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트럼프 2.0’, 힘 빠지는 ‘전기차·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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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칼춤에 국내외 시장 출렁, IRA·칩스법 등 비판”
“한국 역대급 대미 흑자, 기술경쟁 선점·수출 다변화시급“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암살 미수 사건 이틀 만인 지난 7월 15일(현지시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상을 입은 오른쪽 귀에 붕대를 착용한 채 등장했다. AFP연합뉴스.


대선 TV 토론에서 승기를 잡은 데 이어 피격 사건까지 터지면서 도널드 트럼프(78)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졌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4개월이 남아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국제사회는 트럼프 행정부 2기 집권을 염두에 둔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도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발생할 태풍의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 국내 금융시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반도체와 2차 전지 주가가 출렁이며 휘청이고 있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반세계화·반중국·반친환경’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압박하고, 전기자동차와 2차 전지에 주는 세제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트럼프 공약이 실현되려면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해야하는 변수가 있지만,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부담이 될 수 있어 다각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국에 보편관세 10% 부과 땐, 21조원 증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선거 구호로 내건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화될 예정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프렌드쇼어링(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응하며 대미의존도를 높인 한국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 으로 올라섰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고, 친환경차 수출 증가 등으로 자동차 수출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끼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이 트럼프 캠프의 공약대로 보편 관세 10%를 한국에도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이 152억달러(약 21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캠프는 평균 3%대인 미국의 관세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보편적 기본 관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캠프는 무역 적자 원인으로 한국·일본·유럽·멕시코·캐나다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지목했다. 트럼프 캠프의 ‘주요 타깃 무역 적자국’ 목록에 한국이 오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2021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미국의 10대 무역 적자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한국은 2022년 9위(439억달러)로 10위권에 들었고, 지난해는 8위(514억달러)를 기록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에도 자동차산업 적자 등을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한 전례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중국산 수입 제품에 60~100%, 다른 나라 수입 제품에는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1기 시절보다 더 강한 미·중 통상 분쟁을 시사한 것으로 유럽 등 우방국에 대해서도 불공정 교역으로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관세 전쟁을 예고했다.

공약대로 60% 이상의 관세 폭탄이 부과되면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로 대중 수출도 감소할 수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절반 이상 급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경제가 부진하면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도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위안화 절하 등으로 중국이 미국 관세에 맞서 다양한 보복 조치에 나서면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중국’에 이은 산업별 보호무역주의의 표적은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 도중 “(바이든 정부의 칩스법 지원으로)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고, 이젠 보조금까지 가져가고 있다”며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방위비와 TSMC를 묶어 거론한 것으로, 한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논리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미국에서 받게 될 보조금에 트집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창립 115주년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NAACP는 미국 내 인종차별을 종식하고 흑인 유권자 입지를 넓히기 위한 단체다. AP 연합뉴스


배터리·전기차 살얼음, ‘트럼플레이션’ 우려도

반친환경 정책 기조로 전기차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트럼프는 같은 인터뷰에서 “자동차 100%를 전기차로 할 수는 없다.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매우 비싸고 무겁다”며 “그들은(바이든 행정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체나 일부를 폐기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직답 대신 “IRA는 인플레이션을 낮추지 않고 높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IRA가 지원하는 풍력과 태양광발전의 비용 문제 등을 거론하며 “우리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저렴한 가격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IRA는 미국 내에서 만든 배터리·전기차에 한정해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바이든 정책을 뒤집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조는 배터리와 전기차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로 한 한국 기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미국 대선 향방에 따른 산업별 전망 보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IRA법이 후퇴하고 한국 배터리의 투자 위축과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 공장을 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2차 전지 업체가 미국에서 받을 보조금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다만 공화당 강세 지역과 선거 접전지에서도 IRA를 기반으로 한 투자가 늘고 있어 폐지보다는 축소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친환경 정책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더 거세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화석연료 생산에 대한 제한을 폐지하고 연방정부 토지에서의 석유, 가스 시추 허가 절차를 완화할 예정이다.

국내외 금융시장에선 당분간 변동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안팎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지는 ‘트럼플레이션’(트럼프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득세율을 낮추는 등의 감세정책과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은 미국 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민자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도 노동력 공급에 대한 부담으로 임금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6명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최소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트럼프 공약은 가격 인상 형태로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무책임한 예산으로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외 주가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출렁이고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대중국 규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7월 17일부터 이틀간 국내외 대형 반도체 주가가 급락하며 휘청거렸다.



사면초가 바이든, 조건부 사퇴 가능성 언급

전문가들은 정부가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내리겠지만 시장 기대와 달리 소폭 조정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자극 등으로) 예전만큼 큰 폭의 금리 인하는 쉽지 않아 무리한 금리 인하 베팅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무역 전쟁의 본질이 기술 패권 전쟁인 만큼 주력 업종의 경쟁력을 키우는 산업정책과 수출 다변화 전략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트럼프 재집권 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글로벌 교역이 망가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일본과 유럽 등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화 채널을 마련해 움직이고 있는 주요 국가들처럼 대화 통로를 공식화해 경제·안보 이슈를 망라한 범정부 차원의 전략적인 대응안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82) 미국 대통령은 인지력 저하 논란 속 후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오는 8월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 이후 첫 공개 유세를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 모든 것을 걸었다”며 완주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델라웨어 사저로 이동해 고령에 따른 건강 논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조건부 사퇴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7월 18일 한 케이블 방송 인터뷰에서 ‘완주 의사 철회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에게) 의학적 상황이 발생해 의사들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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