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부분들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싶다. 검찰 수사에 대해 입장 또는 언급을 하는 것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해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공정하고 엄정하게 잘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사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만 야당이 요구하는 김 여사 관련 특검에 대해서는 “특검은 검찰이나 경찰,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같은 기관의 수사가 봐주기나 부실 의혹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반대 뜻을 밝혔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관련 수사에 나선 가운데 1년 9개월 만에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민적 관심사인 김 여사 관련 문제에 대해 본인 생각을 직접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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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민주당은 기자회견 후 “국정 기조 쇄신을 바랐던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며 혹평했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국민의 명령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해병대원 특검법을 수용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며 “총선을 통해 민심의 회초리를 맞고도 고집을 부리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에서 수사할 만큼 해놓고 또 하자는 것은 정치 공세라면서 김 여사가 불가침 성역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은 2022년 9월 13일 최재영 목사가 서울 서초동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방문하며 시작됐다(인포그래픽 참조). 당시 최 목사는 김 여사 부친과 인연을 강조하면서 접근한 후 300만 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선물하고 손목시계 형태의 몰래카메라로 이 과정을 촬영했다. 이듬해 11월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가 이 영상을 공개해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당시 사용된 명품 파우치와 몰래카메라는 서울의소리 측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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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본격적으로 관련 의혹을 들여다볼 계획인 만큼 수사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5월 2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전담 수사팀을 꾸려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에 검사 3명을 추가로 투입해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서울의소리 측이 윤 대통령 부부를 검찰에 고발한 지 5개월 만이다.
문제는 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이다. 총선 직후 수사가 본격화되는 것에 대해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총선이 끝나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위험이 줄어든 만큼 필요한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야권 시각은 다르다. 4·10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해 ‘특검 드라이브’가 가시화된 만큼 검찰이 선제 대응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김 여사 관련 여러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는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 발의를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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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전망이 나온다. 청탁금지법에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 수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 만큼 기소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봤을 때 김 여사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윤 대통령 역시 관련 사안을 몰랐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실제로 조 대표가 비슷한 논리를 펼쳐 자신에 대한 의혹에 대응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등 자신이 받은 여러 혐의에 대해 인지 혹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일부 혐의는 무죄를 받기도 했다. 조 대표 측 변호인은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던 조국 전 장관이 이를 일거수일투족 알기는 어렵다”고 항변한 바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이른바 경제공동체로 보고 접근하면 사안이 달리 흘러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고검장을 지내고 4·10 총선에서 당선한 민주당 이성윤 당선인은 1월 30일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부부공동체로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 이 부분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부부는 경제공동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19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의 뇌물죄 공범으로 봤다. 두 사람이 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라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공직자가 직접 금품 등을 수수하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된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윤 대통령이었다.
다만 이 경우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부메랑이 돌아올 수 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곽 변호사는 “최측근이 금품 등을 받아도 문제가 되는 이른바 경제공동체를 인정하는 판례가 2개 만들어지면 비슷한 맥락에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이 대표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이 추진될 경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도 다시금 다뤄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한 특검 요구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도이치니 하는 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도 지난 정부 당시 2년 반 정도 나를 타깃으로 검찰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 정말 치열하게 수사했다. 지난 정부에서 나와 내 가족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하며 부실하게 (처리)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체가 모순이다. 진상을 가리기 위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철저히 수사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검찰은 무혐의 처분 등 최종 결정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검찰의 이 같은 행보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된 만큼 현 상황에서는 특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