 다녀요. 댁은 어떤 차예요?”
“저는 포르쉐 몰아요.”
그냥 궁금한 것을 묻고 솔직하게 대답했을 뿐이지만 이렇게 대화가 진행되면 절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 상대방이 먼저 질문하고 거기에 대답하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부자가 먼저 질문하고 나중에 “나는 강남 아파트에 살아요” “내 차는 포르쉐예요”라고 말하면 곤란해진다. 상대방에게 먼저 질문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대화 참사’를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문을 먼저 열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을 참기 힘들다. 그러니 처음부터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관심을 꺼야 욕을 덜 먹는 셈이다.
부자와 부자 아닌 사람의 대화는 그렇다고 치자. 부자들끼리는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까. 부자는 모여 살면서 자기들끼리 어울린다는데, 그들끼리는 궁금한 것을 자연스럽게 물어보며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학부모 모임에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부자에 대해 얘기했다. 그런데 학부모는 보통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같은 동네면 경제적 수준이 그래도 비슷한 편인데도 솔직한 대화가 쉽지 않다.
부자도 다 같은 부자가 아니다. 20억~30억 원 부자와 50억~60억 원 부자, 100억 원 부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500억 원 부자, 1000억 원 부자는 또 다르다. 서울 강남에 살면 외부에서 보기에 모두 같은 부자처럼 느껴지지만, 내부에서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월세·전세·자가에 따라 재산 차이가 크고, 평형에 따라서도 큰 격차가 있다. 30평형대냐 50평형대냐에 따라 몇십억 원 차이가 난다.
“집이 자가예요? 몇 평이에요?”
“저는 전세이고, 30평형이에요. 댁은요?”
“저는 자가예요. 58평형이고요”
이러면 같은 강남 아파트에 산다 해도 질문한 사람은 잘난 척하는 재수 없는 사람이 돼버린다. 결국 궁금해하지 말고 물어보지도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물어보면 대답할 뿐, 절대 먼저 애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물어봐도 있는 그대로 “58평형에 대출받은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곤란하다. 그냥 “40~50평형대예요”라고만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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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학교 나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냉담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잘난 척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다. 부자도 다른 사람들에게 생활상을 묻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차가운 모습으로 보이지만 더 큰 욕을 먹지 않기 위한 방어책이다. 이것이 진실에 좀 더 가깝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