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전남 나주시 문평면의 한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마을회관으로 들어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제이’가 여기 회관에 와서 웃으면서 조잘거렸을 건데...” 주민들은 태국인 주민 A씨를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제이’는 마을 주민들이 A씨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태국인 희생자 중 한 명인 A씨는 태국의 친정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나주집에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광주에서 일하던 A씨는 2021년 마을 이장인 남편과 결혼해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제이가 가족들한테 그렇게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3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두 번 지내는 동안 A씨가 집안 살림을 살뜰히 책임졌다.
주민들은 A씨가 허리가 아픈 시아버지를 부축하고 챙기던 모습을 기억했다. 주민 김모씨는 “제이가 부모님한테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부모님한테 잘하는 사람이 또 없었다”고 말했다.
세 식구가 함께 밥을 먹으러 외출하는 모습을 보면 유난히 돈독해 보였다고 한다. A씨는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분식과 짜장면을 먹으러 자주 면내로 나갔다고 했다.
A씨는 마을 토박이인 남편을 도와 벼농사도 곧잘 했다. 남편이 모 심을 땐 모판을 잘 들어줬고 100마지기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힘들다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가 늘상 웃는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채소라도 가져다주면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배시시 웃곤 했다”고 했다.
가족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잘 챙겼다. 주민들의 사랑방인 마을 회관에도 자주 찾았다. 부모뻘인 주민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A씨는 어르신들을 위해 회관에 음식을 해와 나눠 먹곤 했다. 김씨는 회관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A씨가 준비한 부침개를 나눠 먹던 게 바로 어제 일 같다고 했다.
A씨는 매년 태국을 찾아 아버지 등 친정 가족을 만나왔다. 이전까진 인천공항을 통해 태국을 다녀왔지만 올해는 달랐다. 제주항공이 지난 12월8일부터 무안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운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나주집과 가까운 무안공항을 이용해 귀국할 계획이었다.
참사 당일 주민들은 마을의 큰 행사인 마을 총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장인 남편은 오전 8시30분 도착 예정이던 아내를 마중 나간 참이었다. 두 사람이 돌아오면 행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오전 9시가 넘어 ‘무안공항’ ‘태국’이 적힌 뉴스 속보를 보고 주민들은 곧바로 A씨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나주에 살던 A씨의 빈소는 광주에 차려졌다. 목포에는 장례식장 빈자리가 없고 나주에는 화장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전날 오후 함께 A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왔다고 했다. 이들은 남편이 잠시 무안공항에 가 있는 바람에 직접 만나 위로하진 못했다고 했다. 참사 수습으로 인해 유가족이 빈소와 공항을 정신없이 오가야 하는 상황에 마음 아파했다. 태국에 있는 A씨의 아버지도 몸이 아파 한국을 찾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주민들은 “아버지와 만날 수 있도록 유골함이라도 태국에 다녀올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이날 오후 치러질 A씨의 발인을 생각하며 마을회관 앞 운동기구를 바라봤다. “제이가 저기서 매일 운동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예쁘게 웃었는데 이제 못 보게 돼서 어쩌면 좋냐.” 지난 4년간 마을에서 정을 나눈 이들은 “제이가 부디 좋은 곳에 편히 가서 이제까지 못 하던 걸 누리고 살면 좋겠다”고 전했다.