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양국 외교안보 라인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국내 한 방송에 출연해 “미국 여러 고위층과 얘기해봤는데, 미국은 북핵 문제에서 ‘중간 단계(interim steps)’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한 게 발단이었다. 며칠 뒤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이 장 실장 발언을 반박하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한국 외교부가 이를 또다시 반박하는 입장을 내면서 양국 간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에이드리언 왓슨 NSC 대변인은 “미국은 중간 조치를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계속해서 말해왔다”며 장 실장 주장에 반박했고, 한국 외교부는 “장 실장 말은 미국 정책에는 비핵화를 덮어두고 핵 동결이나 제재 완화 교환 수준의 미봉책에 그치는 그런 중간 단계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중간 단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 정책에는 중간 단계가 없다”고 하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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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과 핵 군축 협상을 고려한다는 것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이후 30여 년간 한미가 매달려온 ‘협상을 통한 비핵화’가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비핵화(denuclearization)’ 대신 ‘위협 감소(threat reduction)’로 대북 전략을 수정하려 하고 있다. 중간 단계라는 표현은 바로 이 같은 미국의 전략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북 전략의 초점을 위협 감소에 맞추는 데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 이견은 없어 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라 랩후퍼 NSC 선임보좌관은 3월 “중간 단계 및 위협 감소를 논의할 준비가 돼 있고 그렇게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이미 2021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6가지 우선 정책 추진 과제로 ‘북핵과 미사일 위협 감소’를 꼽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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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야의 이 같은 분위기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연이어 전쟁이 터지면서 확산되고 있는 각자도생 원칙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무장을 지지하며 공조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제 미국도 북핵을 인정해 비핵화가 아닌 군축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군축 협상이 이뤄질 경우 제재 완화나 주한미군 철수 같은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다. 애초에 북한의 핵개발 목적은 미국 견제와 한국 고립이었다. 북핵 완성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이 완전히 북한으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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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은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고민해야 할 때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막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유일한 생존 대책은 핵으로 무장하는 것뿐이다. 북한이 핵 공격 기미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선제 핵 공격으로 북한 지도부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능력과 의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5월 2일(현지 시간)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한국이 미국 핵우산을 지속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고, 한국 내에서 자체 핵무장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다만 헤인스 국장은 “지금 단계에서는 한국이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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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국에는 폐연료봉 재처리와 플루토늄 추출에 필요한 시설이 없다. 학계에서는 재처리 시설 건설이 결정되면 설비 개발 및 제작, 시설 건설에 최소 1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과정에는 6개월 넘게 소요된다. 소량의 핵탄두를 생산하는 데 2년 안팎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미 t단위 탑재 중량을 가진 탄도미사일을 여러 종류 전력화하고 있다. 일단 핵탄두를 완성하면 이를 미사일에 실어 무기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 분야다. 4월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한국 정계·학계 등 엘리트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자체 핵무장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4%, 반대는 53%였다. 정부가 핵무장을 결정하더라도 정치적·사회적으로 심각한 국론 분열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정치 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의 반대 의견이 많았다. 사회적 의견 대립에서 잘 결집하고 집회 등 물리적 위력 과시에 능한 진보 진영의 특성을 고려하면 핵무장을 결정한 정부는 이른바 시민사회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해 실각할 각오도 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전체주의 진영과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한반도는 신냉전 최전선이다.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진영 대결이 격화되고 있고,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 코앞에 있다. 적에게 굴복해 전체주의·공산주의 국가로 전락하지 않고 지금의 풍요와 자유를 가능케 하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영위하려면 이제 결단해야 한다. 글로벌 이익공동체인 한미동맹 바탕 위에서 핵무장을 추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