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사람이 첫 번째 기준” 말 안 듣는 대통령의 ‘일방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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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14년째 ‘방송 악몽’ 도돌이표, 왜?… 법 개정 ‘야당 때 추진, 여당 때 막기’ 행태 반복, 가장 눈치 안 보는 대통령의 ‘일방통행’
방영시간을 2시간 앞두고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보류 결정을 내린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 2010년 8월18일 출근하고 있다.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노조원들이 “정권의 방패막이 김재철은 물러가라”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이번 (사장단·본부장) 인사는 큰집도 (김재철 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졌다). 쉽게 말해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가 첫 번째 (인사) 기준이었다.”

2010년 3월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밝힌 ‘신임 김재철 MBC 사장의 인사’ 배경이다. MBC 장악 양심선언이 돼버린 이 돌출 발언이 2012년 9월 이른바 ‘김재철 방지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이후 ‘방송 3법’) 이 발의된 계기였다.

“말 잘 듣는 사람이냐가 첫 번째 기준”


이렇게 방송 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와 시청자위원회 등 정치권 외부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여당이 공영방송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정치 성향에 맞는 인사로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해온 관행을 바꾸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 법은 12년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2024년 6월25일에도 방송 3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곧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지만, 이번에도 법 시행까지 가긴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야당 때는 추진, 여당 때는 막기’ 행태를 반복하면서 ‘해법’을 외면하는 사이, 상황은 악화했다. 12년 전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처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감사원 감사에 이은 검찰 수사로 2023년 5월 강제 해임됐다. 낙하산 사장에 맞섰던 ‘MBC 170일 파업’의 원인 제공자인 이진숙 당시 홍보국장은 2024년 7월 방통위원장 후보로 복귀했다.

특히 방통위는 2023년 8월 이후 11개월째 대통령 추천 위원으로만 구성된 ‘2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원래 여야가 추천한 5명 위원의 합의제 기구가 독임제(한 사람이 의사결정권을 갖는 기구)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방통위의 기형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방통위 의결정족수를 늘리는 내용(2명→4명)의 방통위법도 국회 본회의에 회부될 예정이다. 이 법안까지 묶어 ‘방송 4법’으로 부른다.

“민주적 결정을 위한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목적·구성원리를 생각해보면 (2명 체제는) 전혀 안 맞는 운영이죠. (통과된) 방통위법에 추가된 조항은 그간 불필요했지만, 지금의 편법 운영으로 인해 필요해졌죠.”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언론학)가 말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는 “(방통위가 2명 체제가 된 건) 위원을 추천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 탓”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정상화보다는 앞으로도 지금 체제로 주요 결정을 이어가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윤 대통령이 야당 추천 위원 임명을 설명도 없이 미뤘다’는 중요한 사실관계를 빠뜨린 억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 교수는 “윤 대통령이 애초에 국회가 추천한 최민희 후보를 7개월(2023년 3~11월)간 정확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임명을 미뤄, 신뢰가 사라졌다. 야당 추천 위원만 골라서 임명을 안 하는 사태가 반복될 수 있는데, 국회가 어떻게 추천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당시 최 후보가 임명되면 방통위 여야 구도는 2 대 2 동수가 되는 상황이어서 ‘임명 미루기’를 방송 장악 목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비등했다. 그간 국회 추천 방통위원이 임명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5일이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이 2024년 6월28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제32차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2024.06.28 한겨레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도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인 방통위를 제도에 맞게 운영되도록 할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문제 있는 사람이 추천됐 다면 그 사유를 명확히 밝혔어야 했다 . 야당도 동의할 인물을 위원장으로 내세우는 등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야 했는데 , 누가 봐도 부적격인 사람들만 연달아 위원장으로 내세운다 ”고 지적했다.

위법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12월 서울고법은 2명 체제(이동관·이상인)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 임명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며 “방통위법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해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의 입법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방통위(김홍일·이상인)는 KBS, MBC, 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 선정 절차를 일방적으로 강행(6월28일 의결)했다.

이런 일방통행의 동기는 뭘까.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이번에도 MBC 사장을 바꾸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사 선임 절차를 서둘러 진행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실 방통위나 공영방송 이사회의 다수결 구조로 사장을 무리하게 해임하고 보도국을 바꾸고 하다보니 그런 수직구조에서 대통령은 방통위만 잡으면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정책위원장은 “사실 이건 제도 문제는 아니다. 합의제가 구현되도록 운영하면 충분히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통치 행위를 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공영방송에 대한 얄팍한 이해가 사태를 더 꼬이게 하는 측면도 있다. 홍원식 교수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을 대통령·집권당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방송은 권력에 대한 감시 기관으로 독립시켜주는 게 마땅한데, 그런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며 “또 여론이 자기들에게 유리하지 않으니까 언론을 통제하면 조금이라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 잘못된 생각이다. 국민이 방송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면 여론이 더 안 좋아지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현 정권에서 권력으로 MBC마저 지배구조를 바꾸면 국민은 더는 신뢰할 만한 뉴스를 찾기 어려워지고, 자신들만의 뉴스를 찾아가겠죠. ‘반향실 효과’(같은 입장을 지닌 정보만 지속적으로 되풀이해 수용하는 현상)가 나타날 겁니다.”

공영방송을 ‘통치의 도구’로 여겨 좌지우지하려는 배경에 대해 조항제 부산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한국의 정치 구조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가 설명했다. “한국은 1~2%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KBS든 MBC든 정치권이 방송을 놔주지 못하고 도구화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방송이라는 게 상당히 전략적인 ‘병목’ 위치에 놓인 거죠. 대통령 지지율이 기껏해야 25%안팎인데, 양보할 수도 없는 거죠. 그러면서 거대 양당이 현재의 틀에 맞춰 최선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게 되고, 한쪽은 계속 탄핵하고, 한쪽은 계속 ‘일회용’(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으로 때우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이는 거죠.”

그럼에도 이런 악순환을 풀 수 있는 주체는 정치권이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공영방송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주는 거죠.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편향성 같은 문제가 일어나면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해서 고치도록 해야 하는데, 직접 인사에 개입하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여당은 권위주의적으로 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야당도 장악은 안 했으니 됐다는 식으로 나올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영방송이 더 신뢰받을 수 있는지 제도를 고민하고 역할을 부여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 때 마다 계속 이런 파열, 파행이 반복되겠죠.” (김동찬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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