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조직이 의료권력을 견제·감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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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인터뷰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가 지난 7월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의료공백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확정됐지만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고(7월 1일 기준, 전공의 출근율 7.9%) 일부 의대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에 들어갔다. 92개 환자단체는 지난 7월 4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 휴진 철회와 재발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 1000여명은 “아픈 이에게 의료 공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강요하지 말라”고 외쳤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까닭은 ‘더 나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출구 없는 대치 속에서 환자들의 ‘일상’은 무너져내렸다.

“아픈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치료를 받을 것인가 하는 치료계획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라는 자원을 두고 갈등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죠.”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47)는 말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19)의 저자인 조한 대표는 30대 중반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 이후, 원인 불명의 통증을 느꼈고 갑상선암을 비롯한 희귀난치질환 진단을 받았다. 시민단체 다른몸들에서는 질병권(잘 아플 권리) 운동과 돌봄 문제에 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2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카페에서 조한 대표를 만났다.

-의료공백이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저는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에서 2~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사를 받아요. 몇 주 전 검사에서 의사가 일부 결과가 좋지 않다며 추가 약물을 처방하면서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일주일쯤 지나 다시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가 서울대병원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나흘 앞둔 날 6월 중순이었어요. ‘어떻게 오지?’ 생각했는데 응급진료를 신청하면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해 안심했죠. 이런 거에 안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했습니다.”

다른몸들에는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공동체가 있고, 60~70대 돌봄노동자 생애사 쓰기 모임이 있다. 조한 대표는 동료들의 경험도 전했다.

“지금의 의료공백을 정부의 총선 전략과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등으로 말하지만, 사실 이 모든 사태의 핵심은 의료가 상품이 된 사회라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치 세력화된 시민조직이 의료를 공공재로 탈바꿈시키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동료가 있는데 장애로 인한 2차 질병이 있어요. 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진료 보고 의사가 처방을 내려줘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무기한 집단 휴진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걸 받지 못할까 매우 염려해요. 중증환자처럼 생명이 오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분도 통증 관리를 못 하면 일을 할 수가 없고, 이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는 거죠. 또 다른 동료는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중인데 최근 검사에서 의사가 항암 주사를 맞으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해요. 다른 병원에 가서야 암 크기가 커졌다는 걸 알았어요. 환자로서는 의사가 치료 계획을 설명해주지 않아서 굉장히 불안해지죠.”

-지난 6월 26일 국회 앞에서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정부, 의료계 양측 모두를 비판했습니다.

“정부나 의료계나 시민, 환자들에 관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것이 핵심이죠. 의사 집단행동 중에서도 의대 교수들의 휴진이 충격이었습니다. 3차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일상이 박살 나는 사람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정부도 2020년 전공의 집단행동에 비춰 (의료공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죠. 그런데 밀어붙이기로 했다는 것은 정부도 환자를 볼모로 삼았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정부의 의료개혁에는 공공의료 강화 부문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선 ‘의료의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구호도 있었는데요.

“한국의 공공병원 비중은 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잖아요. 공공병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에는 시민 대부분이 동의하죠. 제가 책을 쓴 후 비수도권 지역에서 강의하면서 그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신이 어디 사는가가 당신의 수명을 말해 준다’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지역 병원에는 진료과가 몇 개 없고 하루 이틀 걸려서 대도시로 치료받으러 다니다가 적당히 포기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세요. 그러면 저는 비수도권 지역, 특히 섬에 살거나 지방 소도시에 사는 분들은 건강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의료가 민간에 맡겨져 있어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그중에서도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죠. 그걸 공공의료가 아닌 무엇으로 조정할 수 있는가 하면 다른 답은 없는 거죠. 의료라는 자원에는 공익을 중심으로 한 사회 통제성이 없고, 정부와 의료계가 일방적 권한을 가지고 있죠.”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가 지난 7월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사회 전반적으로 의료에 관한 관심이 높습니다. ‘질병권’ 운동이란 어떤 변화를 끌어내는 것인가요.

“아픈 몸은 실패한 몸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질병이 있다고 하면 자기 관리의 실패로 인식되고, 건강 자체가 스펙이 돼버린 상태죠. 우리 사회가 건강 중심 사회라고 봐요. 비장애인·남성 중심 사회인 것처럼. ‘건강권 운동’과는 달라요. ‘누구도 아프지 않은 세상’은 가능하지 않다는 이해가 필요하죠. 1970년대 먹을 것이 없어 건강할 권리를 찾아야 했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지금은 의료가 산업화하면서 그 산업이 건강의 기준을 만듭니다. 이를 따라가면 많은 몸이 실패한 몸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게 확연히 드러났고, 지역이나 소득에 따라 건강 격차가 벌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많죠.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질병을 개인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해요. 아픈 몸들이 겪는 차별이나 다양한 문제를 질병이 치료되면 해결되는 문제로 보는 경향도 강하죠. 아픈 게 비극이나 절망이 아니라 아픈 채로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질병권 운동이에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가 중심이 되는 ‘의료개혁’을 하자고 말합니다.

“환자로서는 1차 의료에서 주치의 제도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질병과 건강은 세포의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봐요. 주치의 제도가 있다면 개인의 생활 환경과 삶의 조건 안에서 질병을 보살필 가능성이 커지겠죠. 정부는 의료라는 자원을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배분할 책임이 있어요. 공공병원을 최소 20%까지는 (단계적으로라도) 확장해야 합니다. 홈리스나 2차 질병이 있는 중증 장애인, HIV 감염인이나 성소수자들이 차별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합니다. 공공병원 운영부터 더 나아가 의료 자원 분배에 시민 참여가 중요하다고 봐요. 의료의 주권자가 되려면 권리를 쟁취해야죠. 의료인들이나 정부가 그 권력을 알아서 내주지는 않을 것이잖아요.”

-아픈 몸들, 시민들의 목소리는 의료개혁에 어떻게 반영돼야 할까요.

“한국은 의사나 의료 권력이 매우 큽니다. 장애나 산업재해 등을 인정받으려면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죠. 합법적으로 신체를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사법부와 의료인에게만 허용돼 있고요. 사회에서 부여받은 공적 권력 속성이 있고, 그만큼의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 백남기 농민 사망 진단서 사건 같은 것부터 최근의 집단 휴진 사태를 보면 정말 위험천만한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의료 권력을 감시할 만한 세력이 부족합니다. 지금의 의료공백을 정부의 총선 전략과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등으로 말하지만, 사실 이 모든 사태의 핵심은 의료가 상품이 된 사회라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상적인 말 같지만 정치 세력화된 시민조직이 (궁극적으로는 무상의료 시스템과 같은) 의료를 공공재로 탈바꿈시키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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